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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Nov 04. 2022

5년간 추적한 가난의 경로

[서평] 이문영 <노랑의 미로>

가난은 잘 보이지 않는다. 숨겨지고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양지의 밝음과 맑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어둡고 탁한 가난은 어디엔가 모여있다. 그런 가난이 세상 밖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홍수가 발생해 사람이 죽거나, 추위와 더위에 허덕이는 장면이 필요할 때, 언론은 쪽방을 찾는다. 정치인들은 좋은 옷을 입고 쪽방에 들어와 손을 잡거나 물품을 기증한다. 이 이미지들은 언론을 통해 포착되고 전해진다. 언제나 언론이 관심 가지는 대상은 쪽방촌 사람들의 ‘가난한 일상’이 아닌, 그들이 가진 ‘가난의 이미지’다.

출처 오월의봄

그 오랜 관습을 깨고 쪽방촌 사람들의 일상을 세세하게 기록한 책이 있다. <한겨레> 이문영 기자가 쓴 <노랑의 미로>는 쪽방촌 건물에서 쫓겨난 사람들 45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한겨레 21>에서 2015년 4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강제퇴거 사건을 탐사보도했다. 약 1년간의 연재 후, 그는 동자동으로 돌아가 다시 4년을 치열하게 취재했다. 매일같이 찾아가 동자동 주민 마흔다섯 명의 인생의 궤적을 듣고 기록했다. <노랑의 미로>에 그 5년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난의 미로     

이 책은 가난을 ‘미로’라고 표현한다.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책의 배경은 2015년 서울 용산구 동자동 9-20 건물에서 일어난 강제퇴거 사건이다. 건물주는 쪽방 건물을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 하기 원했다. 건물에 거주 중인 마흔다섯 명의 주민들에게 퇴거를 통보했다. 주민들은 저항했지만 건물주는 완강했다. <노랑의 미로>는 그 강제퇴거 과정을 기록하면서 이들이 어디로 흩어졌다 다시 돌아오게 되는지 그 경로를 추적한다. 그 5년의 과정 동안 주민 마흔다섯 명 중 여덟 명은 세상을 떠났다.

출처 한겨레21

동자동 주민들은 각자 다르면서도 동시에 비슷한 가난의 경로를 따라 9-20 건물에 도착했다. 전쟁 중 고아가 되었거나 청소년 때 섬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했다.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 등에서 국가에게 폭력를 당했지만 어떤 보상도 없었다. 그러니까, 영영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다. 저자는 이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난의 미로 안에 끝내지 못한 가난한 이야기가 갇혀 있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부모 세대 때부터 가난을 유전처럼 물려받았다. ... 부모가 가난했으므로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으므로 학력을 얻지 못했다. 재력과 학력이 없었으므로 인맥도 없었고 등에 업을 '빽'도 없었다. 평생 '가난의 경로'를 이탈하지 못한 채 한차례 반전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살아왔다. (<노랑의 미로>, 183쪽)     


철거와 강제이주의 무한궤도  

건물 보수를 명분으로 한 강제퇴거는 가난한 동네에선 반복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주민들에게 강제 퇴거는 느닷없이 닥친 충격이었지만, 그들의 가난을 형성해온 익숙한 길이기도 했다. 109호 주민 조만국 씨는 총 3번의 강제 퇴거를 경험했다. 2000년대 중반 월곡동 여인숙에서 리모델링 공사로, 마포시장 뒤편 여관 철거로 쫓겨났을 때는 거리에서 노숙을 했다. 동자동 9-20 퇴거는 그의 세 번째 내몰림이었다. 저자는 ‘가난의 경로는 철거와 강제이주의 무한궤도 속에 갇혀 있었다’고 썼다.

  

동자동 9-20 건물은 평균 월세 15만원으로 동자동에서 가장 월세가 싼 건물이었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기초수급자, 혹은 폐지 등을 수집하는 일용노동자였다. 기초수급비 48만원(2015년 기준) 중 방값 15만 원을 내고 나머지 돈으로 겨우 한 달을 사는 주민들은 다른 곳의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대책위를 세우고 항의했다. 그러자 건물주는 건물의 전기와 수도를 끊어버린다. 주민 대부분 질병이나 장애가 있었고, 무료 급식소, 자선단체 등을 찾아 전전했다. 거듭된 공사 시도에 건물은 이내 폐허처럼 변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죽어갔다. 총 여덟 명의 주민이 고독사하거나, 사고사, 병사했다.

 출처 한겨레21

    

귀가 열흘 만에 그는 주검이 되어 다시 집을 떠났다. 원인이 파악되지 않는 실족으로 그는 절명했다. 가난은 부검되는 사인이 아니었다. (<노랑의 미로>, 532쪽)                   


가난의 색노랑     

결국 법원에서 공사중지 가처분이 내려지고 건물철거가 중지된다. 건물주는 서울시에 건물 전체 임차를 요청한다. 반쯤 부서진 쪽방촌 건물에 게스트하우스 리모델링을 멈추고 날림으로 땜질을 했다. 철거 과정에서 박살난 방들은 방이라기보다 방의 형태만 갖추는 수준으로 되돌려졌다. 방과 방 사이의 허물어진 벽은 석고 보드로 대체했다. 불이 나면 속수무책이었다. 저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잘 손님과 쪽방에서 살 사람의 차이가 그 방의 모양에서 구별되고 차별됐다’고 적었다. 


그렇게 날림으로 땜질보수를 한 건물 외벽에는 샛노란 색 페인트를 덧칠했다. 무채색 가득한 동자동에 9-20건물 혼자 노란색이 되었다. 저자는 노란색이 철거민들에게 가난, 죽음의 색이었다고 적었다. 화사한 색으로 칠한다 한들, 그들의 가난한 삶이 나아지지도, 리모델링을 멈추고 땜질로 전환한 부실한 결과물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가 쫓겨난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도 이 노란색 페인트칠과 일반이다.

     

강제퇴거로 9-20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대부분은 동자동에 머물렀다. 만 원, 이만 원 정도를 더 주고 옆 쪽방 건물에 머물렀다. 쪽방에서 쫓겨난 주민들이 찾아간 새 방도 여전히 쪽방이었다. 주민 마흔 다섯 명 중 서른 한 명이 쪽방으로 옮겨갔다. 저자는 쪽방촌 주민들이 여전히 건물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것을 두고 ‘무형의 장벽이 그들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공사를 마친 뒤 재입주한 사람은 여덟 명이었다. 지하 9호에 살던 김상천 씨는 건물주 남편을 옥상으로 끌고 올라갔을 만큼 퇴거에 강하게 저항했지만 복귀를 단념했다. 쪽방 건물은 난방이 잘 안 됐다. 그렇기에 더더욱 곰팡이 냄새와 냉기가 가득한 건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9-20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가난의 관성이 주민들을 그 자리에 붙잡았다. 헌법으로 보장되는 거주 이전의 자유는 돈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됐다.


쪽방은 몸을 누이는 집이었지만 반드시 돌아가야 할 집은 아니었다. 가난한 자들은 작은 충격으로도 흩어진 뒤 꼭 그 방이 아니라 ‘그 방 즈음’으로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되돌아가야 할 본래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 가난한 자들이 흩어지는 방식이었다. 돌아갈 이유는 없으나 완전히 멀어질 수도 없다는 것이 가난한 자들이 모이는 방식이었다. 가난한 그들은 가난한 방 주위를 인공위성처럼 맴돌며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노랑의 미로>, 506쪽)     


가난을 대하는 언론의 자세

이문영 기자는 책 말미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사건은 그들의 목소리만으론 ’사건화‘되지 않는다’고 했다. 언론은 ’보도가치‘가 있는 사건만을 보도한다. 사건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일들은 지면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스로 사건이 되고자 단식을 하고, 고공농성을 하며, 자신의 목에 줄을 매거나 몸에 불을 붙인다고 했다.


저자는 가난이 강제퇴거 사건에 있지 않고, 강제퇴거 이후의 일상에 있다고 적었다. 어쩌다 보니 가난해지고, 우연히 강제 철거의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 궤적이 필연적으로 그들을 가난의 길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노랑의 미로>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듯, 동자동 쪽방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난의 경로‘를 따라가며 가난의 실체와 그 함의를 전달한다.

출처 <노랑의 미로>오월의봄


그래서 이 책은 이주의 경로를 추적하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경로도 좇아간다. 많은 인물과 사건들로 얽힌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주요 인물이 나올 때마다 그의 다음 등장 위치를 표시했다. 표시된 쪽수를 따라가면 해당 인물의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 여러 사람의 삶의 기억을 따라 가난의 경로가 미로처럼 그려진다.


빠르고 자극적인 보도가 익숙해진 시대에, 이문영 기자의 5년간의 끈질기고 치열한 동자동 쪽방촌 취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한다. 지근거리에서 찬찬히 살펴보아야만,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언론은 지금까지 가난을 멀리서 대상화하며 빠르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보도 해왔다. 언론이 가난에 대한 편견을 강화했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끈질기게 취재했던 5년 간의 ’가난의 기록‘이 남았다. 이 책은 언론이 어떻게 가난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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