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마을아파트 Jan 15. 2024

26화 슬픔과 기쁨 그 사이 어딘가

널 어떡해야 할까


스~읍!

갈비뼛속까 시리도록 겨울 아침 공기를 깊이 크게 들이마셔본다. 


후~우!

차가운 공기가 숨구멍을 지나 폐 구석구석을 누비다가 갈비뼈 사이사이를 가득 채우고 나간다.


막혔던 속이 뚫리는 것 같다.


하얀 입김이 퍼져서 나올 때마다

이게 한숨인지,

나의 고민인지 모르겠다.

...


널 어떡해야 할까.


...




밤 10시 이후가 되면 녀석은 지쳐 잠들기 전까지

온 거실을 배회한다.


착, 착, 착, 착, 착, 착...

녀석의 발자국 소리가 끝도 없이 들려온다.


거실부터 부엌까지

부엌부터 화장실까지

화장실부터 안방 문 앞까지

안방 문 앞부터 다시 거실까지

거실부터 다시 부엌까지

부엌부터 다시 화장실까지

화장실부터 다시 안방 문 앞까지

...


끊임없이 배회하는 너의 모습을 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해본다.


"쏘피야, 한밤중에 운동하는 거야?

그래, 좋다 좋아. 그렇게라도 운동해야지 뒷다리 근력이 좋아지지."


이렇게 배회하는 녀석의 밤이 수차례 이어진다.





착, 착, 착, 착, 착............

... 착, 착, 착...     털썩 차락차락 차락....


규칙적인 발소리의 리듬이 갑자기 달라졌다.

불안하다.

나의 두 눈은 녀석이 어디 있는지 급히 쫓는다.

방향 감각을 잃은 녀석이

방향을 틀 때마다 휘청거리다가, 이제는 넘어진다.

뒷다리에 힘이 없어 주저앉고 일어서지 못한다.


멍한 눈으로 버둥거리고 있는 녀석을

난 급히 안는다.

나의 품 속에 있는 녀석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느린 걸음과는 다르게 빠르게 뛰는 녀석의 심장박동을 느끼며

나는 녀석을 더욱 세게 안아준다.

이제 괜찮다고 괜찮다고...


녀석이 작은 음 소리를 낸다.

아픈가 보다.

녀석을 품에 꼭 안고 있어야만 느껴지는 아주 작은 음 소리이다.

끄응~끄응~끄응~ 끄응~ 끄응~ 


머리가 아픈 걸까?

얼마나 아픈 걸까?

온몸으로 느껴지는 너의 작은 음 소리가

나의 심장을 후려친다.

네가 말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아프다고 울기라고 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는 아프지 않았을까?



널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해 주려면

이제 난 널 어떡해야 할까?


너에 대한 사랑의 책임이 너무 가혹하다.

널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 하는 걸까? 




아침엔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걸까? 아침의 쏘피 .. 이런 널 어떻게 보내니?!ㅜㅜ
늦은 밤까지 힘들어하다가 지쳐 잠이 든 쏘피는, 다음날 아침, 쏘피야!~부르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쳐다본다. 10시10분 눈이 아닌, 이렇게 귀여운 눈으로...








, 쾅, , 쾅, 쾅!

"엄마! 엄마, 빨리 나와봐요! 엄마!"


화장실 안에 있던 나는 고딩 딸내미가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머리에 샴푸칠을 잔뜩 했는데, 어쩌란 말인가.


샤워기 수압을 한껏 높이고 손가락에 힘을 줘서

새가 파닥파닥 날갯짓하듯, 

세차게! 빠르게! 머리카락의 샴푸를 제거한다.


"왜? 왜?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기해 봐라!)


괄호 안의 말은 속으로 꿀꺽 삼키고,

급하게 밖으로 나와 고딩 딸내미에게 대답한다.


고딩 딸내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쏘피가 이상한 걸까?


 순간 고딩 딸내미가 대성통곡을 한다.


 "으흐흑! 오빠가... 오빠가 합격했어요!"


"응?" 

난 아직도 상황파악 중이다.


"오빠가 논술고사에서 합격했어요!"


62대 1이라는 미친것 같은 경쟁률의 인문 논술고사에서 재수생 아들이 합격을 했단다. 

아! 삼수를 안 해도 되는구나.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갑자기 눈물이 나온다.


옆에서 고딩 딸내미가 울면서 말한다.


"이젠 쏘피만 아파요. 쏘피만 죽어요.

다 잘됐는데, 쏘피가 아파요. 으으으 ㅠㅠ ㅠㅠ "


대성통곡하고 있는 고딩 딸내미의 저 울음이 이해된다.


이상하다.

기쁜 일이 생기니, 묻어두었던 슬픔이 두배로 아프게 느껴진다.


희로애락을 주관한다는 편도체의 오작동인 건가?

아니면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슬픔과 기쁨은 결국은 같은 걸까?

별 생각이 다 든다.


나의 기분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다가,

슬픔기쁨 그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25화 쏘피야, 조금만 천천히 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