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교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내일 있을 소풍 행사 안내입니다. 2학년 전 학년-특별반 포함-은 음악실로 모이기 바랍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방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음성이 잦아들자, 어제 마츠다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일 문부성에 잠깐 들렀다가 학교로 와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하지만 이 선생님... 오전에 우리 반 좀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특별반 담임인 마츠다 선생님은 늘 이렇게 말끝을 흐리며 부탁했지만, 사실 그것은 부탁이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순서에 가까웠다. 나는 다문화 학생들을 담당하는 기간제 교사였다. 정식 담임도, 고정된 교실도 없었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그 빈틈으로 자연스럽게 밀려들어 가는 사람이 언제나 나였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마츠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안도와 미안함이 함께 스며 있었다.
나는 그 기억을 접어두고 서둘러 교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 등교하던 타키와 그의 어머니가 차에서 내려 정문을 막 들어서고 있었다.
타키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 아이의 등을 살짝 밀어 내 쪽으로 보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여기 보조 가방 안에 수건이랑 보온병이 들어 있어요.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타키의 책가방과 보조 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심시키듯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나카 선생님 출장 때마다 몇 번 같이 수업했어요. 타키짱도 저도 서로 익숙해요. 그렇지 타키짱?”
타키는 어머니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있다가 살며시 놓았다. 그리고 발끝을 끌 듯, 엉거주춤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타키 어머니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아니 몇 번이나 고개를 깊이 숙였다. 말 대신 기도를 올리듯.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 학교를 떠났다.
타키는 전신성 뇌성마비를 가진 중증 장애 아동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왼쪽 다리는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한 발 한 발이 늘 바닥을 더듬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아이들 사이를 지날 때면 반응은 늘 갈렸다. 어떤 아이는 얼른 길을 비켜 주었고, 어떤 아이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타키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다. 하지만 타키는 고개가 늘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고맙다는 마음도 불편하다는 마음도 얼굴로 또렷이 드러내기 어려웠다.
그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아이들 사이를 지나간 뒤, 조금 떨어진 바닥에 몸을 눕히거나 교실 구석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나름의 방식으로 단체 수업에 참여하곤 했다. 그 움직임은 아이가 세상과 이어지는 방식이기도 했다.
달력은 5월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혹여 추울까 싶어 목에 스카프라도 둘러 줄까 하다가, 힘겹게 걷는 모습에 그것마저 짐이 될까 싶어 그만두었다.
대신 나는 타키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넘어질 것 같을 때마다 팔을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타키는 어눌한 발음으로 알아듣기 힘든 말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팔에 몸을 기대었다.
"와- 타키짱, 팔 힘이 세졌는데."
내가 웃으며 말하자, 타키는 복도 창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음악실 앞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는 동안, 창밖에서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있을 소풍을 앞둔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학교 밖으로 나가 있었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교정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에 타키도 마음이 급해진 듯했다. 잘 벗겨지지 않는 신발을 애써 잡아당기다 말고, 이내 나를 올려다보았다.
2학년은 두 반뿐이었고, 특별반 학생은 요시다 타키 한 명이었다. 음악실에 모인 인원은 예순 명 남짓, 소풍을 앞둔 아이들의 흥분으로 실내는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실내화로 갈아 신은 타키는 비틀거리며 음악실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모여 있는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 앉아 있던 아이들 몇이
“타키짱!” 하고 불렀다가, 곧 흠칫 놀라며 하나둘 무릎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이내 누군가 자기 코를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콧물...”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나는 아침에 타키 어머니가 건네준 보조 가방에서 휴지와 작은 비닐봉지를 꺼내 서둘러 그의 누런 콧물을 닦아 주었다. 타키는 늘 콧물과 침이 흘렸기에, 턱받이를 해도 자주 닦아 주어야 했다.
코와 입이 깨끗해지자 그는 피아노 밑으로 기어들어 가 뒹굴다가, 악기를 모아 둔 구석으로 향했다. 악기가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에, 나는 재빨리 그를 데려와 아이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옮겼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반쯤 누운 채 앉아 있던 타키가 더듬더듬 내 손을 끌어당겼다. 무언가 필요하거나 궁금할 때, 그는 늘 이렇게 손을 잡았다.
“타키짱, 지금은 내일 소풍 이야기 중이야. 타키 군도 내일 소풍 가는 거, 알고 있지?”
얼굴이 왼쪽으로 돌아가 있어 꼭 피아노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세로, 타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는 흘러내리는 콧물을 다시 한번 닦아 주며 옆에 앉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타키짱도 소풍 가는 게 좋아서 들떠 있는 것 같아.”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둘 뒤를 돌아보며 우리 쪽으로 몰려들었다.
“에- 타키짱도 소풍 가요?”
“그럼. 내일 2학년 봄 소풍이잖아.”
내가 말하자 아이들 몇이 합창하듯 물었다.
“정말요? 감기에 걸려서 콧물을 이렇게 흘리는데도 갈 수 있어요?”
“타키짱, 걷는 거 엄청 느린데... 우리랑 같이 걸을 수 있을까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점심은 누구랑 먹지?”
아이들이 장난처럼 “너랑 먹으면 되지!” 하고 외치자, 한 아이가 “꺅!” 하며 뒤로 벌러덩 넘어져 기절하는 흉내를 냈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 속에,
“타키짱도 소풍 간대?”
“싫은데...”
하는 말들이 작게 섞여 흘러나왔다.
아이들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타키는 멍하니 앉아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느리게 꼼지락거렸다. 나는 괜히 한 번 더 아이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요란스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향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말뿐이었다.
그때 수업 종이 울렸고, 2학년 학년주임과 각 반 담임들이 음악실로 들어왔다.
"이 선생님-"
학년주임이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이 프린트, 나중에 마츠다 선생님께 좀 전해 주세요. 아, 그런데... 마츠다 선생님 휠체어 준비하시려나? 없으면 이동하기 힘들 텐데.“
나는 글쎄요, 하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타키를 힐끗 바라본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교탁 쪽으로 돌아가 아이들 앞에 섰다.
학년주임은 소풍 준비물과 게임 도구가 적힌 프린트를 나눠 주며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그 사이 타키는 다리를 W자로 접고 앉아, 몸은 내 쪽을 향한 채 얼굴만 창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콧물과 침을 닦아 주며, 일부러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타키짱, 내일 선생님이 맛있는 거 많이 가져올게. 마츠다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같이 먹자.”
햇살을 따라 고개를 움직이던 타키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 나... 소풍... 안 가...”
1학년 때도 잘 다녀왔던 아이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달래듯 다시 말을 이었다.
“게임도 하고, 맛있는 오니기리도 먹고, 나비도 보러 가자. 타키짱이 좋아하는 나비가 공원에 많이 있잖아.”
타키는 침을 흘리며 “나비, 나비-” 하고 웃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그래도 안 가... 가고 싶어도 안 돼... 내가 안 가야, 행운이야... 내가 안 가면...친구들이... 좋아해...”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울음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잘 웃지 못하는 얼굴이 억지로 웃으려 하니 더 찡그려져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리고 타키를 조용히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두 팔로 바짝 끌어안았다.
아이들 모두가 들리도록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은 입 안에서만 몇 번이나 맴돌았다.
대신 아주 작은 소리로, 타키의 귀에만 닿을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아니야. 친구들도... 타키 짱이랑 소풍 같이 가고 싶어 해.”
그러나 타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이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행운... 행운...”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을 따라 타키의 손이 느리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