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수야 Oct 21. 2020

세대차이

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겠지#9

광활한 논과 밭이 평평한 시멘트 바닥으로

고즈넉한 초가집이 빽빽한 아파트 단지로 바뀌기까지는

불과 몇십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급성장의 속도를 미쳐 따라가지 못 한 사람들과 지금의 세대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생겼고

그렇게 할머니와 나는 살아온 세대가 너무도 달랐다.


그저 그렇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굶지 않을 정도로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가정을 꾸리고 남편을 잘 모시며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

여자의 행복으로 여겨지던 세대에 살아왔던 할머니와


그저 그렇게가 아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는 당연한 것이며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아이를 낳는 것은 선택사항인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대에 살고 있는 나는


하나부터 열 까지 모든 것이 할머니와 너무나도 달랐다.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부딪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할머니가 너무 답답했다.


'왜 할머니는 저렇게 생각하는 거지?'

'왜 할머니는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할머니와 나는 서로의 다름에서 오는 간격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간격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여실히 느껴짐에 따라

우리는 더욱더 서로에게 큰 소리를 냈다.


"할머니 그건 다 옛날 생각이고 지금은 안 그렇다니깐??"


너무도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나는 할머니의 이해를 바랐고

옛날 생각은 조금 버리고 지금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며 살아가는지 보길 바랬다.


그러자 할머니가 답했다.


"너는 왜 할머니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말도 못 하게 싹 다 무시해 버리냐!"


할머니도 나에게 이해를 바랐고

무조건 내가 맞다고 하는 것이 아닌 할머니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기를 바랐다.


내가 할머니에게 바랬던 이해를

할머니도 나에게 바랬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날

고리타분할 뿐이라며 외면해 온

할머니가 살아온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그렇기에 작은 소녀가 꿈을 꾸기에는

너무도 모질었을 그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너무도 빠르게 변해버린

지금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외계행성에 나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내가 겪지 못한 그 시간들을

단지 지금과 너무도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며

나는 매 순간 나도 모르게 말로써 할머니를 뒷 방 늙은이 취급을 했다.


분명 지금과는 할머니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 시간을 살아오지 못 한 나는

마치 그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 마냥 부정하고만 있었다.


마치 서로가 끝과 끝을 잡아당기면 하는 줄다리기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기만 했던 다툼이었고

설사 어느 한쪽이 이긴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분명 잡아당긴 줄에 이끌러 무릎이 피 투성이가 되었을 다툼이었다.


나는 이제 할머니가 살아온 시대의 시간들을

바라보기로 했다.


할머니가의 생각과 말의 문장 속 스며들어있는

그 배경을 들으며 할머니의 시간과 가까워지기로 했다.


그렇게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작은 아이였을, 소녀였을. 젊은 여성이었을

할머니의 시간들과 친해져 보려 한다.


그렇게 천천히 가까워지다 보면

언젠가는 할머니와 나 사이의 간극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이전 09화 동문서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