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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과 그림 그리기의 연관성

어렸을 적 봤던 길따라 고속관광 버스와 함께

by 류민효

노자랑 그림이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물론 나는 노자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쓴 도덕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노자의 도덕경을 한 번 읽어보았을 뿐이다.

그 책을 읽고 얻어낸 것들 중 딱 하나만 고른다면 아마 '위무위'의 개념일 것이다. '위'는 '하다'의 개념인 것 같고, '무'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없다'는 개념이다. '하지 않도록 하라' 정도로 적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의미를 곱씹어보면 묘하다.

혹시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책을 아는가. 러시아 출신의 바딤 젤란드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이 책의 핵심도 위무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책을 자주 엮어 말하곤 한다.

하지 않도록 하라. 나도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이해한 대로 설명해보자면 '하고자 하는 마음 없이 하라', '자연스럽게 행하라', '억지스러움 없이 흐름에 따라 행동하라', '그저 하라' 등과 같은 말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마라' 거나 '수동적으로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행하라' 거나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행하지 말고 그저 지켜 보기만 하라'라는 뜻은 아니다. 나의 의도가 있되, 그것이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해질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인 것 같다. 무언가에 집착하고, 애쓰고 그러는 것 보다는 그저 그것에 나의 뜻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 행위를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하는, 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아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쯤, 하교하는 길에서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길따라 고속관광' 이라는 문구가 적힌 버스들을 본 기억이 있다. 왠지 모르게 그 어감이 재밌어서 장난식으로 "길따라 고속관광~" 이라고 말하면서 뛰어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길 따라 고속 관광이라는 것이 사실 노자의 위무위와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순수한 그림쟁이로 살다가 생계를 위한답시고 3개월 계약직으로 출퇴근을 시작했는데, 그 출근길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장 빨리 환승할 수 있는 길은 어딜까 생각하는 동안 그 빨간 고속버스가 생각이 났다.


그림을 그릴 때, 오늘 무언가 멋진 걸 그려내겠어 라는 마음을 먹으면 무얼 그려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많다. 그러다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서는 혼자 씩씩대고, 그렇게 몇 번을 망치고 나서 그냥 혼자서 삐진 채로 막 그려대면, 또 그게 마음에 들 때가 많다.

머리로 그림을 설계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엔 그랬지만, 점점 재미도 없을 뿐 아니라 그건 더 큰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우리는 모든 걸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큰 존재이고,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어떻게 그리나 내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고, "이건 뭘 의미하는 거야?" 라는 질문에 "딱히 의미하는 거 없는데. 그건 그냥 거기에 그렇게 있는 게 제일 적절해서 그린 거야"라고 답하는 것이 관람자에겐 힘 빠지는 답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힘 빠지는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과대 포장 하지 않을 용기.

출발 지점에서 도착 지점으로 가는 길을 정해두고 간다면 중간 중간 눈 앞에 나타나는 뜻 밖의 상황에 매번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도착 지점에 대한 방향성과 의지를 견지한 채 그 흐름에 나를 맡기면, 길을 따라 관광하듯이 가면, 어쩌면 그 길이 고속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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