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상은 ‘가난에 대해 자주 얘기하는 나는 진짜 가난해 본 적 있었나?’에서 출발한다.
진짜 가난이란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먹고 자고 씻는 것 자체가 매 순간 난관에 부딪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닐하우스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냉난방은 당연히 안 되고 배수,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저 멀리서 길어온 물로 아껴서 마시고 세수를 하고 배급받은 김치와 즉석 밥을 해치운 뒤에는 설거지라고 할 것도 없이 수저만 대충 헹구고, 볼일을 본 후에는 땅을 파서 묻는다. 온갖 벌레와 쥐가 득실거려 온몸이 가렵다.
나는 이런 가난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음에도, 왜 가난하다고 느꼈던 걸까.
가난을 느낀 건 이런 때였다. 대학교 때 술 취한 동기를 집에 재워 준 적이 있었는데, 집에 와봤던 선배가 생각해주는 척하며 조언했다.
‘생각 없이 집에 사람들 데리고 가지 마라. 너 이렇게 사는 거 보면 뒤에서 욕한다.’
동기가 정말 내 뒤에서 욕을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겠다. 재워준 은혜를 그런 식으로 갚았다면 본인이 부끄러울 일이지, 내가 혹은 우리 집이 부끄러울 일이 아니었다. 당황해서였는지 속수무책으로 부끄러움을 받아마셨다.
집에서 말리는 걸 우격다짐으로 대학에 들어가기도 했고 형편상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남들은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때, 빈혈로 쓰러질 때까지 공부하며 장학금에 담보 잡힌 4년을 보냈다. 편입 후,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알바도 그만두고 노력했지만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한겨울, 값비싼 기름보일러는 엄두를 내지 못해 입김이 나오는 방에서 자고 샤워라도 할라치면 동기의 자취방으로 뛰어가서 씻고 왔다. 화장실 앞에 길게 묶여 밤낮으로 눈알을 빛내며 짖어대는 개가 무서워 24시 산부인과로 뛰어가고 학교가 자취방에서 멀어서 또 발에 땀나도록 뛰었다. 항상 혼자만 땀에 흠뻑 젖어 뛰고 또 뛰면서 가난을 자각했다. 여름이나 겨울이 미치도록 싫고, 하고 싶은 일이나 배우고 싶은 것을 못할 때. 또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한다는 말에 사랑을 포기할 때 가난은 뚜렷한 형체를 가진 무엇으로 느껴졌다.
어느 순간, 반지하 월세방에서 전세로 옮기고도 누구처럼 아파트가 아니라서, 아파트로 간 후에는 신축이나 넓은 평수가 아니라서 갈증이 생겼다. 상대적 가난은 주변과 비교할 때, 그리고 만족하지 못하는 쪼그라든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나의 열등감이 선택한 가난이었다.
가난이 낭만이 되는 시절도 있었다. 컵라면 하나 사주면 왜 이리 큰돈을 쓰냐고 걱정하면서도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해하던 친구들. 유일한 온열기구인 전기장판이 고장나 동기와 앞뒤로 번쩍 들어 머리에 이고 헛둘헛둘하며 철물점을 찾아다닌 그 밤, 하루 종일 버스 맨 뒤에 앉아 손을 맞잡고 재잘거리며 종점을 찍었던 연애. 맥주 한 캔 들고 공원 벤치에 누워 느끼던 볕과 바람. 왕복 4시간 버스를 갈아타며 휘청거리며 퇴근하는 길에 날 기다린 친구의 환한 웃음. 남의 고시원 옥상에서 몰래 먹었던 달달한 막걸리. 딱 천 원이 모자라 소주 한 병을 더 못 사 먹고 아쉬운 마음에 현금인출기를 찾아 술친구와 내달리던 밤. 임용고시에 계속 떨어지고, 이젠 정말 포기해야지 큰맘 먹고 떠난 강릉 바다 앞 비 오던 날의 몽환적인 풍경과 차갑고 달고 진한 커피.
나는 진흙탕 속에서도 별빛을 보지. 하며 허세 부린 날들. 어쩌면 캔디나 신데렐라 스토리에 가스 라이팅 당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가벼운 주머니에도 진정 행복했던 날들이 있었다.
돈이 없는 것보다 지난한 삶에 대한 추억과 애틋함이 없는 게 진짜 가난 아닐까. 다시 돌아가라면 싫지만, 그래도 역시 나쁘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