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망울이 톡톡 터지며 나무들이 화사한 꽃잎으로 물들기 시작한 4월이었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교정은 한꺼번에 숨을 내쉬듯 연분홍 꽃잎으로 가득 차올랐다.
봄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자기만큼이나 긴장한 얼굴의 부모 손을 꼭 붙잡고 입학식장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의 설렘과 부모의 불안이 뒤섞인,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었다.
"오하요 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바쁜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며 눈이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같은 인사를 건넸다.
올해부터 나는 이 학교에 파견된 다문화 아동 담당 교사였다. 일본어가 서툴거나, 갑작스럽게 외국에서 이곳으로 와 모든 것이 낯선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새 학기 초반은 언제나 전쟁 같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길을 잃은 얼굴로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학교는, 특히 외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처음 이 나라에 발을 들이는 작은 사회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연분홍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리던 5월의 어느 날, 나는 한국에서 온 정우를 처음 만났다.
아마가사키 시 A초등학교 1학년, 히요코반에 새로 함께하게 된 아이였다. 한국에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갑작스레 일본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학부모 상담실에서 정우와 어머니를 처음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내 인사에 어머니는 조심스러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 정우는 밤송이에서 막 꺼낸 알밤처럼 단단하고 또렷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가볍게 빛났다.
나는 준비해 둔 프린트와 식단표를 하나씩 꺼내 놓으며 학교생활과 준비물, 구입처를 설명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꼼꼼하게 메모를 했다.
“정우, 혹시 음식 알레르기는 없을까요?”
아이보다 어머니가 먼저 나를 바라봤다. 내 질문에 어머니는 잔뜩 긴장해 있던 어깨를 조금 풀며 안도한 듯 대답했다.
“없어요.”
"다행이네요. 급식 시간에 다른 친구들만 먹고, 혼자만 못 먹으면 정말 속상하잖아요. “
어머니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점심시간이네요. 정우랑 같이 급식 한번 드시고 가셔도 돼요. 한국에서도 일본 급식이 맛있다고들 하더라고요.”
뜻밖의 제안에 어머니는 꼭 쥐고 있던 손을 풀며 웃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요.”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걸어가며 어머니는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는 아이보다 더 큰 불안과 걱정이 묻어 있었다.
나는 정우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다. 담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자습 시간이어서, 교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얘들아, 오늘 새로 온 친구야.”
아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정우에게 쏠렸다.
"정우야, 자기소개해 볼래?"
정우는 잠깐 눈을 깜박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나는 박정우야. 친하게 지내자!"
나는 그 말을 일본어로 옮겨 주었다.
아이들은 낯선 이름을 따라 하며 웃었고, 누군가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김치를 먹어봤다는 아이들은 “맵지만 맛있다”며 각자의 경험을 쏟아냈다. 말은 달라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우를 반겼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아주 작은 어긋남도 생기기 시작했다. 정우는 매일 깨끗한 옷을 입고 아침마다 말끔히 씻고 왔다. 아이에게서는 늘 은은한 비누 향이 났다. 아이들은 그 냄새를 ‘향수’라고 불렀다.
“정우한테서 좋은 냄새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정우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자, 아이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웃었다. 정우는 자신이 놀림을 받는 줄 알고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정우야, 칭찬한 거야. 좋은 냄새난다는 뜻이야.”
내 말에 정우는 그제야 안도한 듯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다문화교실에서 자유놀이를 하던 날, 정우가 속한 2조는 ‘미로 찾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우는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채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주사위를 굴리려던 아이가 소리쳤다.
“안 돼!”
“왜? 나도 할 거야! 나 미로 찾기 잘해!”
정우는 한국어로 급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무슨 말이야?”
그때 야스다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짱, 일본말 못 해서 같이 못 놀아요. 규칙도 몰라요.”
다른 아이들도 말을 보탰다.
“자기 말만 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정우는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분위는 느끼는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울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정우의 손을 잡아 교탁 옆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정우는 한국에서 자라서 한국어로 말해요. 여러분이 일본어로 말하듯이요.”
아이들의 시선이 내 얼굴로 모였다. 나는 그 눈동자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우는 지금 일본어를 배우는 중이에요. 조금만 기다려 주면 여러분처럼 말하게 될 거예요. 그러면 정우는 한국의 놀이도, 한국 이야기도 많이 알려 줄 수 있어요. TV나
사진으로만 보던 걸 직접 보여주는 거죠. “
아이들 사이에 작은 웅성거림이 흘렀다. 서로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2조 아이들이 손짓하며 정우를 불렀다.
”우짱, 와.“
그 순간, 그렁거리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정우는 소매로 눈가를 쓱 닦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낮게 말했다.
”괜찮아?"
촉촉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2조로 달려가 주사위를 꾹 쥔 채, 놀이판 위로 힘껏 던졌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아이들은 교실을 청소하고 조를 지어 집으로 돌아갔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아이들 틈에서 정우는 힐끔힐끔 주변을 살피며 그 뒤를 따랐다.
그때 한 아이가 장난스럽게 정우를 툭 건드리고 휙 달아났다. 정우는 잠시 멈칫하다가, 반가운 장난에 신이 난 듯 웃으며 아이를 쫓아가 신발주머니로 가볍게 툭 건드렸다.
그날, 정우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저 웃음을 입가에 달고 집까지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관 앞에서 시계를 보며 아이를 기다리던 어머니가, 그 웃음을 제일 먼저 보았으면 했다.
정우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발자국에 뛰어나가 품에 꼭 안겠지. 그리고 먼저 웃으며 물을 것이다.
”오늘 어땠니? 학교에서 별일 없었어? “
정우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대답할 것이다.
”응, 그냥 그랬어. “
그 한마디에 안심한 어머니는 가방에서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를 꺼내 들고, 절로 번지는 미소를 얼굴에 담고 냉장고 문을 몇 번이고 열고 닫으며 간식을 준비할 것이다. 낯선 나라에서도 잘 지내는 아들이 기특해서, 가슴 한쪽이 뿌듯해지겠지.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그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일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정우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낯선 땅에서 스스로 웃음을 찾아낸 그 순간을 그대로 품게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