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때 엄마

by 바다숲

사거리 앞 구둣방에 찢어진 운동화를 수선하러 갔다. 아담한 체구의 주인 할아버지도 똑바로 서 있거나 몸을 좌우로 크게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발밑에 작은 가스난로 하나와 커피를 끓일 수 있는 커피포트와 버너가 있다. 그리고 구두 거는 봉, 의자 하나, 구두와 열쇠를 수선하는 각종 도구들이 그 작은 공간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운동화 수선은 오랜만이신 듯했다. 벽에 붙은 요금표에도 운동화는 빠져있다. 운동화를 들어 찬찬히 뜯어보시고는 수선에 알맞은 재료를 찾아 이 서랍 저 서랍 열어보셨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셨다. 오래 걸릴까 싶어 잠깐 걱정이 되었지만, 수선 재료를 찾은 후에는 불필요한 움직임이 하나 없이 모든 동작이 정확했다. 천을 오리고 본드를 붙이고 찢어진 부위 안쪽에도 본드를 바른 후 천을 붙이셨다. 운동화와 같은 색깔 실을 찾아 운동화 안으로 넣으신 후에 밖에서 큰 바늘로 실을 걸어서 뽑아내기를 반복하셨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 일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원체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어디 가든 입 꾹 다물고 있다가 끝나면 총알같이 오기 바빴는데. 너무 궁금했다.

“한 20년 됐지.”

내 말문이 열리기를 기다리셨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가셨다

2주간 문을 닫았었어. 백내장 수술 때문에. 20년 만에 처음 쉬었네.”

“수술하셨는데 바로 일하셔도 괜찮으세요?”

“2주 집에 있으니까 죽겠더라고, 갑갑해서, 나와서 뭐라도 하는 게 낫지. 병원에 전화해서 일해도 되냐고 물어봤어.”

수선이 끝나고, 얼마예요? 여쭤보니 4천 원이라고 하신다. 싸도 너무 싸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프리랜서 아니, 백수인 내 일과는 이렇다. 알람과 무관하게 눈이 떠지면 애정 하는 커피와 홈쇼핑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 먹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쓰윽 보고 집에 와서 TV 앞에 있거나, 종일 집에서 영화채널을 보든지 하다 졸리면 잠에 든다.

주말엔 남편과 아침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서 점심을 해 먹고 스르르 잠에 빠지면 남편이 TV를 꺼준다. 단잠 후엔 시원한 도서관이나 커피숍에 갔다가 선선해질 무렵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다 잠자리에 든다.

일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고 싶다.


세상 게으른 하루 끝에도 어째서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피곤할까 희한하다. 나이를 의식하면서 육체 또한 늙었다는 생각에 호응해 저절로 피로해지는 것일까.



곧 칠순이 되시는 엄마는 20대부터 말 안 듣는 애 둘과 그보다 더 철없는 남편을 건사하며 집안일과 가정경제를 온전히 도맡으셨다.

새벽 4시 반 목욕탕 청소를 시작으로 정수기, 보험 판매원, 가사도우미 등 여러 장소를 버스도 타지 않고 걷고 뛰다가 늦은 밤이 돼서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엄마에게 “엄마는 왜 맨날 집에만 오면 누워 있어?”라고 불평을 해댔다.


딱 지금의 내 나이 때 엄마가, 편입했던 익산의 자취방에 한 번 오신 적이 있었다. 지지리 없는 살림에도 딸이 처음으로 뭔가 해보려는 게 기쁘고 대견하셨던 듯, 적극적으로 친구분께 도움을 청해 구해주신 방이었다.


본 중 가장 피곤에 절어 계셨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곧바로 고속버스를 타고 오셨다. 오자마자 열어본 냉장고에는 오래된 미역국만 덩그러니 있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콩나물과 당면을 사 와 하얗고 뜨거운 콩나물국과 고춧가루 들어간 빨갛고 시원 아삭한 콩나물 잡채를 뚝딱 해서 상을 차려 내오셨다. 컵라면만 먹던 입 속에 들어온 그 아삭한 식감과 다채롭고 기막힌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먼 길 온 엄마에게 밥상을 차려드려도 모자란데, 늘 그랬듯 받아만 먹었다. 내가 앉은자리에서 두 공기를 싹싹 비우는 걸 확인하고 본인은 뜨는 둥 마는 둥 하시더니 상을 물리고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부엌을 정리하고 방을 쓸고 먼지를 닦으셨다. 그리고 동네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고 집에 와서 한 숨 잤다. 쫓기듯 살던 때라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스파이더맨, 원더우먼보다도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우리 가족 모두를 구하던 엄마. 어느새 나도 그때 엄마 나이가 되었다. 엄마의 고단함은 내 편안함과 대비되어 더 가슴이 먹먹하다.

엄마는, 이제는 그만 쉬시라고 해도 집에 있으면 무기력해진다고 마다하신다.

나는 백번을 다시 태어나도 엄마와 구둣방 할아버지처럼 쉼표 없는 성실로 도배된 삶은 못 살 것 같다. 그저 다시 태어나면 조금 철이 든 엄마 딸이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