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꿈

by 바다숲

아빠를 본 지 벌써 몇 해가 흘렀다. 쇠도 녹일 더위에 물병에 든 물을 아껴 마시며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서 산속 시립납골당에 도착했다. 잠시 헷갈렸지만, 발이 이끄는 대로 본관 2층으로 올라가 오른쪽 벽 끝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맨 아래 칸에 익숙한 납골함과 사진이 있었다. 젊은 아빠는 파란 양복을 입고 맑게 웃고 계셨다.

아빠는 유독 파란색을 좋아했다. 단벌 신사인 줄 알았지만 옷장에는 파란색 양복이 그득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집 외벽을 전부 파란색 페인트로 칠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옥상도, 현관 밖의 재래식 화장실도 파란색이었다. 지금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언니도 그땐 귀신을 무서워하고 겁이 많아 꼭 나를 깨워서 화장실에 데리고 갔다. 그럼 나는 밖에서 파란 전구를 딸깍 껐다 켜면서 ‘파란 휴지 줄까~빨간 휴지 줄까~’ 하고 놀렸고, 언니는 매번 비명을 지르며 ‘야아 하지 마~.’하고 울 듯이 했다. 나도 변소 안에 쭈그려 앉으면 파란 손이 불쑥 올라와 확 잡아끌까 무서워 아득해진 적이 가끔 있었다.


스머프 같이 새파란 집을 본 동네 사람들이 “저 집 바깥양반이 아무래도 신들린 것 같아.” 하고 수군거렸다. 엄마는 참다 참다 외벽을 다시 칠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아빠는 왜 파란색을 보고 그런 걸 떠올렸는지 모르겠다며 못마땅해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흰색으로 페인트를 칠했다. 그러나 대문만은 절대로 양보 못하겠다며, 파란색으로 덧칠해서 한층 더 새파래졌다. 나는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새파란 대문이 특별한 것 같아서 싫지 않았다.

며칠 전, 남편이 차를 도색해도 되냐고 물었다. 차를 새로 산 기분이라도 느끼고자 전체 도색을 하고 싶단 거였다. 주유소 앞을 지나며 차를 어떤 색으로 바꾸고 싶은지 물어보길래, 세차 중인 차를 가리키며 “와~저 차 예쁘다.”라고 했는데, 맑고 투명한 파란색이었다. 남편은 세상 촌스럽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해보니, 걸려있는 옷들도 파란색이 많고, 예전 사진들엔 파란색 재킷이나 블라우스가 자주 눈에 다. 나도 파란색을 좋아했다.

수학선생님을 하시던 아빠는 이내 그만두시고 신문사에 취직을 했다. 그토록 원했던 기자는 평생 못 하셨고, 지면 광고 영업직을 전전하며 인터넷의 발달로 신문사들이 속속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일하셨다. 영업은 건당 수당이 지급되었는데 그쪽으론 재능이 없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아빠가 얼마나 성실히 열심히 살았는지 안다. 저녁마다 상을 펴고 영어, 수학, 사주팔자를 늦도록 공부했고,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네 잎 클로버를 따러 산과 들, 하천을 헤매고 다니셨다. 쉬지 않고 공부하며 꿈을 좇던 불안한 젊은 나와 어쩜 이리 닮아 있는지.

살다가 문득 '나 지금 뭐 하는 걸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밀려들 때면 이렇게 불쑥 찾아오곤 하는데, 이 허망함 또한 비슷했을 것 같다.


동화 속 파랑새는 온 세상을 찾아 돌아다니다 도착한 집에 있었다. 그토록 찾던 행운과 행복도 돌아보면 딸들의 웃음 안에, 아내의 희생과 따뜻한 음식 안에, 당신의 만족 안에 이미 있었을 것이다. 그걸 모르고 온 산과 들을 헤매다 다리 아프고 지쳤을 아빠를 안아주고 싶은 심정으로 가만히 사진을 쓰다듬었다. 아빠는 파랑새를 좇아 서둘러 떠나가셨다. 나는 그곳에서라도 꿈이 이뤄지길, 편안해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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