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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데이터의 숲, 다시 찾은 마음

— 행복의 재발견 —

by 제이욥

박지훈 씨의 삶은 언제나 복잡한 알고리즘과 완벽한 통계 그래프 속에 있었다. 그는 서울 최고의 빅데이터 기업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데이터 분석가였다.


그의 손을 거친 방대한 사용자 행동 데이터들은 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고, 그의 이름은 '데이터 마에스트로'로 불렸다. 그는 사람들의 감성이나 직관보다는, 오직 숫자로 증명되는 예측 모델과 효율적인 분석에 주력했다.


그에게 데이터란 '객관적인 진실'이자 '세상을 움직이는 절대적인 힘'이었다. 사람들의 주관적인 의견이나 비논리적인 행동은 그에게 '제거해야 할 노이즈'일 뿐이었다.


고도로 계산된 사용자 패턴, 완벽하게 정제된 통계 수치, 그리고 인공지능이 도출한 결론… 이 모든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위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그의 모토는 "데이터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였다.


“현재 이 앱의 사용자 이탈률은 타사 대비 1.5% 높게 나타났습니다. 행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푸시 알림 시간대를 저녁 8시 30분에서 9시로 변경하고, 개인 맞춤형 콘텐츠 추천을 0.02초 이내로 단축하면 사용자 만족도가 10% 상승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는 회의에서 늘 단호하고 자신감 넘쳤다. 그의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 방식 덕분에, 그가 담당하는 프로젝트는 늘 경이로운 성공을 거두었다. 전 세계 유명 IT 기업들은 그의 리포트에 주목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미래를 읽는 통찰가', '데이터 혁명의 선구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존재했다. 아무리 완벽하게 예측된 결과와 엄청난 성공을 보아도, 그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어려웠다. 고도로 계산된 로직, 완벽하게 조율된 알고리즘… 그것은 완벽했지만, 어딘가 차갑고 메말라 있었다. 어릴 적, 흙먼지 묻은 손으로 낡은 퍼즐을 맞추며, 조각 하나하나가 전체 그림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깨닫던 소박한 기쁨은 이미 오래전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가치의 본질일까? 완벽하게 분석된 이 숫자 속에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데이터를 파헤치는 걸까? 나는 행복한가?"


그는 종종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답을 찾기 전에 다음 프로젝트의 복잡한 머신러닝 모델 구축과 마감 기한이 그를 채찍질했다.


그의 연구실 책상 한구석에는 덮개에 덮인, 어릴 적 여동생과 함께 가지고 놀던 낡은 그림 카드 한 세트가 놓여 있었다. 그림 카드 속에는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훈 씨에게 예상치 못한 불운이 닥쳤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구축했던 사용자 만족도 최적화 시스템이 예상치 못한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데이터는 분명 '고객 만족 15% 상승'을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사용자들의 대규모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정 서비스가 너무 과도하게 개인화되면서 사용자들은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며 앱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의 완벽한 시스템이 대규모 사용자 이탈을 야기한 것이다.


"말도 안 돼!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분석하고 예측했는데! 이 데이터는 절대 거짓말을 할 리 없어!"


그는 경악했다. 그의 완벽한 예측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모든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클라이언트들의 항의와 대중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의 화려한 데이터 분석 인생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듯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손에는 남은 것이라곤 수많은 오류 보고서와 함께, 공허함만이 가득한 머릿속뿐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에게 여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은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는 여동생 지영이 투자 유치에 실패해 파산 직전에 놓였다는 소식이었다.


지영은 출판하는 책마다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늘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으며 소중한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훈은 늘 “너는 데이터 분석이 약하다”며 비판했지만, 지영은 “책은 사람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작은 출판사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지훈은 휴직계를 내고 무작정 여동생의 독립 출판사로 향했다. 그에게는 여동생을 구해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이 있었다. 그의 손에는 망가진 노트북과 수많은 오류 보고서만이 들려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몹시 무거웠다.


도착한 여동생의 출판사는 낡고 아담했지만, 책 향기가 가득했다. 좁은 사무실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지영은 그의 핼쑥해진 모습을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빠, 너 얼굴이 왜 이렇게 핼쑥해졌니? 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마, 오빠 회사도 힘들다며.”


지영의 따뜻한 말과 손길에 지훈 씨는 낯선 위로를 받았다. 굳이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여동생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지영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었다.


출판사의 낡은 의자에 앉아, 그는 오랜만에 고요한 안식을 느꼈다. 어쩌면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휩싸였다.


그날부터 지훈 씨는 출판사 안에서만 지낼 수 없었다. TV를 켜도, 책을 읽어도 그의 마음은 온통 답답함으로 가득했다. 그의 감정은 억눌려진 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어슬렁거리다, 그는 지영이 편집 중인 낡은 원고들을 발견했다.


그는 어릴 적, 여동생과 함께 낡은 그림 카드를 보며 인물들의 감정을 맞추던 기억을 떠올렸다. 화려한 데이터 분석은 없었지만, 그저 서로의 얼굴 표정을 보며 감정을 읽어내던 그 순간의 순수한 즐거움. 문득 잊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는 굳이 목적을 두지 않고, 그저 발길이 이끄는 대로 지영의 원고를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원고의 내용이 그의 데이터 분석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판매 예측이 불가능한, 대중성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 하지만 낡은 활자가 울리는 투박한 이야기, 작가의 진심이 담긴 문장들이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


이 모든 것이 도시의 대형 IT 기업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진짜 감각이었다. 그의 온몸의 세포들이 살아나는 듯했다. 이 알 수 없는 따뜻함이야말로 그가 찾던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 서툰 솜씨로 원고를 읽는 그에게 지영은 말했다.


“오빠,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래. 어떤 때는 너무 복잡해서 어떤 데이터로도 설명할 수 없고, 어떤 때는 너무 단순해서 한마디 말에도 흔들려. 이 책들도 마찬가지야. 숫자로 설명할 수 없어도, 누군가에겐 엄청난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책을 통해 독자들이 행복해하는 것, 그게 우리 출판사의 가장 큰 보람이자 오빠가 잊고 살았던 진정한 행복일 수도 있어.”


여동생의 말은 지훈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화려한 데이터와 완벽한 예측이 주는 찰나의 성공 대신,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주는 깊은 만족감.


그는 자신이 좇던 '객관적인 진실'이 실제로는 너무나도 차갑고 고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감정 앞에서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며, 그 속에서 소박한 행복을 재발견했다.


지훈은 그날부터 여동생의 출판사 일에 온전히 몰두했다. 그는 더 이상 '데이터 분석'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에 집중했다. 굳이 복잡한 시장 예측 대신, 손으로 직접 낡은 원고들을 검토하고,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독자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책이 주는 감동과 위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 노력했다. 차가운 분석에서 벗어나 따뜻한 통찰력을 얻어갔다.


한 달 후, 지훈은 여동생의 출판사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화려한 도시의 빅데이터 분석가 대신, 소박한 출판사에서 그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사람의 마음을 읽는 통찰력을 배웠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성한 투자 제안서와 함께, 새로운 관점으로 분석한 독자들의 정성스러운 리뷰들을 들고 투자자들을 찾아갔다. 그의 투자 제안서는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투자자들이 그의 '비합리적인' 제안에 의아해했다.


“박지훈 씨, 이 책의 예상 판매량은 시장 분석 데이터로 볼 때 너무 낮습니다. 감성적인 요소만으로는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습니다.”


투자 담당자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지훈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물론 이 책은 대중적인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데이터를 넘어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한 명의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면,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제가 직접 독자들의 피드백을 분석한 결과, 이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를 줄 수 있는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가치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이 가져올 진정한 가치는 바로 독자들의 마음속에 피어날 행복입니다.”


그의 진심과 새로운 통찰력에 투자자들은 결국 설득되었다. 여동생의 출판사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지훈이 제안한 책은 '데이터 너머의 위로'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되었고, 예상치 못하게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더 이상 '데이터 마에스트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는 통찰가'로 불렸다. 그의 분석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진정한 행복을 재발견했다.


"가장 완벽하고 화려한 데이터와 예측이 자네를 성공으로 이끌 수는 있어도, 그것이 자네 마음을 채워줄 수는 없을 걸세. 때로는 모든 숫자의 흐름과 합리적인 분석을 내려놓고, 투박하고 비효율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게나. 가장 평범하고 소박한 것 속에서, 자네가 잃어버렸던 진짜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행복을 재발견할 수 있을 테니."


지훈 씨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그의 새로운 삶은 여전히 데이터를 다루었지만, 그 위에 사람들의 온기와 진심이 담긴, 살아있는 통찰을 더했다.


그는 매일 아침 차가운 숫자 속에서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를 찾으며 기쁨을 얻었다. 데이터의 숲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마음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의 분석은 이제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가치'를 창조하는 일로 흘러갔다. 그는 마침내 진정한 데이터 통찰가로 성장했으며,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행복을 재발견하는 지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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