영화 '말리와 나' 편
“아빠, 어린이날인데 강아지 사주면 안 돼?”
사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총 여섯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십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함께 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
그 순간들은 영원히 반짝일 추억들이다.
첫 번 째 강아지는 ‘뽀삐’. 갈색빛 포메라이안 종이었다,
아빠를 붙잡고 며칠 밤을 괴롭힌 끝에 만난 첫 반려견이었다.
솜털 같은 그 몸이 다칠까 어두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그 아이의 자는 모습만 지켜봤다.
하지만 천사의 모습으로 태어난 그 아이는 천사처럼 크질 못했다.
1년이 되던 날, 뽀삐는 쥐 한 마리를 물고 집으로 들어왔고, 우리 가족은 경악했다.
나름 버릇을 고쳐보려 야단도 쳐봤지만 뽀삐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질 않았다.
아빠는 어느 날, 뽀삐를 데리고 나가더니 한 시간 뒤 작은 새장을 하나 들고 왔다.
뽀삐는 없었고, 노란 카나리아 두 마리만이 눈을 멀뚱히 뜨며 나를 바라봤다.
“뽀삐는 집에서 키우기 힘들 것 같구나...얌전한 새로 바꿔왔으니 이제 그만 잊으렴...”
아빠는 그날 나가서 뽀삐와 새를 바꿔온 것이다.
건조한 아빠의 표정이 공기 속에 퍼지며 나와 동생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첫 반려견인 뽀삐와 작별했다.
두 번째 반려견은 ‘래시’.
당시 한창 재밌게 보던 미국드라마 ‘달려라 래시’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이다.
흔히 발발이라고 부르는, 믹스견이었다.
긴 주둥이에 몸무게가 6키로가 넘을 정도로 소형견 치고는 덩치가 컸다.
성격이 사나워서인지 주변 강아지들과 자주 싸움이 붙었고, 우린 산책 때마다 진땀을 흘렸다.
그렇게 강아지들과 싸움만 났다면 다행 이였을까?
문제는 우리 아빠와도 자주 싸웠다. 래시는 아빠를 자주 물었고 둘은 앙숙이 되었다.
어느 날 여름, 래시는 피부병에 걸리고 말았다.
동물병원에 진료를 갈 때마다 2~3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무려 삼십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래시의 피부병이 낳기를 기도했지만, 앙숙이었던 아빠의 마음은 그 정도가 아니었나보다.
계속된 진료에도 래시의 병이 낫지를 않자, 아빠는 동네 친한 아저씨에게 래시를 보내주었다.
그 아저씨의 집엔 넓은 마당이 있었고, 이미 키우던 강아지들도 있었다.
“래시가 그 곳에서 더 행복할 거야...”
래시가 살기에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하는 아빠의 얼굴이 그날따라 차가워보였다.
래시는 그 후 건강해졌고, 아저씨 집에 래시를 보러 갈 기회가 있었지만 난 가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헤어져야 한다면 더 슬퍼질 게 뻔했으니까.
세 번째 강아지는 ‘쭈리’. 말티즈종이었다.
쭈리는 수컷이였지만, 긴 주둥이와 곱슬거리는 털이 마치 암컷같았다.
성격도 예민해서인지 주변 강아지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쭈리는 지금까지 키운 반려견 중 가장 영리한 아이였다.
강아지도 훈련을 하면 똥오줌을 가릴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강아지에 전혀 관심이 없던 엄마가 마음을 연 순간 말이다, 쭈리는 영특하게도 엄마의 출근길을 매번 배웅했고,
마치 엄마의 보디가드처럼 늘 엄마 곁을 함께 했다.
“쭈리야, 엄마 잘 거야 얼른 와.”
잘 때는 물론이고, 엄마가 가는 곳은 어디든 쭈리가 옆을 지켰다.
그렇게 칠 년이 훌쩍 지나고, 쭈리는 엄마와 산책을 하다 큰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공원에서 엄마를 놓친 쭈리는 다급한 마음에 차도로 뛰어들다 달리는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쭈리를 떠나보냈다. 눈물로, 침묵으로, 그리고 간절한 기도로.
그렇게 일 년쯤 흘렀을까.
네 번째 반려견인 ‘미니’가 우리 품으로 왔다. 갈색 코카스파니엘 종이었다.
정말 인형 같은 외모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미니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게 독이 되었을까?
어느 날 미니는 감기에 걸려 한 달 만에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그 때 처음 알았다, 강아지에게 감기가 정말 치명적이라는 것을.
다섯 번 째 반려견 ‘똘이’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왔다.
똘이는 무려 15년 동안 우리 가족과 울고 웃었다. 말티즈와 푸들을 교배한 ‘말티푸’ 종이었다.
곱실거리는 목덜미 털과 반듯한 몸통의 털은 말티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 녀석과 함께 하는 동안, 난 결혼을 했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모두 축복할 만한 일들이었다. 우리 가족들에게 똘이는 행운 같은 존재였다.
그동안 우리 가족들에겐 다양한 형태로 좋은 일들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똘이의 존재 자체가 가장 큰 행운임은 틀림없었다.
똘이는 하늘나라에 가기 전 몇 달 전부터 심장병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점점 몸이 야위고, 밥 한 끼를 제대로 소화하질 못했다. 맑던 눈망울은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
강아지에게 심장병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결국 똘이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양지 바른 곳에 아이의 영혼을 묻어주었고,
가끔 부모님 집에 갈 때면 아이가 묻힌 그 곳을 지나가보곤 한다.
따뜻한 온기가 기억을 추억으로 변환해주는 순간이다.
똘이의 빈자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거부한 시간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다시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여섯 번 째 반려견 짱이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애완견으로 시작한 강아지를 반려견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인 지난날들에 대한 마침표라고 할까?
마침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짱이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들의 눈망울에 가득하다.
오후 햇살이 짱이의 눈망울에 가득한 어느 날,
시간이 그렇게 멈추기를, 이 행복이 전부가 되기를. 나지막이 기도해 본다.
오늘은 반려견 영화 <말리와 나>를 소개하려 한다.
신문기자 존과 아내 제니퍼는 결혼 후 첫 반려견으로 말썽꾸러기 말리를 입양한다.
통제 불능이지만 한결같이 가족을 사랑하는 말리는 이사, 출산, 커리어 변화 속에서도 늘 그들의 삶 한가운데에 함께한다.
세월이 흐르고 찾아온 이별 앞에서, 말리를 통해 가족과 사랑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
반려견과의 가족애를 위트 있게 그린 수작이다.
혹시 놓친 독자 분들이 있다면, 오늘은 이 영화가 확실하다.
반짝이는 반려견의 눈망울을 통해, 지친 마음과 잊고 지내던 가족애를 회복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말씀을 드리며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연재했던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가 이번 편을 끝으로 작별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추후 더 새롭고 발전된 모습의 시즌2로 돌아올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새해부터는, 사물의 목소리로 마음의 온도를 높여 줄 <사물의 온도>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일상 속 흔하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의 삶에 대해 조명해보려 합니다.
시처럼 읽히는 에세이 형식이니 부담 없이 읽기에 좋은 시리즈라 생각됩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사랑해주신 모든 구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26년 새해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