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문 앞에 달린 우체통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우체통을 열자 전기요금 납부 고지서와 다이에 슈퍼마켓 전단지가 한데 뒤엉켜 있었다. 나는 대충 몇 장을 훑어 넘겼다. 그 사이에 엽서 한 장이 비스듬히 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에서 함께 유학생으로 지내던 동기 민지에게서 온 것이었다.
‘○○년 ○월 ○일 저희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부디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봉한 엽서에 출석 여부를 표시하시어 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엽서를 손에 쥔 채 잠시 서 있었다. 머리를 늘 장식 없는 포니테일로 묶고, 사계절 내내 같은 청바지를 입고, 밥을 먹으면서도 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던 민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표정 없는 얼굴, 책 위로 흘러내리던 머리카락, 질문을 받으면 겨우 고개만 들던 모습까지.
“야... 민지가 결혼을 하네.”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시간이 아까워서 연애 같은 건 안 할 것 같았는데...”
혼잣말은 금세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민지는 늘 바빴다. 강의가 일찍 끝나도, 갑자기 아르바이트가 취소돼 시간이 비어도,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었다. 그런 민지가 결혼을 한다니,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엽서를 내려다보다가 출석 칸에 체크를 했다. 그리고 집 근처 우체통에 넣었다. 종이가 미끄러지듯 안으로 사라지며 작은 마찰음을 남겼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민지는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내가 처음 민지의 방에 들어갔을 때, 방 한구석 책상 위에 놓인 노트 한 군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종이 대신 온통 볼펜 자국으로 눌러쓴 깜지였다.
“민지야, 이 노트는... 처음부터 먹지였던 것 같아. 여기 위에 단어를 쓰면 보이긴 해?”
민지가 배시시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깜지를 더듬었다. 천천히.
“이렇게 만져 보면 글자가 느껴져. 여기 봐, 이건 내가 오늘 외운 단어야. 너도 한번 해 봐.”
나는 손을 내밀다 말고 깜지를 옆으로 밀어 두었다. 노트가 책상 위에서 가볍게 미끄러졌다.
“정말 지독한 공붓벌레야, 너는.”
민지가 나를 흘겨보았다. 웃고 있던 얼굴에서 웃음이 서서히 걷혔다.
“너도 고아로 살아 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민지가 입을 열었다.
“독해지지 않을 수가 없지. 공부 말고 내가 뭘로 나를 증명하겠어.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어떤 각오로 공부했는지...”
민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너는 모를 거야.”
그 말을 한 뒤 민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사람에게만 내보이던 다정한 얼굴로 보리차를 따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마셔. 지금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게, 나는 좋아.”
그 말은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고, 오래 품어 돈 독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민지는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에 남았다. 나는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그곳을 나왔다.
기숙사는 가족이나 지인의 방문도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했고, 로비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기숙사비가 저렴해도 내게는 맞지 않았다.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나가던 날 민지가 함께 이삿짐을 정리해 주었다.
“민지야, 이참에 너도 기숙사 나가자. 저녁 열 시 もんげん(폐문), 지겹지 않아? 정문 닫히면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고, 친구도 방에 못 들이고... 이건 기숙사가 아니라 감옥이야. 감옥.”
민지는 박스 위에 앉아 테이프를 붙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어딜 가도 여기만큼 싼 월세는 없어. 난 가족도 없고...”
잠깐 말을 삼켰다가 낮게 덧붙였다.
“너 말고는 친구도 없잖아.”
거의 혼잣말처럼 이어 말했다.
“내겐 이만한 데가 없어.”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꼭 필요한 것만 사던 민지는,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결국 입학금과 학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우리는 같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대학원이 달라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사이 나는 몇 번이나 이사를 했고, 민지는 어떻게 알았는지 해마다 빠짐없이 연하장엽서를 보내왔다. 나는 다시 결혼 참석 여부를 묻는 그 엽서의 문구를 떠올렸다.
몇 달 뒤, 나는 검은 바지에 검은 재킷, 흰 블라우스를 입고 식장으로 갔다. 하객들은 장례식에라도 온 사람들처럼 모두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검은 기모노를 입은 사람도 몇 명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집 앞 절에서 보았던 장례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입구에서 축의금을 내면 축하 메시지를 적을 종이를 건네주었다. 사람들은 그 종이를 들고 한 명씩 사진을 찍었다. 나도 ‘행복하게 살아!’라고 한글로 적은 종이를 들고 어설프게 웃었다.
민지는 화사한 오월의 신부 같았다. 신랑은 재혼인가 싶을 만큼 나이가 많았고, 번들거리는 대머리였다. 민지 쪽 하객은 나 혼자였다. 나는 신랑 쪽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앉았다.
“사토시, 대출 많은 거 신부가 알까?”
옆자리 아줌마들이 속삭였다.
“사토시 가게에서 알바하던 아가씨라잖아. 알겠지.”
“사토시 어머니 성질 보통이 아니라는데... 괜찮을까 몰라.”
“고아로 자라서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던데.”
그 말들은 식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유난히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민지가 한 번도 말해 주지 않던 이야기들이 낯선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스테이크를 썰어 천천히 씹으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민지는 늘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연락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민지의 웃는 얼굴만 보았지, 그늘진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결혼식이 끝나자 신랑과 신부는 하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물을 건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축하해.”
민지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가족이 생겨서 너무 좋아. 아이도 생겼어. 내년 봄에 태어나. 아기 태어나면 꼭 연락할게. 보러 와야 해.”
“물론이지. 내가 이모잖아.”
나도 웃으며 그녀를 꼭 안았다.
하지만 그 뒤로 민지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 계절은 무심히 흘러 ‘마누라 없이 살아도 에어컨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오가던 한여름 장마철이 되었다.
그날도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빗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투명한 비닐우산을 털며 이층 계단을 오르는데 집 앞에 민지가 아이를 업은 채 서 있었다. 민지도, 아이도 흠뻑 젖어 있었다.
급히 문을 열어 아이부터 받아 안았다. 따뜻한 물로 씻기고 이유식을 먹이자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를 조심스럽게 방에 눕히고 문을 살며시 닫았다. 민지가 씻는 동안 카레로 저녁을 차렸다.
나는 그제야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민지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 채 카레를 먹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나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얼마 전에 츠루하시에서 사 왔어.”
커피믹스를 흔들어 보이자 민지가 미소를 지었다.
“맛있다. 커피는 이렇게 달달해야 커피 같아.”
그 말 뒤로 잠시 방 안이 조용해졌다.
커피를 다 마시고 컵을 만지작거리던 민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까지 붙들고 버틴 이유가 된 논문이 있어. 그걸 쓴 분을 만나러 갔다 왔어. 아오야마까지 신칸센을 타고 갔는데...”
말끝이 흐려졌다.
“버스가 하루에 두 번밖에 안 다니는 곳이더라. 하룻밤 자고 왔어.”
민지는 고개를 숙인 채 컵 가장자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런데 그분이 몇 해 전에 치매에 걸리셨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만 방 안을 맴돌았다.
“선생님이 쓰신 그 논문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시더라.”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앞에 앉아 계셨는데,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셨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어.”
민지는 컵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분의 논문은... 내가 살아갈 지표였거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차라리 돌아가셨다면... 내가 만든 환상 속에라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민지는 하얗게 마른 입술을 한 번 축였다.
“내가 울고 있는데도, 텅 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을 보니까...”
숨이 고르지 못했다.
“내가 무너지는 것 같았어.”
나는 민지의 손에서 컵을 받아 믹스커피를 다시 탔다. 김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민지는 뜨거운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원하게 다시 타 줄까?”
“논문 때문에 결혼한 거야.”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박사 논문이 몇 년째 제자리야. 가설도 허술하고, 그 가설에서 제대로 증명된 게 하나도 없어... 지도교수는 자꾸 더 보완하라고만 하고. 심사는 계속 미뤄지고, 비자 기간은 끝나 가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어.”
민지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계약 결혼이라도 좋았어. 상대가 누구든, 결혼만 하면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그 선생님의 글이라도 마음껏 읽고, 언제 끝날지 모를 논문이지만... 끝까지 써 보고 싶었어.”
잠시 숨을 고른 뒤, 낮게 덧붙였다.
“논문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래도 그분의 글은... 나한테는 살아갈 이유였어. 그 이론으로 내 논문을 완성하고 싶었어. 그렇게 해서... 나를 증명하고 싶었는데...”
민지는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치매에 걸린 그분을 보니까, 내 모든 꿈이 신기루처럼 느껴졌어.”
위로의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가 그대로 삼켜졌다. 입 밖으로 나온 건 다른 말이었다.
“아이는... 시어머니한테 맡기고 가지 그랬어?”
“시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어. 남편은...”
민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참 먼 사람이야. 한 이불 속에서도, 손을 잡아도 되냐고 묻는 사람이야.”
잠시 후, 미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각자 계산해. 그런 부부야. 원래 가족이라는 게 이런 걸까? 난 태어나서 가족이라는 관계를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좀 더 여러 사람을 만나 보고 결혼하지 그랬어? 사랑하는 사람이랑 했어야지.”
“사랑?”
민지가 짧게 되물었다.
“그게 뭔데. 난 사랑보다 안락한 가정이 필요했어. 한국에선 부모가 없다고 밀려났고,
일본에선 비자가 없다고 밀려났지.”
말을 멈췄다가 천천히 덧붙였다.
“어디든 내가 원하는 만큼 있어도 되는 곳이 필요했어. 이제 그만 가라고 말하지 않는 곳.”
민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왜 이렇게 허할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얼굴에 오래 눌러 두었던 시간이 스며 나왔다.
“논문을...”
그 말 뒤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만 포기해야 할까 봐.”
다음 날, 민지는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를 업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해, 봄.
“툭.”
문 앞 우편함에서 소리가 났다. 전기요금 고지서와 광고 전단지 사이에 편지 한 통이 끼어 있었다. 낯익은 글씨였다. 발신인은 민지, 주소는 서울.
봉투 안에는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어린이집 앞치마를 두른 민지가 아이들 사이에 서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뒤에는 주소와 함께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한국 오면 꼭 들러. 보고 싶다.’
나는 사진을 들고 한동안 서 있었다. 눈가가 뜨거워 손등으로 가만히 눌렀다. 그날 저녁, 책상 앞에 앉아 엽서 한 장을 꺼냈다. 펜을 쥐고 한 줄을 쓰다 멈췄다.
-민지에게,
거기까지였다. 엽서를 뒤집어 사진 위에 올려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