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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May 09. 2024

내가 겪은 엄마의 슬픈 예견

오늘은 출근하지 마라.


- 제 글에 나오는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그 신엄마라는 사람이 설치해놨던 동자불상 목을 치우자 거짓말처럼 다음 날부터 손님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늘 12 신령님 중에서도 동자신이 가장 영검하다고 그래왔는데, 언젠가 한 번은 엄마 몸에 그 동자신이 실려서 내게 말했다.

" 형아는 학교 끝나면 맨날 맨날 요구르트 하고 초코파이 사 먹지? "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아무튼 나는 그때부터였다. 왠지 동자신이 날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못 된 행동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늘 나는 그 나이에 해서는 안 될 비행을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엄마의 그 신기한 신통력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손님 중에서도 자주자주 왔다 갔다 하는 단골들은 내게는 '이모'였다.

 나는 그 이모들이 오면 주로 커피를 타주었는데, 이모들마다 입맛이 다 달라서 어떤 이모는 커피, 설탕, 프림이 두 숟가락씩 들어간 다방커피를 드시는 이모가 있는 반면, 커피 반 스푼만 넣어 블랙커피를 드시는 이모, 커피 반 스푼, 설탕 반 스푼을 넣어 약간 달달한 블랙커피를 드시는 이모도 있었다. 나는 그 이모들의 커피 스타일을 다 외워서 이모들이 따로 주문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각기 입맛에 맞춰서 커피를 내왔다.

 우리 집으로 오는 단골 이모들 중에는 갖가지 직업을 가진 이모들, 전업 주부인 이모들 등이 많이 왔지만 그중에서도 화류계에 있는 이모들이 상당히 있었다. 특히 그런 화류계에 계신 이모들은 내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타다 주면 늘 내게 만 원씩 용돈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이모들이 오는 것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희진이 이모는 내가 커피를 타 줄 때마다 웃으면서 용돈을 많이 주는 이모 중에 하나였다.

" 음~ 역시. 커피는 우리 재성이가 잘 타~ "

 하면서 희진이 이모가 또 핸드백을 열어 돈을 꺼내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엄마는 그걸 보고 말했다.

" 얘!! 무슨 돈을 매번 이렇게 주니... 안 줘도 돼~ "
" 에이.. 많지도 않은데 뭘~ 재성아. 괜찮아. 받아도 돼... 응~~ "

 나는 또 엄마한테 한 차례를 맞을 까봐 엄마의 눈치를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받는 척 받아 감사 인사를 했다. 덕분에 내 지갑에는 늘 돈이 마르지 않았다.

 엄마는 늘 아침 6시가 되어 일어나면, 씻고 나서 커다란 주전자를 가지고 신당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주전자에 신당 위에 올려져 있는 옥수 그릇에 담긴 물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는 그 주전자에 새로 물을 담아다가 빈 옥수 그릇에 새로 물을 갈아 넣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면 싸대기를 맞는 때라서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서서히 암묵적으로 허락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옥수 그릇에 담긴 물은 아마도 신령님께 올리는 일종의 '밥'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엄마는 그렇게 옥수를 다 갈고 나면 신당 한가운데 앉아서 기도를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에 기도를 하더니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학교 가기 전이라 엄마의 통화를 엿들을 수 있었는데, 대화를 보니까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희진이 이모 같아 보였다.

" 얘. 진아. 자고 있었니? "

 희진이 이모는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주로 이런 이른 아침에는 늘 자고 있다. 그런데 그걸 아는 엄마가 희진이 이모를 아침부터 전화를 해서 깨운 것이다.

" 진아. 정신 차리고... 잘 들어. "

 엄마는 기도를 마치더니 약간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희진이 이모랑 통화를 했다. 엄마의 통화를 들어보니까 아마도 너무 이른 아침이라 이제 막 잠에서 깨어서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들으라는 소리를 몇 차례나 하고 깬 것을 확인한 뒤에야 엄마가 말했다.

" 진아.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 응? "

 엄마의 표정을 보니까 꽤나 심각했다.

" 그래. 언니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 오늘은 언니 말 좀 듣고... 절대로 출근하지 말어. 응?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어? "

 그러고도 몇 번이나 더 확인을 한 뒤, 알았다고 대답을 들은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렇게 전화통화를 끊은 엄마에게 도대체 왜 그런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또 엄마에게 물어본다면 100%의 확률로 싸대기가 날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관심을 끊어야 했다.

 그런데 엄마가 왜 희진이 이모한테 출근하지 말라고 그랬는 지를 그 다음날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뉴스에서 말이다.

 TV에서는 동두천의 한 유흥업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였다. 뉴스에서는 동두천 한 유흥업소에서 '양 모씨'라는 여직원이 벌거벗겨진 채로 화장실에서 살해를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엄마는 어디선가에서 전화를 받더니, TV를 틀어 그 뉴스를 확인하고는 목 놓아 울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그토록 출근하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의 공수 (공수: [명사] 무당이 신(神)이 내려 신의 소리를 내는 일. 무당이 죽은 사람의 넋이 하는 말이라고 전하는 말.)를 무시하고 출근을 했는데, 화장실에서 어떤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한 뒤 살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워낙 어려서 '강간'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희진이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건 나이가 어린 내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희진이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것 자체로도 충격이었으나, 우리 엄마가, 김을 팔던 우리 엄마가 그 죽음을 예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 사건은 내가 무당으로서 우리 엄마는 '과연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시험을 볼 때면 항상 속으로 '동자야 형 좀 도와줘~' 하고 비는 습관이 생겼다.

 엄마는 희진이 이모가 죽은 이후로 며칠 동안을 슬픔에 잠겨서 오는 손님도 거부를 했다. 아마도 짐작건대, 자신이 왜 더 발 벗고 말리지 못했나? 내 입으로 나온 점을 왜 내가 확신을 갖지 못했나? 싶은 마음에 좌절감에 빠졌을 것이다.

 무당은 일반인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알 수 없는 비애에 젖은 직업이다. 엄마의 말로는 무당은 내 부모가 돌아가셔도 갈 수 없다고 했다.

 무당은 잡귀를 내쫓는 사람이라, 무당이 상갓집에 가면 자신의 부모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 부모의 혼 역시 갈 곳을 제대로 못 가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엄마가 희진이 이모를 잃고 정신을 차린 것은 거진 한 달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엄마는 본격적으로 '한양 12 거리'를 배우기 위해서 무속 용품점을 파는 만물사로 향했다.

 다행히 엄마가 설명하는 그 '태성엄마'는 그 무속 세계에서도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나 보다, 다행히 만물사에서도 연락처를 알아서 엄마는 신엄마로부터 독립하여 첫 굿판을 열었다.

 엄마는 그 '한양 12 거리'라는 것에 대해서 1도 모르는 상태라 모든 것을 그 '태성엄마'라는 사람에게 맡겼다.

 그 굿판에는 태성엄마를 포함한 무당 3명과 국악기 중에서도 피리를 부는 악사 1명이 팀을 이루고 구성되어 왔다.

 그 태성엄마를 불러서 하는 한양 12 거리는 자신의 신엄마가 하는 굿과는 정말 차원이 달랐다. 자신의 신엄마가 하는 굿은 징과 제금, 장구 등을 정해진 박자도 없이 그냥 마구 때려대는 굿 같이 느껴진 반면, '태성엄마'가 하는 굿은 너무나 웅장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피리소리까지 더해지니 그 분위기는 한마디로 예술이었다.

 그 굿은 장구조차도 정해진 박자가 있으며, 장구와 제금, 그리고 피리소리가 너무나 절묘하게 어우러져 엄마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 굿을 처음으로 자세히 본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온통 그 생각으로 잠겼다. 하지만 그때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고, 게다가 그 무당들이 말하는 이른바 '문서(굿을 할 적에 무당들이 하는 주문과도 비슷한 것)'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지금에 와서 나는 그 한양굿이라는 굿거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문서'라는 것은 어떤 규칙이 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 '문서'를 얻어 내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 해도 잘 얻어지지 않는 문화였기 때문에 엄마는 머리를 썼다.

 '태성 엄마' 같은 선생님이 한 거리가 시작이 되면, 엄마는 옆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실 문에 귀를 바짝 붙이고 속치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한마디 한 마디씩 적는 방식으로 문서를 빼낸 것이다.

AI로 그린 가상 이미지


 그렇게 하려면 엄마의 굿이 엄청나게 많아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그 굿을 배우기 위해서 굿판을 열지 못하는 적은 금액에도 굿판을 열었다. 본인이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해도, 심지어는 본인 돈이 더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굿판을 열었다. 그렇게 해서 하나씩 하나씩 그것도 조금씩 조금씩 적어 짜깁기를 해서 완성을 해 나갔다.

 그렇게 엄마는 스스로 선생님이 되어 스스로를 가르쳤다. 나중엔 한양굿에서도 눈을 또 뜨고 보니까 '태성엄마' 같은 선생님의 부류 중에서도 급이 나뉜다는 것을 알았고, 엄마가 부른 '태성 엄마'는 그저 그런 B급 선생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는 지리산으로 기도를 다녀오더니 갑자기 이사를 해야겠다고 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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