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을탁탁 디디는 데 발바닥이 욱신, 거린다. 무리하다재발되어 또 못 걷게 될까 봐 차갑게 몸이 식는다.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오늘은 7교까지 가고 싶었는데...
온라인 강의차 접속했는데 화면이 대부분 꺼져 있었다. 켜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새카만 모니터 안이 빙빙 돌면서 마치 우주공간 속 미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후 강의 전날꿈이 어지러웠다. 처음에는 꽉 차 있다가하나 둘 나가고 빈 강의장에 혼자 있는 꿈을 자주 꿨다. 미친 듯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수록가라앉기는커녕 불안에 잠식당했다.
외면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 '못 한 다.' 겨우 세 글자가 두려워 피폐해진다. 완벽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못하면 좀 어때?'가 도대체 왜 안 되는지 모를 노릇이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남편이 떠날까 봐 두렵다. 빨랫감을 정리해서 세탁기에 넣는 남편, 웃통을 벗고 거울 앞에서 오만상을 쓰며 아령을 드는 남편, 할 말이 없을 때마다 귀엽네요~하며 날 보고 씩 웃는 모습이 환영처럼 눈길이 닿는 곳마다 나타났다 사라질 수도 있다.
내 안에 도사린 분노가 두렵다. 끓어오른 분노는 잘 식지 않아어디서든 기어이 터졌고, 소중한 것을 잃기도 했다. 남들은 십만큼 화낼 일을 왜 나는 백만큼 화를 낼까.
긍정적인 의도에도 결과가 잘못되는 일은 흔하다. 편입도, 임용고시도 패배와 불안에 점철되어 내가 내 발등을 찍었다며 내내 후회했다. 인생을 좌우할수 있는 결정을 성급하게 내릴까봐 두렵다.
수백 번 시도했지만 늘 그랬듯, 요요로 전보다 더 살이 찔까 봐 두렵다. 매번 속고도, 다시 한번 걸어본 기대가실망으로 바뀌는 게 두렵고 어차피 질 전쟁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아예 체중계를 눈앞에서 치워버린다.
나는 사실 다 두렵다. 내 성마름과 헛된 꿈, 종잇장보다도 얇은 참을성이 두렵다. 두려움은 다시 두려움을 낳는다. 결국무엇도 시도하거나결정하길 포기하고 머무르려고 한다. 적어도 실패하진 않을 테니까. 내가 멈춘 순간에도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이별이 슬플 것 같아 사랑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두려움은 나를 가둔다.
만약 하늘에서 쏟아지는 지렁이비가 존재한다면, 그와 맞먹을 정도의 공포였던 코로나 초창기, 거실 바닥에 앉아 하루 종일 뉴스를 보며 두려움을 키웠다. 애용하던 공원의 운동기구는 건들지도 못했고 엘리베이터 버튼도 팔꿈치로 살짝 눌렀다.
일체 외출 않던 친구도 여동생이 있는 세종시에 갔다가 어린이집에서 전염된 조카 때문에 감염됐다. 다행히도 콧물감기 정도로 지나간 후엔, 놀이공원, 가족,친척, 우리 집 할 것 없이 막 놀러 다닌다. 노심초사할 때보다 걸리고 나니 그렇게 맘이 편할 수가 없단다. 워낙 오랫동안 겪어그런지, 심리적 내성이 생겼는지 감염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어쩌면 다른 대상도 계속 마주한다면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
공포증 환자를 치료하는 인지행동적 방법 중 '홍수법' 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박쥐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박쥐가 우글거리는 동굴에 하루 동안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포스러운상황에 마치 홍수로 물이 넘치듯 노출되면 어느새 무뎌진다는 것이다.
총은 맞아본 적도 맞을 일도 없지만 베어본 적 있어 칼은 무섭다. 영화에서도 총격씬보다 칼부림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또 실존하는 쓰나미나 전쟁을 크게 의식 않고 사는 걸 보면, 두려움은 경험치를 벗어나지 않는것 같다. 그렇다면 경험으로 극복할 수도 있지않을까.
늦여름의 따가운 햇살도 사위어진 오후 다섯 시, 든든히 밥을 먹고 물병과 핸드폰을 챙긴 가방을 멘다. 여차하면 택시라도 타고 돌아올 양으로 카드도 챙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초반에 발이 살짝 찌릿, 욱신거렸지만참고 내쳐 걸었다. 제법 온 것 같아 고개를 들어 보면 아직도 3교다. 그래도 계속 갈 수 있을 것 같다. 가는 길에 처음 보는 회색 잠자리를 만났다. 설마 주변이 공업단지라 잠자리의피부까지 회색으로 물든 건가.
길목 오른편에 하수구 터널이 있다. 갑자기 쥐가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면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그러나 몇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콸콸 흐르는 물이 보기에도 시원하고 싱그러운 초록 풀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눈부시다.귀여운 참새도 나무에 날아와 앉아 정겹게 지저귄다.
계속 인생의 터널 안에서 웅크리고 있을 것인지, 온통 캄캄해도 벽을 더듬으며 출구를 찾을지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