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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23. 2024

원산지 논쟁

볼거리, 먹거리는 경계가 없다

종로 현대사옥 건너편에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꽃가게가 있다. 꽃가게 이름이 특이하여 꽃을 사면서 가게 이름에 대해 물어보았다. 가게 주인의 설명은 대략 이랬다. 1947년 미 군정청에 근무하던 엘윈 M. 미더가 북한산에서 우리나라의 토종식물인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와 유사한 꽃나무) 씨앗을 채집하여 미국으로 반출하여 개량 라일락을 개발했다고 한다. 개량종의 이름을 고민하던 교수는 자신의 자료 정리를 돕는 직원의 성을 따서 '미스김 라일락'으로 불렀다고 한다. 추정이지만 그럴듯하다. '미스김 라일락'의 원산지는 한국이다. '미스김 라일락'의 특징은 꽃봉오리가 맺힐 때는 진보라색이고 점차 라벤다색으로 변하다가 만개 시에는 하얀색으로 변한다. 이 아름다운 꽃 때문에 '미스김 라일락'은 여러 나라에 수출하며 막대한 로열티를 챙기고 있다고 한다. 


먹거리 가운데 원산지 논란이 뜨거운 품종은 '청양고추'다. 국립종자원에 청양고추의 품종개발자로 등록(1997년)되어 있는 '유일웅' 박사는 "청양고추 품종은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잡종교배하여 만든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양군에서 임상재배에 성공하였으며, 현지 농가의 요청에 의해 청송의 청(靑) 자와 영양의 양(陽) 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하여 품종등록하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고추 품종의 명칭과 동일한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역시 청양고추의 원산지라고 주장한다. 청양군 홈페이지를 보면 청양군의 대표 QR 코드에 청양고추를 그려 넣을 정도로 고추 원산지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논란을 체로 걸려 결론을 내리면 청양고추의 원산지는 경북 청송군과 영양군에서 비롯되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청양고추를 대규모로 재배하는 지역은 청양군으로 생각된다. 원산지가 반드시 대규모 생산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지자체들 간에 청양고추 원산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소유권은 외국계 회사에 있다. 청양고추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중앙종묘가 1998년 외환위기로 다국적 종자 기업 '세미니스'에 매각되며 소유권이 국외로 넘어갔는데, 세미니스가 다시 미국 종자기업인 '몬산토'로 합병되고 몬산토를 독일계 화학·제약회사 '바이엘'이 합병하면서 최종적으로 바이엘 소유가 됐다. 청양고추 소유권자가 몇 차례 바뀌는 바람에 '우리가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외국계 회사에 로열티를 지급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여기서 로열티는 품종의 보호권이 설정된 품종 사용료를 의미한다. 결론은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고 종자 가격을 지급한다'라고 한다. ‘청양고추’ 종자의 경우 팜한농(LG그룹 계열의 농약제조, 복합비료 제조 판매 업체)이 국내 영업판매권을 독점 계약하고 있기 때문에 종자가격 이외의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다른 제품명의 청양고추류 품종은 회사 간 계약에 따라 로열티가 종자가격으로 지급될 수도 있다. 종자 사용에 대한 로열티는 종자가격이 로열티에 포함된 경우가 많아 쉽게 파악하기란 어려운 듯하다. 


우리의 먹거리도 외국 의존도가 높다. 양파는 일본 종자 비중이 80%에 이른다. 양배추도 일본 종자 점유율이 85%에 달한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 중 외국 소유의 종자가 70%쯤 된다. 장미, 국화, 카네이션 등과 같은 화훼류도 외국 의존도가 높기는 마찬가지다. 원산지를 따지면  과연 우리의 것이 얼마나 될까 싶다. 종자주권을 확보하여 종자독립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국내에서 개발된 감귤 품종(탐나는 봉)이 로열티를 받고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미국 현지 업체가 일본 품종(한라봉)에서 한국산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은 2022년부터 품종보호가 만료되는 2035년까지 14년간으로 총 로열티 금액은 29만 5000 달러 규모라고 한다. 


볼거리도 원산지 논쟁이 치열하다. 봄철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지만 그중에서도 벚꽃은 화려운 기품과 운치로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놓기에 충분하다. 벚나무는 가로수로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벚꽃 축제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특별히 벚꽃은 일본과 원산지 논쟁을 벌이고 있다. 벚꽃 원산지를 놓고 한일 양국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듯하다. 봄에 흔히 보는 벚꽃은 왕벚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인 신부 타케가 제주도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 심은 왕벚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벚꽃의 한국 원조론이다.   


한국 원조론에 맞서 일본에서도 일본산 벚나무의 야생 원종을 찾아 전국을 뒤졌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일본 벚나무는 자생종인 올벚나무와 오오시마벚나무를 인위적으로 교배해 만든 원예품종(園藝品種, 원예적 가치가 있어 선발되거나 교잡 등을 통해 개량된 원예 작물의 품종) 임이 밝혀졌다. 한국과 일본이 벚꽃 원조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2007년 미국 농무성에 의뢰하여 수행한 유전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왕벚나무는 고유의 종으로 일본 벚나무와는 별개로 나타났다. 2018년 국내 연구자들이 수행한 한국 왕벚나무와 일본 벚나무에 대한 유전체(게놈)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제주 왕벚나무는 자생하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벚나무(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잡종이라고 밝혔다.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다.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벚나무 사이에 유전적 뒤섞임은 없다. 과학적으로는 제주의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벚나무가 됐다거나 그 반대라는 주장은 유전적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 셈이다. 제주의 왕벚나무는 제주 것이고 일본의 벚나무는 일본 것이 되는 셈이다. 더 많은 벚나무의 유전체 검사를 하면 다른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나무 한 그루 당 1억 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고 한다. 


벚꽃 원산지 논쟁은 한일 양국의 2파전이 아니다. 중국까지 가세하여 3파전이 되었다. 중국 관계자도 "벚꽃의 원산지는 당나라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라고 주장하였다. 그 관계자는 "중국 영토인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서 자생하던 벚꽃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전 세계 야생 벚나무 중 상당수 원산지가 중국이다. 한일 양측이 원산지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둘 다 그럴 자격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한중일 삼국의 벚꽃 외교전이다. 중국 측 인사의 주장에 대해 이 기사를 보도한 기자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이건 마치 인류 최초의 화석이 아프리카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인류가 '아프리카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겠죠." 중국 측은 객관적 자료에 토대한 주장을 하기보다 우선 한일 양국의 논쟁에 끼어들고 보자는 식으로 느껴진다.


벚나무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통해 우리나라 공원과 도로에 심어진 대다수의 왕벚나무는 일본이 원예품종으로 만든 벚나무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벚꽃의 제주도 원산지 설'은 광복 후 벚나무를 베어버리자는 움직임을 저지했고, 한국인들이 벚꽃을 즐기면서 느끼는 ‘왜색’에 대한 불편함을 덜어주는데 기여했다(광복 후에는 우리나라 국민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의 정도가 현재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으로 생각할 때 도로나 공원에 심어진 벚꽃이 일본산이었다고 하면 모두 베어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가로수와 공원에 심은 일본산 벚나무를 당장 모두 베어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벚꽃이 일본산이라는 연구결과에 실망감이 크겠지만, 꽃의 원산지와 그 꽃을 즐기는 문화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아름다움에 국적을 따지기 보다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은 20세기 초 우리나라를 강탈하기 위한 국제적인 지지를 얻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서양 강대국들을 상대로 외교에 집중했다. 그중 하나가 미국을 상대로 한 '벚꽃외교'였다. 일본은 미국에 3천여 그루의 벚나무를 보냈고 그렇게 심어진 벚나무가 워싱턴 DC 포토맥 강변에 있는 벚꽃이다. 우리에겐 불편한 역사의 진실이다. 사이가 좋았던 일본과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불천지 원수가 되었다. 이 공습은 미국이 참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종국에는 일본의 패망으로 끝났다. 미국인들은 적대관계였던 일본에서 보낸 벚꽃을 베어버리지 않았고 오늘날 벚꽃축제를 즐기고 있다. 벚꽃에 무슨 죄를 묻겠는가.     


일본산 벚나무를 우리나라 자생 왕벚나무로 교체할 계획을 발표한 지자체가 있다. 여의도 벚꽃 축제를 관장하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일본산 벚나무를 우리나라 고유종인 제주 왕벚나무로 교체할 계획을 내놓았다. 여의도 벚꽃길에 심어진 왕벚나무는 모두 1,365주로 창경궁 복원 과정에 여의도로 옮겨 심어졌다. 앞으로 노령목이나 고사(枯死)한 벚나무를 제주 왕벚나무로 교체한다고 한다. 서울식물원에서는 제주 한라생태숲에서 제주 왕벚나무 증식묘를 분양받아 양묘장에서 수백 주를 관리 중인데 이들은 천연기념물인 제주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에서 채집한 나무들이라고 한다. 서울식물원은 이들 나무가 가로수로 식재할 수 있는 규격이 되면 영등포구에 공급할 예정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와 꽃을 즐기는 문화를 고려한 합리적인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꽃과 나무는 국경을 넘나 든다. 도로나 공원에 심어진 벚나무를 점진적으로 우리나라 자생 왕벚나무로 교체하면서, 벚꽃을 보고 즐기는 문화를 우리만의 독창적이고 차원 높은 콘텐츠로 만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벚꽃의 꽃말은 ‘정신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사람’이다. 벚꽃을 탐미하는 우리네 삶의 꽃도 아름답게 피길 바란다.



박상진. (2018). 우리 나무의 세계 2. 파주" 김영사.

강진규. (2022). 한국경제. 로열티 3억 넘게 받고 미국 간다 … 日 품종 몰아낸 한국 감귤. 3월 21일.

김지훈. (2024). JIBS 제주방송. ‘사쿠라?’ 아니 ’벚꽃‘입니다.. 그래서, “제주왕벚나무로 다 바꾸고, 또 바꾼다”. 4월 1일. 

김필규. (2015). JTBC. [팩트체크] '벚꽃 논쟁' 중국까지 … 진짜 원산지 어디?. 3월 31일.

문소영. (2015). 중앙일보. 벚꽃 원산지 논쟁이 의미 없는 이유. 4월 4일.

백우진. (2015). 아시아경제. 워싱턴 벚꽃축제 20일 개막 … 100년 전 역사 상기. 3월 20일.

송영조. (2023). 이코노믹리뷰. 종자전쟁 이겨내야 한다. 11월 27일.

조홍섭. (2019). 한겨레. 한·일 ‘벚꽃 원조’ 논란 끝? 제주 왕벚나무 ‘탄생의 비밀’ 확인.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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