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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시 Jun 22. 2022

취미라는 이름의 행복한 개미지옥.

그래도 행복하니 그걸로 되었다.

뭔가 시작하기 전에 장비부터 잔뜩 사들이는 사람이 있죠? 그게 바로 나예요.


   사이에 만년필과 등산 관련 물건들을 도른자처럼 질러대었다. 만년필은 살짝 소강상태인데(지를 만큼 질러서  지를  딱히 없음) 등산은 이제  시작인  같아서 앞날이 캄캄하다. 누가 등산이  별로  드는 취미라고 하였나!


물론 집 근처 산만 주구장창 다니면 돈 들 일이 없다. 등산 관련 카페에서는 이들을 ‘동백이’라고 부르더라. 동네 뒷산만 백 번씩 다닌다고.


나도 시작은 동백이었건만. 등산 매니아 친구가 살짝 끌어줬을 뿐인데 나 혼자 반동으로 붕 날아서 성층권 뚫고 올라가는 중. 조만간 열권에서 하얗게 타버리지 않을지 심히 염려되는 바이다.


등산에서 서서히 백패킹으로 관심이 전이되어, 어떻게든 편안한 집 놔두고 노숙을 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최대한 쾌적한 노숙을 위한 장비를 사들이고 있자니 이것이 무슨 삽질인가 싶지만, 산에서 맞이하는 새벽이 너무나 짜릿함을 며칠 전 소백산에서 느꼈기에(국립공원 대피소 예약해서 1박으로 다녀옴) 앞으로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백산 직찍 일몰. 이렇게 중년이 되어간다.>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그렇게까지 개고생 하며 오르는 것일까. 왜냐하면 마냥 좋기 때문이지여… 힘든데 좋아. 좋은데 개힘들어. 근데 너무 상쾌해. 이건 마치 할매할배들이 뜨거운 탕에 들어가 앉으며 크으 시원하다~!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을런지? 도대체 어디가 시원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원한 그 느낌. 바로 그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옷장 속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등산복 덕분에 일상복과 등산복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완벽한 중년으로의 진일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남편이 한창 등산복을 작업복 대용으로 입던 시절, 도대체 왜 저런 후줄그레한 옷을 입고 다니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렇게 만고 편한 옷인 줄 미처 몰랐지 뭐야. 등산복 짱. 등산복 최고.


등산복장에 쨍한 색상이 많은 것은 만에 하나 조난당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구조대의 눈에 잘 띄기 위함이라고 한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의 색상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대략 망한 것 같기도 하지만 패션 테러리스트 외길인생 20여 년인지라(엄마가 골라준 옷 입던 시절은 그래도 빼자) 딱히 아쉽지도 않다…


아무튼 등산 좋아. 등산 짱. 등산 최고. 어디 한 번 올라와 보시든가 하는 포쓰로 위엄을 뽐내는 험준한 산들도 멋있지만,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맞이해 주는 동네 뒷산도 사랑스럽다. 어릴 때 초등학교 뒷산 오르내렸던 추억과 오버랩되어 지금의 산행이 더 즐거운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꾸준히 산에 오를 수 있도록 나의 체력이 받쳐주기를. 그리고 등산 용품을 지를 수 있도록 재력도 받쳐주기를…


오늘의 내 관절이 가장 젊은 관절이다. 더 늙어서 골병들어 갤갤 대지 말고 오를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니자!


그런 의미에서 한라산 가고 싶다. 남편님 협조 좀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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