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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DoG Oct 29. 2020

최선을 다하고 포기했다

처음부터 팀장님이 두려웠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 팀장님은 나에게 특별히 친절했고,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으로서 그렇게까지 친절하진 않았지만 팀장님 치고는 엄청 친절했었다) 가끔 둘만 있을 때 어떻게 일을 해야 자기 성격을 안 건드리는지에 대해 알려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혼나는 게 반복이 되며 나는 두려움을 학습했고, 결국에는 팀장님이 없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살고 싶어서 도망쳤다. 어쩌면 스무 살 그 푸릇푸릇한 첫 장래희망을 손에서 놓아버릴 만큼 두렵고, 힘든 일상이 반복되기에 나는 나를 살리려고 일을 그만두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조금 더 해보라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살고 싶어서 아주 처절하게 내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스타일리스트와의 연을 끊었다. 그렇게 일년은 커녕 겨우 4개월을 채우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멤버들과 모두 인사하고,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헤어 메이크업 스텝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내가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아서인지 다들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나 조차도 뭉클해서 잠시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마지막엔 선배들과 피자를 시켜 먹고 나는 홀가분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새벽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정말 후련하고 행복했다. 이제 알람 따위는 맞추지 않아.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을 거야. 다음날에 팀장님께 편지와 작은 선물을 드렸다. 이제 나 없이 음악방송을 이어가야 하는 팀장님은 조금 지쳐 보였다. 이제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사람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만두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을 친구들 모임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내 평생의 한, 친구들이 술 마실 때 같이 하지 못한 게 너무 서러워서였을까, 나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친구들을 만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가끔은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했다. “왜 그만뒀어~ 좀 더 해보지” “너 1년은 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래도 하고 싶은 일로 돈 버니까 좋은 거 아니야?” 등등의 말은 오히려 나를 아프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열불을 토하며 이 일이 얼마나 내게 힘들고 공포스러웠는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지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못 듣고 큰소리로 야단만 맞았는지에 대해 토로했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어~ 수고했다” 정도의 위로가 전부였다. 


나는 그때 내가 너무 감정적이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해서 친구들이 공감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는 크게 공감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말로 힘들었다고 한다지만, 그 압박과 공포를 느껴보지 못한 이들은 절대로 내가 살고 싶어서 도망쳐 나왔다는 말에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내가 나약하고, 꿈에 대한 노력과 능력이 부족해서 그만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주변 친구들과 다른 어른들에게서 그런 눈빛을 자주 보았다. ‘그러게 너가 좀 더 잘 해보지 그랬어~ 이제 와서 힘들었다고 포장하면 너가 그만둔 게 조금이나마 정당한 이유가 될 것 같니?’ 사실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어디 가서 힘들어서 그만두었고, 내가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걸 멈추었다. 그저 내가 생각했던 일과는 조금 다르다고, 나와 안 맞는 일이라고 둘러대곤 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일 자체는 나와 잘 맞았지만, 팀장님 같은 사람을 만나서 문제였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나중에 꼭 다시 한번 이 일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건 내 첫 꿈이니까.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설렘에 가슴 뛰던 일이니까.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쉽게 포기했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내가, 그런 내가 제일 아팠다. 


일을 그만두고 일주일이 조금 넘어갈 무렵 친구의 소개로 한정식집에서 주방보조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주방보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시급 만 이천원이라는 그 당시 엄청난 금액에 백수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선뜻 알바를 시작했다. 당시 최저시급의 두 배 정도가 되는 금액이었으니 안 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일은 정말 힘들었다. 오전 아홉시 반까지 식당에 가서 재료 손질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밀려오는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그렇게 하루 대여섯 시간,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일을 하다 보니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처음 며칠은 알바가 끝나고 나면 침대에서 뻗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육체적으로는 힘든 일이었지만 생각 없이 일해도 돼서 익숙해지니 오히려 편한 느낌이었다. 원래도 오래 일할 계획은 아니었지만 계속되는 알바 빵꾸 때문에 어떤 날은 하루 온종일 풀타임으로 알바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꾸만 일이 늘어가는 게 짜증이 났던 나는 한 달 만에 알바를 그만두었다. 알바비는 내가 스타일리스트로 일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금액을 받았다. 갑자기 큰 돈을 쥐게 된 나는 그걸로 배우고 싶었던 학원을 등록하고, 먹고 싶은 떡볶이를 양껏 먹었다. 마침 그만두고 나서 결막염이 심하게 걸려서 매일같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살았기에 돈은 빠져나갈 줄만 알지 들어올 구멍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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