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 아빠 일 가시고 언니도 유치원에 가면 하루가 참 길었다. 찻길 앞에 쭈그려 앉아 지나가는 자동차 수를 헤아리기도 했다. 열 손가락이 모자라지 않던 시절이었다. 늘 혼자던 그때의 외로움이 각인되어 지금도 외로움을 잘 타고 늘 누군가를 뭔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종이 인형 놀이는 금세 시들해졌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건 항상 재밌었다. 엄마의 하늘거리는 스카프를 머리에 두건처럼 두르면 기품 있고 신비로운 인도 공주로 변신했다. 또 꽃미남 하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하숙집 딸이 되기도, 그 시절을 평정했던 노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같은 비극의 여주인공도 되기도 했다. 상상 속에선 빨강 머리 앤이 친구 하자 할 만큼 감상적이고 창의적이고 인생을 즐길 줄 알았다.
오후 2시면 유치원 갔던 언니가 왔는데 그때까지가 한 세월 같았다. 없는 살림에 둘을 다 유치원 보낼 수는 없었다. 언니는 조막만 한 어깨에 무거운 책가방을 지고 왔다. 아마 공책 연필 크레파스 스케치북 등이 잔뜩 있었던 것 같다. 언니를 기다리느라 동구나무 밖까지 나가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언니가 오면 밥도 차려주고 라면도 끓여줘 단박에 행복해졌다.
밖에서 “혜현아아, 노올자.” 소리가 들려 나가 보면 유치원이나 학원 갔던 아이들이 집 앞에 모여 있었다. “그으래.” 뛰쳐나가 놀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땐 안 들키게 살금살금 재빠르게 다가가 술래에게 잡혀 망부석이 된 아이들을 얼음땡! 해주면, 잠에서 깨어나듯 아이들 모두 와아~~소리치며 신나게 도망갔다. 웃고 구르고 놀다 보면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배고플 때쯤 엄마가 왔다.
퇴근한 엄마의 손엔 가끔 단팥빵이 들려 있었는데 한 입 물면 그동안의 기다림과 외로움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압력밥솥이 휘잉 신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금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을 차려 내오셨다. 늘 두부조림에 콩자반 콩나물 반찬이었지만 바로 양념한 두부조림 맛은 기가 막혔다. 고기, 참치 그런 거 하나 없이도 멸치만으로 우려낸 구수하고 칼칼한 엄마 표 김치찌개는 정말 최고였다. 당면까지 넣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아무리 따라 해 봐도 그 맛이 안 난다.
"아빠, 오셨어요~~~~~."
저녁이면 매일같이 과자 세 봉지를 사 들고 아빠가 돌아왔다. 가족이 다 모이면 아빠는 특유의 재미없는 유행어와 껄껄 웃음을 남발하신 후 리모컨을 장악하셨다. 대부분 뉴스나 권투 같은 스포츠를 보셨는데 가끔 드라마를 틀어주시면 기분이 하늘로 붕하고 날아올랐다. 특히 밤에 연속극엔 차인표가 나와 손가락을 흔들고, 안재욱이 긴 앞머리를 넘겨 대서 입은 헤벌쭉해지고 내 맘에도 두둥실 별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가끔 친척집에 놀러 가면 자정 넘어서까지 주말의 명화를 볼 수 있었다. 사촌들과 나란히 이불 뒤집어쓰고 작은 TV 앞에서 울고 웃고 무서워했다. 변기에 넣고 물 내린 작은 애완 악어가 하수구의 괴물이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덩치 커다란 킹콩은 왜 그렇게 슬퍼 보였는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의 목이 갑자기 날아다니면서 '아하하핫' 웃을 땐 소리 지르며 이불을 쥐어뜯고 오들오들 떨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액체 기계인간(?)이 나올 땐 어른들까지 모두 TV 앞으로 다가와 눈을 떼지 못하셨다. 그 추억 때문인지 지금도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드라마를 본 운수 좋은 날에도, 보지 못한 울적한 날에도, 무서운 영화를 본 후에도 여지없이 잠은 쏟아졌다.
늘어지게 자고 나면 "참 잘 잤다. 오늘은 누구랑 뭐 하고 놀까." 생각하며 두근거렸다. 오후 2시면 가족도 친구들도 모두 돌아왔다.
지금은 아무리 오래 자도 몸이 찌뿌듯하고 꿈자리가 뒤숭숭한 게 늘 악몽에 시달려 내내 찜찜하다. 기억할 것 없는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간다.
오늘도 혼자인 내게 누군가 다가와 얼음땡! 을 해주면 좋겠다. 그럼 난 그때처럼 아무 걱정 없이 웃고 떠들고 구르며 실컷 놀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