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경미 Mar 15. 2024

3부 안쓰러운 엄마

3-4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과꽃차

엄마가 보이질 않는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도 방에 앉아 계신 걸 확인했었는데. 텃밭에도 없고, 늘 다니던 산책길을 따라가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이웃집에 전화해보아도 보지 못했다는 대답이다. 점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려서 얼른 받아보니 지인이다.     


”자기네 엄마 집에 없지?“

”엄마 보셨어요?“

”얼른 와 봐! 저기 큰길가에 가시는 분이 자기네 엄마인 것 같아 전화했어!“   

  

큰 길가라니! 거기는 고속도로처럼 차들이 쌩쌩 달리는 4차선 도로인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정신없이 차를 몰고 나갔다.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와서 살펴보니 세상에나! 차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며 큰 도로변 갓길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모습이었다. 차를 아무렇게나 세우고 엄마를 향해 질주했다. 제발 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야 할 텐데…. ’엄마 움직이면 안 돼, 가만히 있어.‘ 마음속으로 외치며 엄마를 향해 달렸다.     


넋이 나가고 어리둥절한 엄마를 맞이한 순간, 찾기만 하면 ‘왜 소리도 없이 여기까지 혼자 나와서 걱정시키고 그래? 놀랬잖아!’ 크게 소리 지르고 싶었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본인도 놀랐던 눈치였다. 마치 길 잃은 아이가 겁에 질려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으니까. 나는 엄마를 차에 태우고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경찰서에 가서 치매 노인 지문 등록을 하고 돌아왔다. 엄마는 얼마나 지쳤는지 씻자마자 눕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잠든 엄마를 뒤로 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그제야 방안 가득 채우고 있던 뭔가 이상한 냄새가 느껴진다. 재빠르게 방안을 둘러보니 가스레인지 위에 전기포트가 올려져 있다. ‘아니, 전기용품이 왜 저기 위에 올라와 있지? 엄마가 물을 끓인다고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불을 켰었나?’ 분명히 내가 가스 밸브를 잠가 놓았는데 어떻게 불을 켰지? 깜짝 놀라서 확인해보니, 전기포트 밑바닥이 제법 녹아내려 쭈글쭈글했다. 그래도 그만큼만 타기 정말 다행이었다. 올려놓고 안 끄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머리털이 곤두섰다. 엄마가 뭔가 타는 냄새에 불을 끄긴 했나 보다. ‘잠시라도 내가 없으면 이렇게 사고가 나니 어쩌면 좋지?’     


‘그런데 뭘 끓였지?’ 뚜껑을 열어보니 물속에 웬 꽃이 피어 있다. 엄마는 부엌살림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됐지만 이렇게 한 번씩 물을 끓여놓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엄마만의 독특한 물을. 마늘을 잔뜩 넣고 끓인 물, 쑥을 뜯어와 끓인 물 등. 그래도 엄마 나름대로 건강에 좋은 재료라는 지혜를 잊지는 않았나 보다. 여러 차례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다 불을 낼 뻔해서 나한테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어쩌자고 또? 이제는 어떻게 가스를 켜는지도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갑자기 형광등처럼 생각이 돌아왔나?     


그러다 문득, 엄마 방 바로 앞에 심어진 과꽃밭을 내다보았다. 군데군데 목이 잘려 나가 몸뚱이만 남은 과꽃 줄기 사이로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몇몇 친구들의 얼굴이 매우 슬퍼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특이한 점이 보인다. 보라색 과꽃과 핑크 과꽃을 심었는데 보라색 꽃만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전기포트 안을 들여다보니, 진한 핑크빛 꽃들만 마치 피를 철철 흘려내며 마지막 절규를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야! 그래도 엄마가 너네들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몸속에 간직하고 싶었겠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마라. 너희들의 희생으로 잠시나마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테니까.’ 엄마가 일어나면 꽃물로 잠시 분위기를 살려볼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예쁘긴 하네! 엄마 일어나면 불이 날뻔하지 않았냐고 왜 가스렌지 사용했냐고 야단치지 말아야지.’     


엄마는 과꽃을 특히 좋아하셨다. 우리 어릴적 앞 마당과 뒷동산에 과꽃을 포함하여 철쭉이며 백일홍, 코스모스 등 여러 가지 꽃으로 우리들의 감성을 키워주셨다. 모전여전인지 우리 자매들은 꽃을 다 좋아한다. 목포에 사는 동생과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꽃박사라는 칭호까지 들을 만큼 여러 가지 꽃을 기르고 있다. 그래서 우린 둘 다 넓은 정원을 갖고 싶어 한다. 나는 우리집 정원이 너무 좁아 동네 길가에 까지 꽃을 심었더니 엄마는 산책하면서 늘 들여다보곤 좋아하신다. 그런 까닭에 엄마 방에서 창문으로 보면 바로 보이도록 과꽃 씨앗을 파종해 드린 것이다. 새싹이 나오고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꽃이 인사를 하기 시작할 때면 엄마의 얼굴도 과꽃과 함께 활짝 피었다. 엄마는 사실 거의 매일 꽃들과 대화를 했음에 틀림없다.  

   

엄마가 끓여놓은 물은 늘 잔소리와 함께 버리기 일쑤였는데 이번엔 엄마가 좋아하는 과꽃물 아닌가? 오늘은 엄마표 꽃차를 유용하게 써보자. 갑자기 없던 창의력이 꿈틀거렸다. 한잠 자고 일어난 엄마와 저녁을 먹고 과꽃차를 분위기 있게 유리잔에 세팅해 보았다. 핑크빛 물 위에 담장 밑에 피었던 앙증맞은 삼색 비올라 꽃을 나비처럼 사뿐이 올려놓으니, 낮 동안의 긴장과 초조함으로 머리끝까지 올라왔던 스트레스도 어디론지 다 날아간 느낌이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어린눈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엄마가 너무나 귀엽게 보였다.    

 

올해도 과~꽃이 피이었습니다

♬~ ♩~ ♪~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엄마와 나는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과꽃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늘 엄마가 한 수 위다. 가사도 하나도 틀리지 않고 끝까지 부르신다. ‘아니, 저렇게 기억력이 좋은데 왜 치매라는 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친김에 꽃이름 대기 놀이도 했다. 엄마가 뒷동산에 가꾸었던 꽃 이야기로 낮 동안에 놀랐던 순간을 애써 지우며 추억 놀이를 했다.     


집을 잃어버려 놀랐던 불안감은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자야겠다. 나란히 누워 엄마의 18번 섬마을 선생님을 부르고, 그동안 언젠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해보았다. 적절한 답이 나오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엄마의 인지능력을 살짝 테스트해 볼 심산이었다.    

 

”엄마, 나를 왜 이렇게 약하게 낳아줬어?”

“왜 니가 약해?”

“난 야무지지 못해서 말도 잘 못하고 싸울지도 모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말할 건 야무지게 따져 물어야지, 왜 못해?”     

엄마는 마치 연단에 선 연사가 두 손 들어 강조하듯 옳고 그름에 힘주어 말했다.     

“못하겠어! 누가 조금 소리만 높여도 눈물이 나오려 하고 겁부터 나….”

“글도 잘 알고 영어도 잘 하면서 니가 왜 못해?”

“영어도 잘 하면서? 하하하!”     


갑자기 엄마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깜짝 놀랐다. 내가 영어 선생님이란 걸 잊지 않으셨다니! 엄마가 이렇게 예전의 지혜로운 모습으로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있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덕분에 과꽃차와의 추억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면서 맘이 약해지려 할 때마다 ‘옳고그름!’에 힘을 주어 말하던 엄마를 다시 떠올리며 힘을 내야겠다.     


갑자기 없어진 엄마 때문에 지옥과 천국을 경험한 오늘 하루를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어릴때처럼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어스름한 달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엄마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났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속담이다. 한명 한명의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해선 사회 전체가 동참하고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매라는 질병도 마찬가지다. 마을 지인의 도움으로 엄마를 빠르게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치매환자라는 사실을 공유하고 충분한 사랑과 관심으로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3부 안쓰러운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