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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수야 Oct 10. 2020

홍시

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겠지#7

무언가를 볼 때면 문득 나도 모르게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두부를 볼 때면

어릴 적 동네에 빛바랜 종을 흔드시며

덜덜거리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던 두부장수 아저씨가


초록색 마을버스를 볼 때면

버스비가 없어 당황해하던 중학생의 나에게

다음에 탈 때 2배로 내라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시며

빨리 타라고 손짓하시던 마을버스 아주머니가


고양이 캐릭터를 볼 때면

유난히 고양이 캐릭터를 좋아하며

필통이며, 거울, 케이스까지 고양이 캐릭터를 수집하고는

볼을 발그레 상기시키며 활짝 웃던 고등학교 친구가


찰나의 순간이라도 지나간 시간들 속 한 부분을 차지했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늦가을 따뜻한 햇살이 거실을 가득 비추던 날

밖에는 쌀쌀한 바람이 분다며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고는

손 끝 가득 물러 터진 홍시를 묻히며 드시던 우리 할머니는


나중에라도

할머니가 없고 이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와

홍시를 먹을 계절이 오면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도

홍시를 볼 때면 할머니를 떠올려 달라고

그렇게 문득문득 를 기억해 달라고


물러 터진 홍시가 손 끝 가득 묻어나 땅에 뚝뚝 흘러넘쳐 버린

동그란 흔적들을 닦으며 이야기했다.


살갑지 못 한 손녀는

할머니가 없는 이후의 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무덤덤함이 야속해 쌀쌀맞게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며 투덜거렸지만


그때 이후로

늦가을 따듯한 햇살이 비추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유난히 홍시를 좋아하던 할머니가 떠올라

이제는 나에게 가을이 독서나 낙엽, 쓸쓸함이 아닌

홍시의 계절이 되어버렸다는 걸


살갑지 못 한 손녀는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문득 거리를 걷다 따뜻한 햇살이 거리를 비추고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날이면

검정 봉지 가득 홍시를 가득 담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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