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매니저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지표가 하나 있다. 바로 피의 지표(Blood Indicator)다. 이 지표는 단순히 미국 3개월 만기 국채의 금리를 하이일드 스프레드(고위험 회사채에 대한 금리 스프레드)로 나눈 값이다.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S&P 500 지수와 그 낙폭 그리고 피의 지표를 같이 표시해놓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21세기에 발생했던 몇 번의 큰 금융위기들이 현실화되기 전에 이 피의 지표가 그간의 상승을 마치고 하락을 시작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데이터상 현재의 상황이 그 초입인 것도 알 수 있다.
이 지표의 함의는 사실 장단기 커브 역전 현상처럼 매우 직관적이며, 또한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인해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금융시장에서 거래를 하고 또 기업들이 사업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유동성(Liquidity)이다. 이 유동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몸으로 치면 혈액과도 같다. 우리 몸에 혈액이 부족하거나 혹은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면 몸의 곳곳에 이상이 생기는 것처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유동성 경색 현상 즉, 유동성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금융시장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존의 선순환 사이클이 반대로 돌면서 악순환이 펼쳐진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냥 저절로 굴러가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재료는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즉, 신용(Credit)이다. 돈은 없지만 아이디어가 있어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자금을 조달해와야 한다. 만약 자금을 조달해 주려는 경제 주체들이 그 사람을 신뢰한다면 돈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신용이 없다면? 돈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거나 혹은 굉장히 높은 금리로만 돈을 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그 사람을 믿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만약 인류에게 이러한 신뢰나 신용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이렇게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는 담보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담보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 또한 사실 담보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 담보 가치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더 큰 할인율을 매겨 기존보다 돈을 더 적게 빌려주려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최용식 소장은 그의 저서 <경제병리학>에서 그만의 뾰족한 논리로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경제 사이클에 대한 명쾌한 해설을 내놓고 있다.
광기는 수요의 시간이동에 의해 일어나고, 패닉은 수요의 시간이동에 따른 수요의 공동화에 의해 일어나며, 붕괴는 신용창조원리의 역과정인 신용파괴원리가 작동함으로써 일어나며, 금융위기가 경제적 파국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제의 순기능이 역기능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경제병리학의 관점이다.
(중략)
경제에서는 ‘신뢰’가 공기와 물 같은 역할을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체제가 무너질 위기를 맞을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하다. 모든 경제적 위기는 신뢰의 상실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강조하거니와, 시장경제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는 신뢰이다. 신뢰가 없으면 시장경제란 성립할 수 없다.
- <경제병리학> 中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선순환을 만들어내면서 작동할 때 새로운 신용 창조는 매우 쉬운 일이며 시장에는 유동성이 넘쳐난다. 하지만 반대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경제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반대로 신용파괴원리가 작동해 시장에 유동성이 급격하게 메마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신규로 대출을 내주기를 꺼려 하고 심지어 있는 대출마저 만기가 되면 차환을 해주려 하지 않는다. 결국 돈이 귀해지고 금리가 오르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유동성 경색과 신용 경색에 의해 기업들이 도산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피의 지표가 고점을 찍고 하락한다는 것은 결국 경기가 안 좋아져 미 연준이 정책 금리를 낮추고 있지만 동시에 불경기와 고금리를 이기지 못한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하이일드 스프레드가 상승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현재 경제 시스템 상에서 계속 출혈이 발생하고 있다. 안전벨트를 단디 매고 안티프래질의 시대를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