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온이 계절의 절기를 변덕스럽게 만들고 있지만, 기본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절기마다 차이가 생겨 일찍 오기도 하고 늦게 물러가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의 절기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절기가 며칠 차이라도 찾아오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안정감을 찾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매년 기상당국은 올여름에는 얼마나 이례적인 기후가 찾아올까 예보를 내놓기 바쁘다. 실제 섭씨 40도 안팎을 넘나드는 열돔현상의 온도를 마주대하고 나니 이상기후가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라 당장 발앞에 떨어진 우리의 문제가 되었다. 탄소세를 소득세처럼 내야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 싶다
요즘같이 이상기후 운운하기 훨씬 이전에도 오뉴월(약력 6월 중순~8월 중순쯤)의 날씨는 폭염으로 살기 힘들었나 보다. 속담은 오뉴월 무더위를 실감 나게 한다. "오뉴월 더위에 염소 뿔이 물러 빠진다." 단단한 염소 뿔이 더위에 물렁물렁해져 빠질 정도의 기온이다. 속담 한마디로 여름 더위의 고통과 독한 맛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메타포가 촌철살인급이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아버지가 친구를 좋아해 여름에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경우가 많았다. 부엌에서 진땀을 흘리며 밥이며 찬을 준비하신 어머니의 인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뉴월 볕은 솔개만 지나도 낫다.” 솔개 하고 땡볕 하고 무슨 상관인가. 그늘을 찾는 오뉴월에는 하늘에 솔개가 스쳐 지나면서 만드는 잠깐의 그늘조차 고맙다는 것이다. 선조들의 자연현상에 대한 표현력에 혀를 내두른다.
여담이지만 한 여름이면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모시옷을 해서 입혔다. 모시옷은 요즘 기능성 쿨웨어에 다름 아니다. 어머니는 거친 모시로 만든 노리끼리 한 옷은 당신이 입으시고 곱고 하얀색이 나는 옷은 아들들에게 입혔다. 한 여름이 찾아오면 언제 준비하셨는지 장롱 깊숙이 보관한 모시옷을 꺼내 입혀보고 흐뭇해하셨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장롱에서 모시옷을 꺼내 입어보고 다시 벗어 넣어둔다. 모시옷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를 이어주고 소중한 추억을 되새김하는 뜻깊은 옷이 되었다. 나는 모시옷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제조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삼을 재배하고 베어 삶아 벗기는 과정에서부터 양잿물에 담가 중화를 시켜 바늘로 가늘게 쪼개고 베틀에 장착하여 헤일 수 없는 씨줄과 날줄 작업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을 생각하면 모시옷을 입을 수 없다. 모시옷을 모시시고 있다는 말이 맞을 듯싶다.
오뉴월 피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서론이 길어졌다. 누구나 자신만의 피서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의자에 앉아 얼음 팩을 목과 어깨에 댄다든지 얼음물을 대야에 담고 발을 담근다. 그늘진 나무 아래나 정자에서 바둑을 두면서 몰아지경에 빠지는 것도 피서법이다. 한참때는 북한산 정상으로 바둑판을 옮겨 산신령마냥 피서를 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이열치열의 피서법을 실천하고 있다. 해뜨기 전에 달리기를 하면서 충분히 땀을 쏟은 후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몇 시간은 그 개운함을 지속할 수 있다. 운동과 피서를 겸하는 일석이조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소서팔사(消暑八事)'의 피서법을 소개하였다. 더위를 이기는 법 8가지다. ‘솔밭에서 활쏘기, 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밤에 발 씻기’. 대학자의 피서법은 자연의 순리와 환경에 순응하면서 자신만의 고상한 취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다산은 달밤에 발을 씻는 피서법을 소개하고 있지만, 굳이 달밤이 아니더라도 탁족(濯足), 즉 계곡에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씻는 피서법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휴가(休暇)에서 휴(休)는 사람인(人)과 나무목(木)의 합성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이 휴가 장소로 나무가 우거진 산림과 계곡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인 듯싶다.
<고사탁족도> 조선 중기 이경윤 작
동양과 서양의 피서법은 방식과 스케일이 다르다. 왕이 되었든 황제가 되었든 무지랭이 백성이 되었든 무더위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가집이든 기와집이든 궁궐이든 황궁이든 장소 불문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왕조의 피서법도 스케일과 결이 달랐다. 우리나라 왕들은 소박하고 사치스럽지 않은 피서를 한 것 같다. 가까운 산이나 계곡을 찾아 피서를 하거나 궁궐에서 얼음으로 차갑게 한 수박을 먹거나 찬물로 밥을 말아먹었다고 한다. 호학군주 정조는 지족(知足), 즉 '만족할 줄 앎'을 실천했다. 현재 자리에서 참고 견디다 보면 시원해진다는 것이다. 유별스럽게 연산군은 대형 놋쇠 쟁반에 얼음을 가득 담아 동서남북에 놓아두고 마치 에어컨처럼 사용했다고 한다(유석재 2021). 하기야 그 시절에 얼음이 얼마나 귀한 물품이었을까 싶다. 중국의 황제는 여러 곳에 별궁을 지어놓고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옮겨 다녔다. 추울 때는 따뜻한 곳으로 옮기고, 더우면 시원한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황제는 전염병이 유행해도 다른 지역의 별궁으로 피신했다.
나는 얼음 하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를 떠올린다. 단원은 임금의 어진을 그린, 즉 어용화사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목장관리, 지방 우편국장, 현감 등 몇 번 벼슬을 하사 받았는데 이 중 하나가 빙고(氷庫), 즉 얼음창고의 책임자로 근무했다. 단원은 전문화원으로서만이 아니라 임명직 관리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단원이 민중들의 삶의 현자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은 그를 조선 최고의 대중친화적인 화가로 만드는 밑걸음이 되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단원은 겨울철 한강에서 얼음을 운반하여 창고에 보관하는 작업을 감독하면서 천식에 걸렸는데 평생 고질병이 되어 고생했다고 한다(이충렬 2019). 동빙고는 종묘 제사를 위해, 서빙고는 신하와 어려운 백성을 위해, 그리고 내빙고는 왕실 전용 얼음 창고였다. 우리나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는 조선 후기 정조 시기에 얼음 독점권을 차지하려는 권력자에 대항하는 영화다. 영화는 얼음이 금보다 귀한 권력의 상징이라는 것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유럽에서 로마 황제들은 피서지로 바닷가를 찾았다. 해변 휴양지나 해수욕장은 서양에서 생긴 개념이다. 해변 휴양지는 산업혁명 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중산층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서양의 바캉스(vacance)는 단순히 더위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탈출을 의미한다. 바캉스의 어원인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의 뜻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바카티오가 베케이션(vacation)으로 이어졌다. 방학도 베케이션이다. 그러니보면 우리나라의 전통 피서법은 서양의 바캉스가 의미하는 ‘자유를 찾는 것’보다 ‘더위를 피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할 것이다. 피서, 글자 그대로 더위를 피해 달아나는 것이다(고두현 2021). 서양의 피서법이 역동적이고 실용적이라면 동양의 피서법은 정적이고 철학적이라면 지나친 이분법일까 싶다.
<해변의 하루> 폴 구스타프 피셔 작
우리나라 오뉴월은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계절이다. 지구온난화(glove warming) 현상이라는 용어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인류가 직면한 가혹한 현실이 되었다. 문제 해결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지구인의 몫으로 남겨졌다. 2050년 탄소중립도 대안 중 하나이다. 현대인들이 더우면 냉방기를 켜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것을 탓할 일이 아니다. 사람은 이미 에어컨 바람에 익숙해졌다. 도시인들이 에어컨 대신에 탁족을 하기 위해 계곡을 찾아 산으로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구의 온도가 뜨겁다는 것은 인간으로 말하면 고열환자에 해당한다. 고열이 나면 신체 기능이 비상체제로 가동된다. 영유아는 경기를 일으키고 신체 기능을 마비시킨다. 어머니 지구는 심하게 아프다는 표현을 열을 발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러니 휙 지나가는 솔개의 날개조차 기다려진다는 무더운 오뉴월, 문명의 이기로 피서를 하지만 아픈 어머니 지구를 대하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 듯싶다.
고두현. (2021). <동양은 계곡, 서양은 바다…피서명소 왜 다를까?>. <한경>. 7월 23일.
유재석. (2021). <왕의 피서법... 성종은 '찬물에 밥', 연산군은 '얼음 에어컨'>. <조선일보>. 8월 5일.
이충렬. (2019). <천년의 화가, 김홍도>. 파주: 김영사.
<소서팔사>.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sub05/board01_list.html?bid=b51&page=147&ptype=view&idx=3341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