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물고기

인류 문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by 염철현

철없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물고기와 인간과의 관계를 이야기해보자. 6, 70년대 학교를 다닌 연배들은 쉽게 이해할 것이다. 전통적인 농촌의 대가족에서 자란 나는 학교 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학습부진아에 부적응아로 낙인찍혔다. 매일 벌을 받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문제아에 고문관이었다. 화장실 청소는 물론 양초를 문질러 복도에 반짝반짝 윤을 내는 것은 내 차지였다. 나로 인해 급우들이 단체 기합을 받는 날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눈과 마주치면 혼날까 봐 싶어 아예 눈을 내려 깔고 있었다. 선생님도 한 반에 6, 70명의 급우들을 일일이 신경 쓰면서 케어할 환경도 되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것이 도살장에 가는 소처럼 느껴졌다. 4, 5학년에는 이웃 후배와 땡땡이를 쳤다. 등하교 때 학생들이 함께 모여 줄을 맞춰 가곤 했는데 아이들이 많아 뒷줄에서 몇 명이 빠져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은 산속이나 먼 거리의 시냇가로 갔다. 여름에는 물고기를 잡았다. 학교에 가지 않고 딴짓하는 불안한 마음을 물고기 잡는 것으로 달랬다. 깊은 물속으로 자맥질을 하면서 손으로 잡아 올리는 그 손맛은 짜릿했다. 꺽지, 매기, 모래무지, 붕어 등 어종도 풍부했다. 거의 어신의 경지에 올랐다. 손에 자석이 달린 듯 물고기가 달라붙었다. 성취감과 존재감을 만끽했다. 아이나 어른이나 이 두 가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두 개의 축이다.


공부의 기본기가 없어 학교는 흥미도 재미도 없었다. 얼이 빠져 방황하던 중 5학년 자연 시간에 우연한 대사건이 일어났다. 단원은 물고기의 구조에 대한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물고기의 구조를 보여주면서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도 하셨다. 내가 대답할 순서가 왔다. 홍당무가 되어 얼굴을 들지도 못한 채 대답했다.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선생님이 원하는 답은 물고기의 부레였다. 반쯤 열린 입으로 속삭이듯 부레라고 말했다.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다. 인생을 바꾼 칭찬이었고 나의 얼을 제자리에 갔다놓은 칭찬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데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칭찬은 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걷지 않고 날아갔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는 말에 공감한다. 칭찬받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물고기는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물고기가 나를 살렸고 온전한 사람이 되게 했다. (집에서도 형제들은 내가 커서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물고기는 나를 성장시키고 학교에 정을 붙이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려준 고마운 존재다. 물고기와의 인간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려다 서론이 길어졌다.


ΙΧΘΥΣ(익투스). 이 단어의 의미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렸을 적 많은 시간 물고기와 함께 하면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었던 물고기에 이런 어마어마한 뜻이 있을 줄 몰랐다. 두문자로 만들어진 ΙΧΘΥΣ는 헬라어로 물고기를 뜻한다. 익투스는 원래 글자를 나열하면 Ιησοῦς(예수), Χριστός (그리스도), Θεοῦ (하나님의), Υἱός (아들), Σωτήρ (구원자)이다. 기독교의 상징이 된 물고기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가 압축되어 있다. 익투스는 기독교인의 신앙 고백에 핵심적인 표현을 모두 담고 있는 신어다. 익투스는 로마의 핍박을 받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 고백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영화 <쿼바디스>에도 익투스가 등장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두문자 조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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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예수가 기적을 행할 때 등장한다. 오병이어와 153마리 물고기. 책상에 모나미 볼펜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볼펜의 하얀 면을 자세히 보면 'Monami 153'이라고 표기되었다. 1960년대 모나미의 송삼석 사장은 기독교인이었고, 모나미는 '나의 친구 곧 예수'다. 필기구에 물고기 153 브랜드를 새겨 복음을 전파하였다. 모나미는 단순한 문구산업이 아니다. 예수는 베드로와 일행에게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세상 곳곳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자맥질로 물고기를 잡던 나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었으니 사람 낚는 어부가 아니겠는가? 나를 합리화 하는 억지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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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교 사찰 처마에 걸린 풍경(風磬)에도 물고기가 달려있다. 붕어처럼 생겼다. 사찰의 악세사리가 아니다. 풍경에 물고기가 달린 것은 눈꺼풀이 없는 물고기가 밤낮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의미다. 수행자의 본보기는 물고기처럼 깨어있는 것이다. 깊은 산속 산사에서 바람 소리에 맞춰 울리는 그윽한 풍경 소리는 수행자들에게 경각심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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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목탁도 물고기 모양이다. 목탁의 모양은 물고기 눈과 몸통, 꼬리를 닮았다. 물고기는 자거나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스님들이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 수양에 정진하라는 의미다. 목탁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어떤 스님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나쁜 행동을 일삼다 죽어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다. 그 물고기는 등에 나무가 자라 풍랑이 칠 때마다 흔들리는 통에 고통을 겪었다. 스승이 바다를 건너다 이 광경을 보고 수륙재((水陸齋 불교의식 중 물과 육지에서 홀로 떠도는 귀신들과 아귀(餓鬼)에게 공양하는 재)를 베풀어 고기의 몸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제자는 은혜에 감사하며 자기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두드리면 수행자들이 이를 기억하고 수행에 매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물고기 모양으로 깎은 나무를 목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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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의 유래를 설명하는 해인사 경내 벽화>


물고기는 종교의 상징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속에서도 물고기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물고기는 백제 무령왕릉의 두침(頭枕), 신라 금관총의 금제 허리띠,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도 등장한다. 죽은 이를 지키고 있다. 전통 가옥에서 사용하는 장롱, 서랍, 뒤주, 곳간, 문 등에는 붕어 모양의 자물쇠를 사용한다. 하필 물고기 모양일까? 물고기는 밤이나 낮이나 눈을 뜨고 있다.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가 밤낮으로 도둑으로부터 지켜준다. 옛사람들은 물고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이승과 저승에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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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에 대한 전설과 신화도 많다. 신석기시대 바빌로니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의 형상이 두 마리의 물고기(쌍어) 모양으로 생겨 이를 신격화했다. 하늘의 별자리도 쌍어다. 물고기가 인간을 보호하는 신령한 존재로 믿고 신전 앞 대문 머리에 쌍어를 그렸다. 이 전통이 유목민족 스키타이인에게 전파되고 인도 힌두교와 불교에 영향을 미쳤다. 쌍어 신앙은 인도에서 네팔, 티베트, 몽고로 퍼졌고, 동으로 남중국을 거쳐 황해를 건너서 한국에 전래되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때 카타콤에 그린 신어 역시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노예로 잡혀가 있는 동안 신어사상을 접하게 된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는 김해 가락국 수로왕에게 시집 온 인도 아유타국 출신 허황옥 공주가 쌍어 신앙을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사실은 가락이란 뜻이 인도 고대어로 물고기라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가락국과 허황옥의 발자취를 밝혀낸 것은 고고학자 김병모 박사님의 공이 절대적이다. 김박사님의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요지는 이렇다. 인도 아유타국 아요디아에서 살던 허황옥의 조상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중국 사천성 안악(보주)으로 이주했다. 요즘의 난민내지는 보트피플이었다. 허황옥은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또 보주에 정변이 일어나 배를 타고 김해 가락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김수로왕과 허황옥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이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종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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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 무덤의 쌍어>


상남도에 소재한 사찰에는 쌍어문이 남아있다. 김해의 은하사, 계원암, 합천의 영암사에 쌍어문이 그림이나 조각으로 있고, 새로 창건한 김해의 동림사, 김해 장유종선원에 새로운 쌍어문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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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 교수가 추정한 쌍어 전파 경로>



물고기는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존재다. 초등학생 시절 물고기로 칭찬을 받고 방황하던 얼을 되찾았다. 물고기가 인류의 종교적 의미와 민간의 실생활에서 유용한 상징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철들고 알게 되었다.


정리해보자. 기독교에서 물고기(익투스)는 기독신앙의 핵심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이 다섯 단어의 두문자가 물고기가 되었다. 예수가 물고기로 기적을 확인시켜주었듯이 두문자가 기적적으로 물고기가 되었다. 불교에서는 물고기의 생태 현상, 자나 깨나 깨어있는 모습을 수행 정진의 롤모델로 삼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민간 차원에서는 불교 사상과 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고대 인도에서 가락국으로 시집을 온 공주에 관한 내용이다. 사람이 이주하면서 문화(쌍어)도 함께 왔고 우리나라 문화가 되었다. 정현승의 시 <방문객>이 맞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문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역, 종파, 정파를 초월한다. 연결 고리의 중심에 물고기가 있다. 인류가 서로 연결된 문화적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 해도 분열, 갈등, 대립은 줄어들 것이다. 인류의 동선과 흔적을 좇아가는 인문학적 탐구가 왜 중요하고 왜 필요한가를 새삼 확인한다. 인문학은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국회방송. 특선다큐. 익투스.

김병모(2018). 허황옥 루트 - 인도에서 가야까지. 하남: (재)고려문화재연구원.

기독일보. [이상환 칼럼] 물고기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이유가 뭘까?. 2016년 7월 26일.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71058

불교신문. 목탁. 2021년 3월 4일.

중앙일보. [중앙시평] 물고기가 기가 막혀. 2006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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