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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니 Jan 07. 2024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꿈에 그리던 친퀘테레

40일간의 배낭여행 다섯 번째 행선지

1. 에피톤프로젝트의 친퀘테레라는 노래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시야도 세상도 좁았던 나에게 지중해 바람을 노래하는 가사는 막연하고도 애틋했다. 지중해 어느 저편에 아름다운 다섯 마을, 비행기로도 못가고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얼마쯤 가야 닿을 수 있다는 그곳. 예정에 없던 이탈리아 행을 껴넣은 건 친퀘테레가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산타마리아노벨라 역에서 라 스페치아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탈리아의 6월은 유독 서둘러 더워진 탓에 사람들의 민소매 위로 죄다 빨갛게 탄 어깨가 훤했다. 헤드셋 끼고 좋아하는 책 손에 든 나를 실은 채 떠나는 빨간 색의 뜨렌이딸리아. 앞자리 할아버지의 하와이안 셔츠에 내 마음도 덩달아 들떴다. 


친퀘테레는 총 다섯개의 섬 ‘몬테소로 알 마레’, ‘베르나짜’,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 로 이루어져있다. 다섯 개의 섬은 오로지 기차로만 이동이 가능하다고 티켓오피스의 아주머니가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사람들은 당일치기로 사진만 찍고 떠나는 친퀘테레지만 나는 이곳의 아침, 점심, 저녁과 밤을 모두 보고싶어 하루를 묵기로 했다. 그렇지만 기차의 배차간격은 엉망진창이고 연착도 심한 탓에 다섯 개의 섬을 다 보지는 못했다.


첫 번째 섬 리오마조레에 도착한 나를 반기는 건 바로 고소한 생선튀김 냄새였다. 냄새의 정체는 바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들고있던 ‘프리또 믹스또’. 오징어, 정어리, 홍합 등 갖가지 해산물 튀김 위에 레몬즙을 뿌려 먹는 이탈리아 해안마을 대표 길거리간식이었다.  프리또 믹스또와 이탈리아 대표맥주 모레띠를 양 손에 들고 바다가 보이는 돌담에 앉아있자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짭짤한 생선튀김과 바다내음 그리고 머리칼 구석구석 스며드는 바람은 최고의 안주였다.

프리또 믹스또와 이탈리아 대표맥주 일모레띠

2. 간식을 다 먹고 산책을 한 뒤에 두 번째 마을 마나롤라로 향했다. 구글에 친퀘테레를 쳤을 때 나오는 대표이미지, 그러니까 깎아지른 절벽에 파스텔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밑엔 파도가 웅성이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그림은 마나롤라에 있다고 했다. 과연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내가 잡은 에어비앤비는 언덕 중턱에 있었는데, 미로같은 돌계단을 돌고 돌아도 한 번에 보이지 않았다. 구글 맵 켠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동양인 여자애가 불쌍해 보였는지 수다떨러 나오신 마을 할머니들께서 직접 숙소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문을 열어주셨다. 


만국 공통 그랜마 오지랖의 덕을 톡톡히 보며 어렵게 들어간 숙소의 벽지는 쨍한 주황, 창틀은 노랑이었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집에 들어간 기분으로 창문을 열었더니 더운 바람이 훅 끼쳐왔다. 저 멀리 바다가, 그 앞에는 푸른 계단식 논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으며 자유를 만끽했다. 수영복 위에 나시 원피스 하나, 발엔 쪼리를 장착한 나의 모습은 영락없는 여행객. 내지는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금방이라도 뛰어들 준비가 된. 이탈리아의 햇빛은 뜨겁다 못해 따가워서 선크림을 바르고 또 발랐다. 


그렇게 다섯 개 마을 중 가장 끝에 있는 ‘몬테소로 알 마레’로 향했다. 다섯 개 중 가장 큰 해변이 있어 수영도 할 수 있댔다. 과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해변이 바글바글 했다. 파라솔과 비치체어 두 시간 이용료는 15유로쯤 했던 것 같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해변가나 풀밭 아무데나 풀썩풀썩 누워있던 탓에 돈을 내라는 소리에 주춤했으나, 파란 스트라이프의 파라솔 밑에 눕자 포카리스웨트 광고의 주인공이 된 듯 했다. 처음 망설인 게 무색하게 이용시간 두시간을  꽉채워 책도 보다가, 태닝도 했다가, 바닷가에 몸도 담갔다가, 맥주도 마셨다가 했다. 에메랄드 색 바다를 배경으로 빈둥거리는 기분은 정말 끝내줬다.

3. 아침을 거르고 대신 젤라또를 먹기로 했다. 적당히 불친절한 직원이 건네준 레몬맛 젤라또는 쫀득하고 무지 셨다. 젤라또를 들고 마나롤라의 해안절벽을 보러 갔다. 전날 찾다 찾다 결국 어두워져서 못봤던 그 유명한 포토스팟은 알고보니 마나롤라 기차역에서 3분도 안걸리는 골목길로 통했다. 시간은 아직 아침 7시. 기차에서 전세계 관광객이 우르르 내리기 직전의, 북적이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 오직 이곳 친퀘테레에서 묵은 자만이 고요한 마나롤라의 절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아 풍경은 모습을 드러냈고, 준비해둔 에피톤 프로젝트의 친퀘테레를 얼른 틀었다. 

기대는 쉽게 무너진다. 정말 별 것 아닌 일로도 잘 망가지는 탓에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잔잔하게 실망한다. 때로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더라도 생각해온 모습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용히 지루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말 오랫동안 그려온 마나롤라의 풍경은 내가 상상한 딱 그대로였다. 


꿈이 바다로 형상화되는 순간. 파도소리로 귀에 와닿는 순간. 젤라또에 시큼함으로 혀에 고이는 순간.‘걱정은 저기 멀리에  푸른 물결이 부는 곳에 내던지고’ 라는 가사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골목길을 돌아나와 다시 숙소로 향하는데 저 멀리서 기차가 도착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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