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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수야 Oct 06. 2020

아메리카노

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겠지#5

할머니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신다.

그것도 할머니 나름의 확고한 취향이 있으셔

내가 가끔은 평소 사 오던 곳이 아닌 새로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사 드린 후

할머니에게 오늘의 아메리카노 맛은 어떻냐고 물을 때면


"여기 아메리카노는 너무 탄 맛이 많이 난다."

"오늘 사온 곳은 딱 적당하니 너무 맛있다!"

"여기 아메리카노는 너무 진하다. 물을 섞어 마셔야겠어."


라는 단호한 평가가 나오고는 한다.


할머니가 처음부터 아메리카노의 맛을 따지신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림잡아 생각을 해 봤을 때

내가 카페에서 일하게 된 뒤

아메리카노에도 맛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부터


어림잡아 그즈음에

할머니에게도 다양한 아메리카노를 사다 드리기 시작했다.


다크 우드 원두를 쓴 아메리카노

산미가 있는 아메리카노

과일 향이 진한 아메리카노

편의점 아메리카노 등등..


할머니의 입맛에 딱 맞는 아메리카노를 선별하기 위해

정말 다양한 종류들과 아메리카노가 할머니의 입을 거쳐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할머니의 입맛에 딱 맞는

'지극히'우리 할머니 기준의 아메리카노 맛집을 알고 있다!

(그런 카페는 으레 진하지 않으면서, 산미가 거의 없고

고소한 맛이 강하게 나는 아메리카노의 맛을 가지고 있다.)


요즘 내가 할머니에게 사 드리는 아메리카노는

발견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신상 카페인데


우리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작은 골목길에

30대 정도의 남자분이 혼자 운영하시면서

거의 테이크 아웃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카페이다.


카페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인지

원두를 볶는 고소한 내음이 기다란 나무로 된 카페의 입구를 열자마자

진하게 풍긴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한 후

계산대 앞 작은 의자에 앉아서 아메리카노가 나오는 5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린다.


밖에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큰 유리벽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따뜻하고

그 옆쪽으로 벽을 따라 나있는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나뭇잎들이 일렁이는 것을 보는

그 짧은 순간이 참 좋아서


나중에 할머니와 산책을 한 후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들고 가자며

이 자리에 같이 앉아

아메리카노가 나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풍경을 그리곤 한다.


아! 그리고 주문할 때는 꼭 넣어야 할 추가사항이 있다.

(장담컨데 이 추가사항이 빠진다면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절대 우리 할머니의 입맛에 맞는 아메리카노를 살 수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시고요, 샷은 하나만 넣어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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