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Feb 27. 2023

잠들지 않는 병원(1)- 고통의 밤을 견디는 사람들

2016년 11월.

D병원의 밤은 다른 병원들의 밤과는 달랐다.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하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병실이 많았고 간호사들은 그 불빛을 보고도 침묵했다. 아니, 오히려 그 불빛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가끔은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묻는 따듯한 관심을 보였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병실에선 여지없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나 심한 고통을 이를 악물며 버티다 새어 나오는 신음 같은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는 며칠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가여운 소리였다.

그곳은 한 사람이라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면 그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나 간호하는 가족들 모두 함께 밤을 새우고 해가 뜨는 아침에서야 잠을 자는, 바깥세상과는 정 반대의 생활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날의 나는 남편의 간호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밤마다 새어 나오는 그 소리들에 익숙해지지 못해 병원밖으로 나가 참았던 숨을 내쉬며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병실로 들어가는 길, 활짝 열려있던 803호에서 전문 간병인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어휴, 힘들어 죽겠네."


"왜요? 오늘도 많이 아파하셨어요?"


아주머니는 간병인 협회 소속으로 얼마 전 803호에 입원한 30대 남자의 간병을 맡고 있었다.


"이제 일주일 정도면 피 뺄 때 덜 아플 텐데, 자꾸 아프다고 저렇게 소리 지르니... 아픈 건 알겠는데 나도 짜증이 나네."


30대 남성은 손가락 세 개를 잃었다.

접합에는 성공했지만 손가락을 쓸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손가락이 잘린 사람들은 수술 후 6일~8일 정도 하루에 2번, 3번씩 피를 빼줘야 한다는 걸 난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그 고통의 과정을 간병인이 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도 말이다.


수지접합 전문인 D병원의 801호부터 805호까지는 손가락을 다친 남자 환자들의 병실이 이었다. 특히 803호에는 다수의 손가락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병실이었는데 805호에 입원한 남편은 수술을 받고 고통이 조금씩 줄어들 때쯤 다른 병실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저 내일 퇴원합니다!"


다른 병실의 환자가 찾아와 퇴원 보고를 하면 남편을 비롯한 병실의 장정들은 모두 내 일처럼 기뻐하면서 통원치료 때 그냥 가지 말고 꼭 병실에 들러 얼굴 보고 가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하지만 퇴원하는 사람도 퇴원을 축하하는 사람들도 마냥 기쁜 건 아니었다. 손가락을 잃고, 팔을 잃고 다리를 잃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현실이 걱정되고 두렵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서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같은 고통을 겪고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축하와 위로가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분명했다.


남편을 따라 처음으로 803호에 따라갔던 날.

내 손에 들린 귤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한분이 반색하며 귤을 가지고 가셨다.


"귤 맛있겠네! 자~ 내가 골고루 나눠드릴게요."


환자와 간병인 아주머니들, 가족들에게 골고루 기분 좋게 귤을 나누고 있는 아주머니의 웃음이 호탕했다.


803호에 몇 번 방문했던 남편은 벌써 친해진 듯 안부를 묻고 치료상황을 나누며 아이들 이야기까지 수다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밤에 엄습하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이기려면 더 많은 수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803호의 칼국수 아저씨.

칼국수 아저씨는 지방의 한 IC 부근에서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신다고 했다. 가게 오픈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 칼국수 면발을 뽑는 기계에 손가락을 다쳐 입원했다고 한다. 그는 2일~3일에 한 번씩 아내가 병원으로 찾아와 가게 상황도 전해주고 맛있는 간식을 먹여주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했다. 한 번씩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아픔 때문에 얼굴을 잔뜩 찡그리다가도 꼭 가게에 놀러 와 칼국수를 사 먹으라는 영업본능을 놓치지 않는 열정이 넘치는 아저씨였다. 


아저씨 옆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30대 청년.

그가 바로 밤마다 고통에 흐느끼던 청년이었다. 청년의 한쪽 손가락 3개는 접합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부는 어두웠고 손은 퉁퉁부어있었다. 핀으로 고정된 3개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멍해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 모습에 행여나 우리의 대화가 길어져 그가 불편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 


한쪽으로 빈 침대를 가리키며 남편이 물었다.


"여기는 어디 갔어요?"


"아, 거기는 잠깐 아래 내려갔어요."


빈 침대의 주인은 가끔씩 남편을 보러 805호 병실에 오는 40대 남자였다. 올 때마다 과자나 사탕, 껌등을 챙겨 왔는데 남편이 치료 때문에 자리에 없을 땐 말없이 간식을 놓고 가곤 했다. 그는 남편을 보면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살갑게 "형님!"을 외쳤다.


다른 한쪽의 침대에선 작은 몸집의 남자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얼굴이 하얗고 나이가 어려 보였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그가 19살이라고 했다.

세상에, 19살이라니...

19살 학생의 한쪽 손 손가락은 엄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만 남고 모두 없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쩌다가 이런 큰 사고를 당했을까 내 아이처럼 가슴이 쓰렸다.


아이 쪽을 바라보는 내 얼굴을 살피던 남편의 이제 그만 병실로 가자는 말에 고개를 돌려 803호를 나와, 복도를 걷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형님!"


잠깐 아래에 내려갔다던 803호의 40대 남자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딸에게 노트북을 물려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