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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항백

by 염철현

항백(項伯)은 초나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향연(項燕)의 아들이며, 항량(項梁)과는 형제 사이이다. 항우는 향연의 손자이며 항백과는 숙질간이다. 항백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초나라 부흥운동에 참여했으나 실패한 뒤,

떠돌아다니다 살인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장량에게 의탁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 항백과 장량은 깊은 우정을 나누는 지기(知己)가 된다. 일반적인 지기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고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고 살려주는 관계로 발전한다.


만인지적(萬人之敵)이요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절륜한 무예와 용맹으로 말하자면 당대에 견줄 사람이 없었던 항우가 우둔하고 급한 성격 탓에 적절한 용인술을 사용하며 관인후덕하게 부하들을 포용했던 유방에게 최후의 일격을 당하지만, 그전에 항우는 유방을 제거하고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결정적 기회들을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항백이었다. 결론적으로 항백은 항우를 결정적 패배에 이르기 하는 내부의 적이었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일신을 위해 항우를 배신하였다. 항백이 항우에게 주어진 좋은 기회를 어떻게 방해했는지 살펴보자.


첫째, 유방이 먼저 관중을 차지하자 항우는 길길이 뛰었다. 항우는 유방보다는 먼저 관중을 차지할 줄 알았다. 그러나 유방은 관중 땅에 먼저 입성하여 민심을 다독이며 약법삼장을 공표하는 등 왕 행세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항우도 험난한 함곡관(函谷關)을 돌파한 뒤 홍문(鴻門)에 진을 쳤다. 항우는 당장 전면전을 벌이고 싶었지만, 범증의 제안으로 특공대를 비밀리에 보내 유방과 장량을 죽이기로 계획을 세웠다. 옆에서 항우와 범증의 계획을 들은 항백은 절친 장량을 살리기 위해 장량을 찾아가 기밀을 누설하여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이때만 해도 항백은 유방이 죽는 것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고 장량만을 구할 생각이었다. 항백에게 장량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학문을 가르쳐준 은사(恩師)이기도 했다. 유방 진영으로 찾아간 항백이 장량과 유방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항백: "내일 밤에 노공(항우)의 특공대가 패공(유방)을 생포하려고 습격할 것입니다. 선생은 그들이 오기 전에 나와 함께 어디론가 도망갑시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도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장량: "장군의 우정은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패공은 나에게 극진한 대우를 해주고 계십니다. 내가 그 은공을 배반하고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갈 수 있겠습니까. 이왕이면 이 사실을 패공에게도 알려서 다 같이 구원을 받기로 합시다."


유방: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 모험을 무릅쓰고 일부러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관중에 들어와 진나라의 궁전과 재물을 소중하게 관리해 오면서 노공께서 하루속히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노공께서 내게 무슨 오해를 품고 계신 모양이니 장군께서 그 오해를 풀어주시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애당초 저와 노공께서 진나라 정벌에 나섰을 때 초회왕께서 함양을 먼저 점령하는 사람을 관중왕으로 삼을 것이라고 약속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노공은 나의 의형(義兄)이십니다. 형님께서 관중왕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아우인 내가 내가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항백: "패공께서는 관중왕의 자리를 처음부터 노공에게 양보할 생각이셨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이제 급히 돌아가 내일 밤 특공대가 기습을 하지 않도록 노공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 대신 패공께서는 빠른 시간 내에 노공을 직접 찾아오셔서 오해를 깨끗이 풀도록 하십시오."


항백이 항우 진영의 기밀을 누설한 그날 저녁 유방은 상배(喪配)를 하고 독신으로 사는 항백과 자신의 여동생을 혼인하기로 약속했다. 장량은 우선 급한 대로 항백과 유방의 옷고름을 서로 맺어 결납(結納)의 의식을 대신했다. 유방과 항백은 처남매부지간이 된 것이다. 유방은 항우 진영에 항백이라는 특급 스파이를 심어놓고 수시로 기밀을 빼냈다. 항백이 유방과의 처남매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항우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삼척동자도 짐작되는 일이었다. 여기서 결납의 의미를 짚고 가보자. 사전에서 결납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서로의 마음이 통해 서로 도움을 준다는 의미 외에 주로 나쁜 일을 꾸미려고 서로 한통속이 된다는 뜻을 나타낸다. 유방과 항백의 결납 의식을 항우와 관련지어 보면 이날 결납 의식은 후자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고 할 것이다.



둘째, 홍문(鴻門)에서 회담할 때였다. 항우와 범증이 특공대를 보내 유방과 장량을 죽이려는 계획을 장량에게 미리 알려주었던 항백은 유방에게 항우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제안한다. 이렇게 하여 항우와 유방의 극단적 대치 관계를 해결할 목적으로 유방이 사과하는 형식으로 홍문에서 연회가 열리게 된다. 유방은 항우가 의심하고 있는 세 가지, 즉 왕명도 없이 진나라 황제 자영을 석방한 것, 진나라 법령을 마음대로 철폐하고 약법삼장(約法三章)을 선포한 것, 남전관(藍田關)을 지키며 항우를 입성하지 못하게 막은 것에 대해 명확히 해명하고 사과한다. 항우는 유방의 능수능란한 궤변에 속아 넘어간 항우는 이렇게 말한다. “패공의 설명을 듣고 나는 모든 오해가 풀렸습니다. 사실 이것은 패공 휘하의 좌사마 조무상이 나에게 '패공이 모반을 도모하고 있다'라는 밀서를 보내왔기 때문에 패공을 의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내가 이런 오해를 했겠소!”


이때 항우는 책사 범증의 계략으로 유방을 제거할 세 가지 계책을 세웠었다. 첫 번째는 홍문전에 환영잔치를 베풀어 놓고 항우가 직접 유방을 영접하는 자리에서 목을 베어버리는 것, 두 번째는 막후에 장사들을 미리 숨겨 두었다가 연회가 무르익어 갈 무렵에 유방의 목을 쳐버리게 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유방을 대취하게 만들어 그가 취중에 무슨 실수를 하면 그것을 구실로 유방을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항우는 형편에 따라 유방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항우는 자신에 대한 깍듯한 예우와 형제간의 정리(情理)에 호소하는 유방에게 호의를 가졌다. 항우는 유방을 죽일 가치도 없는 평범한 촌부쯤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범증은 항우가 우유부단하여 유방을 죽이지 못하자 항장(項莊)을 시켜 검무를 추다 때를 보아 유방을 죽이도록 했다. 그때 항백도 검무를 추며 항장이 유방을 찌르는 것을 막았다. 유방은 내부에서 항백의 도움과 장량의 재치로 호랑이 굴을 벗어날 수 있었다.


셋째, 몇 번 항백으로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유방은 파촉으로 가게 됐다. 항우가 범증의 계략을 받아 들어 당시 유배지나 다름없던 파촉 지역으로 유방을 보내 영원히 관중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범증은 유방을 죽이지 않고서는 후일 유방의 손에 자신과 항우가 죽을 것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예 유방이 파촉으로 가기 전에 죽어버릴 생각으로 유방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두었다. 항우는 유방이 부모를 모시러 올 때 유방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때 항백이 항우 진영의 계략을 장량에게 알려준다. "범증은 패공을 유인하여 죽이려고 나의 장인 장모를 볼모로 잡아 두고 있습니다. 패공이 부모님을 모시러 왔다가는 큰일 납니다. 장인 장모님은 내가 맡을 것이니 패공을 빨리 파촉으로 가시게 하십시오." 항백은 몸은 조카 항우 진영에 담고 있었지만, 이미 유방과 그 가족을 위해 일했다.


넷째, 유방이 파촉으로 떠난 뒤에도 항우는 유방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이제 전세가 바뀌어 유방의 세력이 커져 오히려 항우를 압박하고 있었다. 항우는 유방의 강화조약을 제안을 받아들이고 유방의 가족을 보내주고 전쟁을 끝내려고 했다. 항우는 오랜 전쟁에 지쳤을 뿐 아니라 군량 등 여러 상황이 좋지 않은 터에 유방의 강화 제안은 마치 가뭄에 기다리던 단비와 같았다. 강화조약의 요지는 '홍구(鴻溝)를 경계로 서쪽은 한나라 영토로, 동쪽은 초나라 영토로 삼아 제각기 독립 국가임을 인정하고 군사를 철수시키며 형제의 의를 돈독하게 하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방의 강화 조약은 진심이 아니었다. 가족을 구출하기 위한 거짓 강화였다. 가족을 구출한 뒤에 항우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가족을 안전 지대로 데려온 유방은 항우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대군을 고릉성에 집결시킬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의 집결 명령을 받은 한신, 영포, 팽월 등 맹장들이 예정일을 넘겨도 오지 않았다. 선전포고를 받은 항우는 대군을 이끌고 유방의 근거지 고릉성을 치려고 할 때였다. 항백이 반대하고 나섰다. "폐하! 우리 군사는 먼 길을 오느라고 몹시 피로해 있습니다. 게다가 적의 상황을 잘 모르면서 덮어놓고 전격 작전을 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며칠 동안 여유를 두고 적정(敵情)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에 총공격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일 항우의 생각대로 유방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고릉성을 전격 공격했다면 유방은 큰 곤란에 빠졌을 것이다.


항백은 항우와 숙부이면서 국가의 최고 벼슬인 상서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처남 유방 쪽에 가 있었다. 그래서 드러내놓고 유방에게 유리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전에 유방에게 고급 정보를 제공한다던지 시간을 지연시키면서 항우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그러나 항백이 유방을 살리고자 항우를 배반한 근본적인 원인은 조카 항우보다는 유방이 왕으로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한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항백은 그의 진짜 모습을 드러났다. 항백은 유방과 처남매부 간으로 비밀리에 몇 번씩이나 유방을 도와주었고, 언젠가 장량을 구해준 인연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며 유방을 찾아갔다. 항우를 대신하여 초나라 왕이 되어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항백은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사양후(射陽侯)로 책봉되었다. 더 나아가 항백은 '항씨로는 유씨의 세상에서 살 수 없다"라는 이유로 유방의 허락을 받고 유씨 성을 하사 받아 유전(劉纏)으로 개명했다. 항백의 아들 항동(項東)은 유방의 딸과 혼인하여 그의 사위가 됐다. 산을 뽑아 들어 올리고 세상을 덮을 만한 힘과 기개를 가진 항우조차도 내부 스파이의 이적 행위 앞에서는 그 포부를 펼칠 수 없는 법이다. 내부 결속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일을 도모할 수 없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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