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할머니의 최대의 관심사는 트로트이다.
비단 우리 할머니와 같은 세대의 분들 뿐만 아닌
전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트로트에게
나는 참으로 깊은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에게
티브이는 소꿉친구와도 같은 존재이다.
너무도 익숙하고 없으면 허전하며
가끔 너무 잘 맞아 재미있을 때가 있는가 하면
너무 잘 알고 있어 재미없을 때도 있는
그런 존재
하루 종일 티브이를 켜 놓고 있노라면
가끔 너무 재미있는 영화나 예능의 한 회차를 볼 수 있지만
너무 자주 봐서 재미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할머니가 항상 티브이를 보면서 하시는 불평들이
트로트를 유행시키기 시작한 한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것이다!
어떠한 연예인도 그렇게까지 좋아하며
'우리'라는 가족애가 느껴지는 단어를 쓴 적이 없던 할머니가
트로트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 가수가 나올 때마다 쓰며
결국에는 온 가족에게
'누가 보면 잃어버린 아들이 티브이에 나온 줄 알겠다'는
타박 아닌 타박까지 듣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닌
온갖 트로트 프로그램을 두루 섭렵하시며
한 두 번이 아닌 두세 번, 네 번을 계속해서 몇 번이고
보고 또 보며
"아이고 우리 영웅이 잘~했다!!"
"이다음에는 찬호가 노래를 부르는 순서다!"
결국에는 누가 어떤 노래를 불러서 몇 점을 받는지
이다음에는 누가 노래를 부르고 누가 이기는지
그 순서까지 외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옆에서 함께 듣는 우리는
거의 반 강제로 할머니와 함께
같은 프로를 보고 또 보았고
참다못한 엄마가 몇 번 항의를 했지만
할머니의 완고함에 빈번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 또한 그렇게 크게 관심이 있지 않는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에서 반복학습처럼 듣는 것이 고역일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트로트에게 참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몇 번이고 같은 프로를 돌려 보면서도
지루한 기색 없이
눈꼬리에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잔뜩 물결이 칠 정도로
활짝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요 근래에 참 자주 보인다.
그 잔 물결들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괜스레 나도 따라 물결치는 순간이 있다.
그게 참 좋아서.
나는 조금 지루하더라도
티브이 앞에 앉아서 어제 했던 프로를 또 보고 있는
할머니의 곁으로 가서 물어본다.
"할머니! 진짜 트로트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니깐 말이야! 티브이에서 이런 트로트 없었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