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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장군 한신의 배수진

by 염철현

한나라 한신이 조나라를 평정할 때이다. 조나라에는 장군 이좌거(李左車)와 책사 진여(陳餘)가 조나라 왕을 보필하고 있었다. 조나라 왕이 이좌거에게 방비책을 묻었을 때, 이좌거는 "한신의 기세는 매우 강하여 우리가 무력으로 정벌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신군은 군량을 천리 밖에서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군량 사정이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군사들이 후방으로 돌아가 보급로를 끊어버린다면 한신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그냥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간언했다. 이에 대해 진여는 "그 전략은 사술(詐術)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신의 군대가 10만이라고 떠들고 있지만, 실상은 4, 5천에 불과합니다. 의(義)를 내세우고 당당하게 싸우면 될 일을 무엇 때문에 그런 잔꾀를 부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 조나라 군사들이 당당하게 싸워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비겁하게 정면으로 싸우기를 기피합니까?"라고 말하며 이좌거의 계략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조나라 왕은 누구의 계략을 채택하였을까? 조나라 왕은 진여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나라 왕은 참모의 잘못된 정보와 잘못된 계략에 휘말려 연전연승을 거듭하던 한신과 싸우기로 결정했다. 반면 한신은 첩자들을 통해 조나라가 어떤 근거로 어떤 판단을 하였는가를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하물며 한신은 이좌거와 진여는 서로 사이가 틀어져 진여는 이좌거의 간언이라면 무작정 반대한다는 사실까지도 꿰뚫고 있었다.


조나라의 돌아가는 형편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한신은 조나라군을 맞아 면만강(綿蔓江)을 등지고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배수진은 장수들이 가장 꺼리는 군사 전략이다. 배수진은 만일의 경우 병사들에게 퇴로가 없다는 점에서 최후의 항전을 할 때 사용하는 전법이다. 한신은 배수진에 대해 의아해하는 장수들의 반론을 무시하고 배수진을 강행했다. 조나라 장수들은 한신의 배수진 진형을 보고 한신의 지략도 별 것 아니라고 판단하고 이번 기회에 한나라 군사들을 모두 수장시켜 버리겠다는 욕심을 낼 정도였다.


결과는 조나라의 대패로 끝났으며 조나라 왕도 생포됐다. 조나라 장수들은 한나라 군을 4, 5천 명으로 오판했고 배수진의 효력을 과소평가했다. 전투가 끝나고 한신의 휘하 장수가 한신에게 "배수진은 병법에서 기피하는 진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원수께서는 왜 하필 배수진을 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한신과 부하 장수 간에 오고 간 대화다.


한신: "병법에서는 '사지에 빠져야만 비로소 살아날 길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득이 배수의 진을 쳐야 할 경우가 있답니다."


장수: "부득이한 경우란 어떤 경우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한신: "이번에 출전한 우리 군사들은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신병들이 많습니다. 신병들이란 실전 경험이 부족한 탓에 싸움이 시작되면 대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배수의 진을 쳤던 것입니다."


현대의 리더십 이론에 상황론적 리더십(contingency leadership)이 있다. 지도자는 상황 변수와 관계없이 정해진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의 성숙도, 외부환경, 목표 등 상황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구사한다. 한신이야말로 현대의 상황론적 리더십에 본보기가 될 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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