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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수야 Oct 13. 2020

동문서답

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겠지#8

"할머니 아까 통화에서 이모가 뭐라고 하셨길래 그렇게 대답한 거야??"

"아 그게 말이야 옛날에 할머니가 처녀시절에 사실은 혼자 살려고 했어.

내가 결혼하면 우리 엄마를 모시고 살 수가 없으니.."


그때부터 할머니의 대서사시의 동문서답이 이어진다.


나는 분명 방금 전 이모랑 통화하면서 할머니의 속상함이 묻어나는 대답을 듣고

'이모가 뭐라고 하셨길래 할머니가 저렇게 속상함이 묻어나게 대답을 하신 건지'

에 대해 물었을 뿐인데 할머니는 저 옛날 할머니가 지금의 나 즈음의 나이일 적 이야기부터 시작을 한다.


그때부터 몇 번을 듣고 또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야기를

마치 처음들은 사람처럼(정말 쉽지 않다.) 경청하려 노력한다.


할머니가 처녀시절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살기 위해 결혼하지 않으려 한 것

할아버지가 군인이었는데 그렇게 할머니를 쫒아다니신 것

할아버지와 결혼한 후 할아버지의 욱하는 성정에 집 안 물건이 남아나지를 않은 것

.

.


그렇게 계속해서 참고 듣다가 결국에는 엄마와 이모, 삼촌이 어느 정도 성인이 되었을 시점,

할머니가 옷 장사하던 시절의 이야기에서 참지 못하고 스톱을 외친다.


"아니 할머니! 그래서 아까 왜 이모랑 통화했을 때 그렇게 속상하게 대답했냐니깐??"

"그래서 지금 이야기하잖아!!한번 들어봐!!"


할머니의 투정 섞인 대답에 또 잠자코 기다리면

다시 대서사시의 동문서답이 시작된다.

해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20분이 넘는 기나긴 이야기 끝에 내가 질문했던 답이 들려온다.


".. 그래서 너희 이모가 요즘 다리가 아프다고 하잖니.. 병원에 가보라니깐 말도 안 듣고.."


드디어 끝이다..

1분도 걸리지 않는 답을 들으려 20분이 넘는 기나긴 시간을

그것도 기억도 나지 않을 몇 번이고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짐짓 지루하고 억울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든다.


"아니 그럼 처음부터 이모가 다리가 아픈데 병원에 가라고 하니깐 말도 안 들어서 속상하다고 하면 되지 뭘 그렇게 길게 이야기해 할머니는!"

"그거 하나 이야기하려면 그냥 이런 옛날 일 들이 다 생각나서 그래.. 이렇게라도 이야기 안 하면 할머니가 누구한테 이야기하겠니?"


그 말에 결국 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몇 번이고 들었던 이야기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고 답답한 티를 내지 않으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나의 듣기 태도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무리한다.


할머니의 동문서답은 마치 우리 내의 판소리 같은 아닐까?

깊고 깊은 한이 섞여 부르고 불러도 해소되지 않는

계속 듣다 보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어느새 마음 한 구석을 울리는 소리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할머니의 동문서답식의 대화방법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기를 그만두고

대신에 이제는 할머니에게 질문을 하기 전 바른 청취자가 될 준비를 한다.


머리를 비우고 , 귀를 열고, 입을 닫는다

자! 준비는 끝났다.

마치 모든 이야기들을 처음 듣는 청취자의 입장으로 할머니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져 본다.


"할머니 그래서 할머니는 저 드라마 주인공이 왜 싫은 거야?"

"그게 말이야! 할머니가 옛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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