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자.
세이브 포인트도 없이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게다가 요즘 같은 때는 그야말로 언제 어떤 일로 갑자기 이승을 떠날지 모르는 시국이건만, 이 정도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살아야 하나?라는 스탠스를 기본적으로 갖추고서 욕망에 충실히 살아가던 나날이었다.
근래에 겪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응급실 출입과 입퇴원을 거듭하며 한 달 병원비로 백단위 지출이 순식간에 나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 훅 갈지 모르는 인생 맞다.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돈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요단강 너머로 쫓겨나듯 떠나야 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CT, MRI, 뇌파검사, 심전도 및 기타 자잘하게 병원에서 권유하는 온갖 검사들을 모두 오케이 고고싱 할 수 있었던 것은 철없는 주인의 수중에서나마 다행히도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고 있던 통장 잔고 덕분이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새벽마다 광활한 전뇌 세상을 헤엄치다가 꽂히는 물건이 보이면 일단 사보자! 망하면 어쩔 수 없고 성공하면 야호~ 마인드였다. 그땐 별 것 아니게 느껴지던 작고 귀여운 금액. 이제는 저저저 저렇게 큰돈으로 겨우 조딴 걸 산다고??라는 마음이 먼저 생긴다. 쓰러지면서 다행히도 뇌에 좋은 쪽으로 충격과 변화가 온 모양이다.
이제는 만으로도 변명할 여지없이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다. 골다공증은 이미 10여 년 전에 진단받았고 작년엔 임플란트도 박아 넣었다. 조선시대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으며 후손들의 곡소리를 감상하고 누워있을 나이렸다.
현대 의학 덕분에 고무줄처럼 늘려서 연명하고 있는 인생, 좀 더 소중하고 현명하게 보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더 이상 하루하루 똥 만드는 기계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딱히 지금까지도 고의로 똥만 만들면서 살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지만….
죽지 못해 산다고 농담처럼 말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험으로 확실해졌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고 싶다. 건강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구급차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던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더랬다. 얼마나 긴 시간을 이렇게 보내야 하나 걱정했으나 천운이 도와서 후유증 없이 무사히 살아남았고, 그 덕에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건강 자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맞지만, 적어도 적정 수준까지의 의료 처치는 돈이 없으면 받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에 돈이 없어서 적절한 때에 검사와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이루어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끼며 절망했을 것이다.
집에 가득한 키티와 세일러문 굿즈들이 평소의 정신건강에는 큰 도움이 되어주었을지언정, 막상 다급한 때에 그 아이들이 가족이나 나의 병원비를 내어주지는 않더라. 굿즈를 ‘아이들’이라고 칭하는 시점에서 이미 망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깨달음의 중턱쯤까지 타의로 굴러온 듯한 기분은 드니까 아직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잊지 말자. 내가 돈을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면 돈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한 줄 요약하면, 그냥 있을 때 아끼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