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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DoG Oct 29. 2020

해보고 싶어서, 해봐야 후회하지 않을것 같아서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사람이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자신 없어하는 부분은 음악 분야였다. 하고 싶은 마음은 매번 굴뚝같았지만 기회가 닿지 않거나 주저하는 바람에 접할 기회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나는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관심과 시선을 받아 보고 싶었다. 그때 내 나이 이미 19살, 아이돌이 되기에는 많은 나이였고,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빡센 현실인 만큼, 목표는 크게 두되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정도의 꿈을 꾸었다. 그렇지만 절대로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해 본 적은 없다. 그렇게 말하기가 부끄럽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너가? 갑자기?” 라는 물음에 해명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고, 사람들은 아마 나를 관종이거나 허망한 꿈에 빠져있는 사람인 줄 알 것이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안될 걸 알지만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조차 못하고 포기하는 건 아닌듯 싶었다. 그렇게 가족들한테는 보컬 레슨을 받는다고 말을 해 놓고 나는 가수오디션반에 등록을 했다.


학교 다닐 때도 한두 번 소속사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특히 내가 다녔던 학교는 미디어와 sns를 많이 제한하기 때문에 아이돌과 같은 연예계 문화에는 다소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첫 오디션은 큐브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이었는데, 1월 말의 추운 겨울날 나 혼자 청담동 사옥에 가서 두세 시간 정도 줄을 서서 대기하다가 15초 정도 노래를 하고 나왔던 게 기억난다. 추위 때문인지 긴장해서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행복하고 후련했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을 했다는 것, 쉽지 않겠지만 한발 내디뎠다는 것이 나에겐 성취감이자 행복이었다. 그 뒤로 노래를 녹음해서 올리거나, 성악 레슨을 받는 등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노력을 했고, 이번에 안 하면 아마 평생 못해볼 일인 것 같아서 냉큼 학원에 등록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런 걸 해봐야 조금이라도 덜 쪽팔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나의 아이돌 준비가 시작되었다. 어차피 안될 걸 알면서도 시작을 했고, 만약에 된다고 하더라도 나의 최종 목표는 소속사 연습생이 되어보는 것이었다. 스타일리스트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아이돌이 된다는 건, 소속사와 7년의 계약 문제로 묶여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멤버들과도 잘 맞춰나가야 한다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석하게도 첫 수업은 댄스 수업이었다. 나는 춤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고, 몸치이기 때문에 춤에 자신감이나 흥미도 별로 없었다. 안 그래도 첫 오디션 학원이라 긴장이 되는데, 첫 수업이 댄스 수업이어서 나는 그냥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싶어 댄스실 입구만 어슬렁거렸다. 결국 여기까지 와서 안 한다는 건 나중에 백 퍼센트 후회하기 때문에 댄스실로 들어갔다. 한쪽 벽이 통거울로 된 연습실이었고, 나는 가장 뒤쪽 구석에서 선생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겨우겨우 따라갔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나는 정말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많은 성취감과 행복함을 느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음을 열렬히 느낀 순간들이었다.


학원에서는 댄스, 보컬, 컨설팅 그리고 영상강의 수업이 있었다. 댄스는 매주 월요일, 보컬은 화요일. 컨설팅 수업은 수요일, 그리고 영상 수업은 목요일이었고, 그 외에는 연습을 하러 학원에 갔기 때문에 거의 매일같이 학원에 출석했다. 그중 보컬 수업만 개인 레슨이었고, 단체 레슨이 많아서인지 나는 학원 친구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댄스 수업은 학원과 조금 거리가 있는 지하 연습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나처럼 춤이 처음인 친구들이 함께 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잘 못 따라가는 학생이었다. 영상을 찍어서 보면 확실히 내가 뒤처지는 걸 알 수 있는데, 너무 쪽팔려서 이건 패스하도록 하겠다. 댄스 선생님은 젊은 남자분이셨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아마 나와 열 살 차이도 안 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힙합 소울이 묻어나는 춤들을 많이 가르쳐 주셨고, 몸에 힙이라고는 단 1그램도 없는 나는, 같은 동작을 해도 어색함만 묻어 나왔다. 그중에 춤을 잘 추는 동생과 친해져서 나중에는 같이 연습을 하고 나는 항상 동작을 배웠다. 춤은 아주 못 췄지만 가장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나는 춤을 배우면서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과 함께 춤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일단 신나는 노래에 맞춰서 몸을 움직인다는 게 생각보다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 못 추지만 가장 열심히 했던 수업이었다. 보컬에 집중하려던 나는 막바지에는 춤에 빠져서 연습량을 춤에 몰빵하곤 했다. 같은 달에 학원에 들어온 친구들끼리는 많이 친해져서 같이 연습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랜덤댄스를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는 것이었는데, 어차피 배우지도 않은 안무라서 아는 사람은 알아서 추고 모르는 사람은 몸을 흔들어 재끼면 되는 몸풀기 운동이었다. 나는 힙한 춤보다는 아이돌 댄스, 그중에서도 여자 아이돌 댄스에 잘 맞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나조차도 춤을 추다 보니 선이 강조되는 여자 아이돌 안무가 나와 잘 맞는 느낌을 받았다.


보컬은 매주 한 시간씩 수업을 진행했는데, 기대와 달리 재미가 없었다. 나는 기초조차 잡혀 있지 않은 발성이었고, 그 때문에 한 달간은 스케일 연습만 주구장창 했다. 여기저기서 짧게 발성을 배웠지만 가르쳐주는 선생님마다 발성법이 조금씩 달라서 항상 힘든 부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컬을 잘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살짝 못하는 축에 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학원에는 날고 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예고를 나오거나 어렸을 때부터 가수를 준비해온 친구들도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계속 기가 죽어갔다.


컨설팅 수업은 매주 주제를 정해서 개인, 혹은 팀으로 짧은 공연을 올리는 수업이었는데, 이 수업을 통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내 첫 컨설팅 주제는 대중교통이었다. 팀은 나와 같이 들어온 두 명의 친구가 함께 했는데, 한 명은 보컬전공 휴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예고를 다니다가 자퇴하고 연습생 준비를 하는 친구였다. 대중교통이라는 막연한 주제에 우리는 무엇이든 해야 돼서 대중교통 관련 노래들을 찾아보았다. ‘지하철에서’ ‘버스정류장’ ‘양화대교’ 등등의 노래를 후보에 올렸다. 예고를 다닌 친구는 굉장히 열정적인 데다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서 도맡아서 편곡과 음원 녹음을 해주었다. 공연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준비 과정에서 사귄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낯설었던 학원에 정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또 기억에 남는 컨설팅 주제는 1분 PR이었는데, 나는 이것을 위해 당시에 하고 있던 편의점 야간 알바 시간에 1분 스톱워치를 켜 놓고 패션 유튜버가 되어서 제품을 설명하는 연습을 했었다. 시선을 끌 수 있는 소재, 그중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고, 1분 안에 나를 표현 할 수 있게 준비했다. 나는 준비과정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이런 거에 재능이 있었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소재를 정하고 연습을 시작했고, 결국 본 무대에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히 1분 만에 PR을 마칠 수 있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걸 본 선생님도 너에게 끼를 보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열심히 준비한 것에 박수를 받아서 기분 좋은 시간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1분을 채우지 못하거나 어정쩡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에 내가 새삼 대단했구나 싶어 자신감이 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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