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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Oct 27. 2024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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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이는 모든 걸 피해서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왔다. 일 년이 공중으로 붕 떠서 사라지고 친구들이 3학년일 때 2학년으로 들어갔으니 편입이라고 해야 할까. 명칭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등교 첫날 담임 선생님께 순이가 같은 반 친구들에 비해서 한 살이 많은 걸 비밀로 지켜달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순이는 사라져 버린 일 년을 없는 시간으로 치고 순이 삶에서 지우려고 했다. 미국에서처럼 복잡한 생각은 언젠가로 미뤄버렸고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눈앞에 있는 일만 하나씩 해 나갔다.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 홀로 지냈다. 공부만 했다. 주위에 앉아 있던 몇몇이 말을 시켜도 순이는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더 이상 순이에게 말을 걸어오는 애들은 없었다. 순이는 외롭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담담했다. 원래 그렇게 말수가 없고 공부만 하는 아이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엄마는 여전히 바빴고, 오히려 전보다 더 바빠 보였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도 유학 시절처럼 순이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페이스톡의 얼굴과 직접 마주 보는 얼굴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는데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려는 의지는 그리 깊지 않은 듯했다. 엄마는 순이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가 변했음을 순이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는 말수가 줄었고 피곤함에도 늘 반짝였던 눈에 생기를 잃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운 모습이라고 순이는 생각했다. 순이가 철부지처럼 굴며 엄마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생기를 따라 했다. 순이는 그런 사람이 되어갔다. 깊고 복잡하고 슬픈 생각은 하지 않고 가볍고 쉽게 선택하며 마음속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발랄한 십 대의 역할을 하며 살았다.     


+     


“난 미미야, 강아지 이름 같지 않아?”

“나 어렸을 때, 내가 좋아하던 인형 이름이 미미였어. 이름 예뻐. 난 순이야, 무슨 할머니 이름 같지?”     

순이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동지를 만난 게 처음이라 오랜만에 기분 좋게 킥킥거리며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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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지냈어?”     

 순이가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인공 등장하듯 제니가 요란스럽게 한껏 반가움을 표현하며 들어왔다.     

“오, 제니 리! 유학생 티가 팍팍 나는 것 같은데? 캐나다가 살기 좋은가보다.”

“그래봤자,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란다. 대학생 된 너희들이 부럽다. 대학은 어때?”

“난 결국 반수 하기로 했잖아. 차라리 재수를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다시 공부할 생각 하니까 고민이 많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더니, 안 빠지더라. 나 고대로야. 어떡하면 좋니.”

“연애 시작한 사람은 없고? 소개팅은?”

“방학이니까 이제 해야지. 어디 좋은 사람 없니? 소개팅 좀 주선해 봐.”     


 졸업 후 제니는 바로 캐나다로 유학을 갔고, 나머지는 대학생이 된다는 생각에 들떠서 한동안 몰려다녔다. 파마나 염색도 하고, 손톱 관리를 받기도 했다. 고3이라 그동안 하지 못한 걸 잔뜩 하자며 노래방도 가고 강남역 주변을 돌아다니며 쇼핑하기도 했다. 홍대나 연남동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닌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지출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대학생이 된다는 건 그만큼의 씀씀이가 커진다는 의미인가 보다. 제니가 없는 상태에서 이 무리에 끼어 다니는 건 순이에게 피로를 가져왔다. 한두 번은 핑계를 대며 빠져나갔지만 그래봤자 미미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순이는 혼자 심심하기만 했다. 조금 재미있고 생산적인 걸 하고 싶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취미로 문학 작품의 번역 연습을 하는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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