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본 시민 교양론-머리말'
[표지: 감마로 필자가 불의 발견을 연상하는 이미지 생성]
100만 년 전 어느 깜깜한 밤, 번개가 아프리카 초원의 거대한 바오바브나무를 내리쳤다. 붉은 화염이 하늘을 찌르며 춤추자, 우리의 조상 호모 에렉투스는 두려움에 떨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타오르는 나무에 다가갔다.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자유의 첫 선택이었다.
불을 길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절대적 지배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인류 최초의 자유 선언이었다. 영국의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이 『요리 본능』에서 밝혔듯이, 불을 이용한 화식 혁명은 인간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익힌 음식은 소화 효율을 40% 이상 높였고, 그 여유 에너지는 고스란히 뇌 발달로 이어졌다. 현생 인류의 뇌는 침팬지보다 3배나 크지만, 이는 화식이 가져온 에너지 혁명의 결과였다. 뇌용량이 600cc에서 1,400cc로 급증하면서, 인간은 비로소 추상적 사고, 언어적 소통, 상징적 표현이 가능해졌다.
더 놀라운 것은 불이 가져온 시간의 자유였다. 익힌 음식 덕분에 하루 6시간씩 씹어야 하는 시간이 단 1시간으로 줄어들었고, 그 여유 시간에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예술을 창조하며, 무엇보다 사유하는 법을 터득했다. 자연의 위협에 떨며 반응만 하던 수동적 존재에서, 자연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능동적 주체로 거듭난 것이다.
경이로움에서 의문으로, 신화를 넘어선 이성의 각성
뇌의 비약적 발달은 인류에게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우리는 주변 세계를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앞에서 실존적 불안에 떨어야 했다. 천둥과 번개, 지진과 홍수, 탄생과 죽음... 이 모든 신비 앞에서 인간은 신화와 종교라는 거대한 서사를 창조해 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명명한 축의 시대(기원전 8-3세기)는 인류 정신사의 분수령이었다. 그리스에서는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며 자연의 신화적 설명을 거부하고 이성적 탐구를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다"며 현실 정치와 인간 윤리에 집중했고, 인도에서는 붓다가 브라만교의 카스트 질서에 도전하며 개인의 깨달음을 강조했다.
이 시대의 공통분모는 "왜?"라는 질문의 폭발이었다. 맹목적 순종에서 비판적 사고로, 운명론에서 자기 결정으로, 집단의식에서 개인 의식으로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는 단순한 철학적 격언이 아니라, 외부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유하는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 선언이었다. 다른 동물과 달리 본능이 아닌 이성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 것이다.
21세기 자유의 새로운 도전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자유의 과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인터넷과 SNS는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했지만, 동시에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선택의 자유를 확장했지만,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과 판단을 조작할 위험도 커졌다.
기후 변화라는 전 지구적 도전 앞에서, 현재 세대의 자유가 미래 세대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딜레마도 있다. 플라스틱 사용의 자유, 항공 여행의 자유, 에너지 소비의 자유—이 모든 것들이 지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충돌한다. 이제 자유는 시간을 초월한 세대 간 정의의 문제가 되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전체주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일당독재는 경제발전과 함께 더욱 정교해진 감시체계로 무장하고 있고, 러시아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외피 아래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3대 세습이라는 봉건적 독재를 70년 넘게 지속하며 한반도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 권위주의 체제는 과거와 달리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직접적인 무력 침공보다는 사이버 공격, 정보 조작, 경제적 압박, 내부 분열 조장 등의 방법을 동원한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개방성과 다원성을 역이용하여 내부로부터 체제를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이 모든 역사적 여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과연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더 나아가,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시민은 어떤 교양을 갖춰야 하는가?
자유는 결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책임한 방종이지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자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숙함이다. 자유는 타인과의 조화 속에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미래에 대한 책임감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시민 교양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민 교양은 단순히 정치 제도나 역사적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집단적 지혜에 참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시민운동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적인 시민운동이 주로 오프라인 집회와 시위에 의존했다면, AI 시대의 시민운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상시적 참여와 지능적 의사결정을 특징으로 한다.
이 책이 그런 역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복잡한 정치 이론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려 노력했고, 서구 이론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려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이 수동적 독자가 아닌 능동적 시민이 되기를 바란다. 시민이 제대로 알고 행동할 때 비로소 자유는 완성된다. 시민교양은 바로 그 알고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더 자유롭고, 더 공정하고, 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