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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Apr 24. 2022

잠깐이 아쉬워

점진적 딸바보가 되는 중

"왜 이렇게 수줍어해?"


오랜만(?)에 만나는 아이에게 서운한 투로 물어봤다.


 주에 다섯 날을 연달아 일을 하고 이틀을 붙어있곤 하는데, 아이는 나와 떨어진 지 하루 이틀만 지나면 애정 표현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뭔지 모를 수줍음을 느낀다. 아침에 출근 전 잠깐이나마 아이가 보고 싶어서 안방에 슬쩍 들어가 얼굴을 비춰도 나를 보고 부끄러운 듯 베갯속에 엄마 품속에 폭 숨어버리고 만다. 어쩌다 조금 일찍 퇴근한 날은 아이가 잠들기 전에 들어와서 "ㅇㅇ아 아빠 왔다!!", "아빠 보고 싶었어?", "아빠 안아줘!" 등 관심의 표현을 쏟아내도 관심 없다는 듯 그냥 외면하고 엄마를 찾아 달려가 버리기도 한다. 멋쩍은 미소와 함께 서운함을 느낀다.


 나와 아내가 연애 때부터 가끔 듣는 표현중 하나가 있는데 바로 남녀가 바뀐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수다쟁이에 감수성도 많아서 그만큼 눈물도 많고 감정도 굉장히 쉽게 움직인다. 반면, 아내는 보다 묵묵하고, 사사로운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특히 영화를 볼 때 나는 우는 일이 빈번하고 아내는 그걸 보며 키득 대며 놀리느라 순간 유지하고 싶은 여운의 감동까지 침해받기 일수다.)하지만 혈액형별 성격을 적어도 8할 이상은 믿고 사는 나에겐 조금 미스터리한 일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알려진 바로 비교하자면 좀 더 대범하고 관대하며 크게 크게 생각할 것 같은 O형이 나이고, 조금은 소심하고 작은 일들에 디테일하며 작게 작게 끊어 생각할 것 같은 A형이 아내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을 곁들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만큼 나는 가족 안에서 서운함을 많이 느낀다. 애정표현에  상당히 무덤덤해진(연애 때보다는) 아내 에게도 물론이지만,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만큼 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도 같이 표현해주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아이는 포옹을 한다던지 뽀뽀를 해주는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아는 지인이 SNS에 올린 영상에서 생일이 불과 일주일 정도밖에 차이 안나는 아이가 아빠를 보고 다가가, 볼에다가 또 입술에다가 엉성한 뽀뽀세례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입버릇처럼 물어보곤 했다. "아빠 뽀뽀~" 하지만 아이는 "시어!"라고 피하거나, 그냥 대답을 안 하고 빠져나가고 싶다 아우성치거나, 끙끙 소리를 내고 온갖 저항을 해대며 고개를 휙 돌려 버린다. 그럼 어린아이에게 너무 강요하나 싶어서 얼른 보내 주지만 정말이지 서운함을 느낀다.


 그만큼 아이는 나에게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내 자식, 딸이라는 존재감도 확실히 점차 커져가고 있다. 일하다가 보고 싶고, 뭐하는지 궁금하고, 아내가 영상이나 사진이라도 찍어 보내주는 날엔 그냥 '헤헤' 거리며 바보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런 서운한 감정이 좋다. 맹목적인 사랑, 그것에 대한 어렵기만 한 의미가 뭔가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나와 아내를 쏙 빼닮은 아이, 자그마한 손, 발로 휘젓고 다니는 여기저기, 그게 바로 우리가 키우는 딸자식이라는 생각에 새삼 어깨가 으쓱하기도 한다. 너무 조급하거나 빨라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아이도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점점 애정이 더 깊어질 테니까.

한주에 온전히 함께 보낼 수 있는 48시간이 아쉽다. 그 잠깐의 시간이 순간처럼 훅 훅 지나가는 게 너무나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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