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시대, 이성의 법정

'자유로 본 시민 교양론 - 제2장-1' 이성, 새로운 권위의 등장

by 박대석

[표지: 필자가 감마로 생성한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도서관에서 토론하는 모습']


제2장-1: 계몽의 시대, 이성의 법정

이성, 새로운 권위의 등장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명확했다. 종교적 권위도 전통적 권위도 흔들린 상황에서 뭘 새로운 권위로 삼을 건가? 그들의 답은 이성이었다.


이 시대의 지적 거인들은 중세의 어둠에서 벗어나 인간 이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다. 그들에게 이성은 단순히 논리적 사고 능력이 아니었다. 진리를 발견하고 사회를 개혁하며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혁명적 도구였다. 이건 신의 계시나 왕의 권위에 의존하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칸트, 자유의 철학적 기초를 세우다

bz0qboz6tvQDy41-_pTl0.png 필자가 감마로 생성한 칸트의 이미지

"감히 알려고 하라!" - 계몽의 모토


임마누엘 칸트의 "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는 모든 전통과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 정신의 선언이었다. 이 짧은 라틴어 문구는 계몽주의 전체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가 정해놓은 답에 만족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칸트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더 복잡했다. 만약 모든 것을 이성으로 판단한다면, 도덕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각자가 자신의 이성에만 의존한다면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보편적 윤리를 확립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 질문들이 칸트를 괴롭혔다.


정언명령 - 자율성으로서의 자유


칸트의 정언명령은 이 문제에 대한 기막힌 해답이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는 명령은 진정한 자유가 자율성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외부의 강제나 내부의 충동이 아닌, 이성이 스스로 세운 도덕 법칙에 따라 행동할 때 인간은 진정 자유롭다는 것이다.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칸트에게 있어 이성은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었다. 이성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자, 자유의 근거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이성을 통해 보편적 도덕 법칙을 인식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밀, 다수의 폭정과 개인의 자유

wppfouOGT3yNRUONTmNsC.png 필자가 감마로 생성한 존 스튜어트 밀 이미지

새로운 위험의 등장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에 다른 문제와 씨름했다. 산업혁명과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다수의 폭정"이라는 새로운 위험이 나타났다. 이제 문제는 왕이나 귀족의 억압이 아니라, 다수 여론의 압력이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오히려 소수의 자유가 위험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밀이 목격한 것은 사회적 동조 압력의 강화였다. 법적으로는 자유롭지만, 사회적으로는 획일화를 강요받는 상황이었다. 남들과 다른 생각, 다른 생활 방식,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배제를 당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타해원칙 - 자유의 경계선


밀의 "타해원칙(Harm Principle)"은 이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답이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은 완전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원칙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교한 자유의 철학이었다.


이 원칙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첫째, 개인의 자유 영역을 명확히 구분했다. 자신에게만 관련된 일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서는 사회적 규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제시했다. 단순한 불쾌감이나 도덕적 반감이 아니라, 실질적인 해악이 있을 때만 개입이 정당화된다는 것이었다.


개성의 중요성


밀은 개성의 가치를 특별히 강조했다. 그에게 개성은 단순한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경쟁할 때, 사회 전체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획일화된 사회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정체와 퇴보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명암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에 대해 거의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이성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완벽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볼테르는 "관용론"에서 종교적 편견을 비판했고,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백과전서를 편찬하여 인간의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려 했다.


이들의 낙관주의는 과학혁명의 성공에서 나온 것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우주의 운동을 설명했듯이, 인간 사회에도 이성적인 법칙이 있고 이를 발견하면 완벽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계와 위험성


하지만 계몽주의적 이성주의는 한계도 분명했다.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과 전통의 가치를 과소평가했다.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비판하면서 지적했듯이, 급진적인 이성주의는 오히려 폭력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었다.


또한 이성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도 문제가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이 말하는 '보편적 이성'은 실제로는 서구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관점에 불과할 수 있었다. 이는 후에 식민주의와 문화적 제국주의의 정당화 논리로 악용되기도 했다.


현대적 의미


여전히 유효한 계몽정신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계몽주의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가짜뉴스와 정보 조작이 넘쳐나는 시대에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 다양한 관점을 비교 검토하는 능력, 근거에 기반해 결론을 내리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또한 관용의 정신도 절실하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다. 밀의 타해원칙은 오늘날 혐오 표현의 규제, 개인정보 보호, 표현의 자유 등의 문제를 다룰 때 여전히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새로운 도전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도전들도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에 인간의 자율성이 위협받고 있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을 예측하고 조작할 수 있다면, 과연 우리의 판단이 자유로운 이성의 산물일까?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문제는 개인의 자유와 집단적 책임 사이의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낸다. 개인의 소비 자유가 미래 세대의 생존권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은 계몽주의 시대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하지만 기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용기 있게 생각하고, 근거에 기반해 판단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로운 시민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다. 계몽의 시대가 열어젖힌 이성의 법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법정의 판사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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