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의 자랑이다.

by 바다숲

수술을 마치고 막 올라온 아빠를 보러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빠는 눈만 끔뻑이다가 나를 발견하곤 "우리 넓죽이 왔냐." 하고 말하며 얼굴 근육을 애써 움직여 웃으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어디서 힘이 솟아난 건지 링거 바늘을 고정한 테이프를 뜯고 바늘을 빼서 하얀 시트에 어지럽게 핏물이 튀었다. 언니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빠!왜 그래~뭐 줘?"


달려온 간호사와 언니가 힘을 합쳐 비몽사몽 간에도 일어서려고 애쓰는 아빠를 다시 눕혔다. 언니가 아빠 쪽으로 몸을 숙여 귀를 갖다 대니 아빠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랍... 서랍에 있는 거... 막내 좀 줘라."

언니는 서랍을 열어서 종이로 몇 번을 꽁꽁 싸매 놓은 것을 꺼내서 건넸다.

"어이구~자. 아빠! 봤지? 막내한테 빵 줬어~이제 됐지?"

아빠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슬몃 웃었다.


어릴 때부터 유독 식탐이 많고 통통해서 오죽하면 별명이 넓죽이, 먹깨비였다. 수술 전날, 누군가에게 받은 빵을 서랍 속에 고이 아껴뒀다가 나를 주려고 하신 거였다. 언니는 먹는 척이라도 하라며 눈짓을 줬다. 마취가 덜 풀렸을 텐데도 나를 보자마자 뭘 못 줘서 그 난리셨다.


아빠가 엄마한테 용돈을 타 쓰는 건 커서야 알았다. 그걸 다시 아껴서 변소 옆으로 나만 불러서는 몰래 용돈을 주셨다. “앗싸~.”하고 좋아하면 귀엽다고 볼을 쥐고 흔드셨다. 그럼 나는 신이 나서 설탕을 듬뿍 묻힌 꽈배기를 사 먹었고, 하도 먹어대서 친구들한테 '네가 무슨 꽈배기 부인이냐.'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자주 전화하거나 먼저 말을 거는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 집을 떠나 가족보다 친구를 더 찾고 밖으로만 돌던 철때기 없는 딸이었다. 엄마는 외모에 관심이 많아 가끔 봐도 여지 없이 살 빼라고 잔소리를 해서 한 번은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나 살쪘어?"

묻고는 긴장하며 아빠 입만 쳐다봤다. 아빠는 입술을 앙 다물며 단호히 고개를 저으시곤 말했다.

"전혀 안 쪘어. 딱 보기 좋아. 애한테 그런 말 하지 마."

오히려 엄마를 나무라셨다.


남자 친구가 의대생이었다. 집에도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고 다들 좋아했다. 언니네서 밥을 먹는데 형부가 과하게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버님, 좋으시겠어요. 곧 의사 사위 보시겠어요."

평소 아들같이 귀애하던 형부였지만, 처음으로 흰자를 보이며 눈을 흘기셨다. 그리고 또다시 입술을 앙 다물며 고개를 저었다.

"의사는 무신. 우리 혜현이가 훨 낫지. 어디 인물이 빠지냐. 키가 빠지냐. 머리도 좋고, 보다 훨씬 잘났지."

왠지 모르게 뿌듯하면서 가슴이 뻐근해졌다.


매일 저녁 밥상을 펴고 공부했던 아빠처럼 나도 두통에 시달릴 정도로 공부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었다. 네 잎 클로버를 다락 가득 모은 후 복권을 사던 아빠처럼, 안 드는 삶에 행운이 깃들길 꿈꿨다.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몸이 매여 꿈만 꾸었지만, 나는 집을 떠나 원하는 만큼, 원하는 것을 고 꿈의 언저리도 밟아 보았다.


아빠의 사랑은 설탕 가득 묻힌 꽈배기처럼 무작정 달달했다. 살이 찌든, 공부를 못하든 무조건이었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한 없이 작아질 때면 아빠를 떠올린다. 그러면 기죽어 굽어진 어깨가 펴지고 떨궜던 고개를 다시 똑바로 쳐들게 된다. 나는 누구보다 잘난 아빠의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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