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편에게 온 펜레터

by 안나

책을 출간한 후 남편에게 팬레터(?)가 속속 쏟아졌다. 책은 내가 썼는데 독후감은 남편이 받고있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독후 감상을 보내는 이들이 대부분 남편의 회사 동료나 후배들이었다. 역시 남편은 회사생활을 잘했구나 싶었다.


책 쓰기를 하며 언젠가 배지영 작가에게 “남편이 제 원고를 잘 안 봐요.” 했더니 “안나 선생님. 스포츠신문을 이기셔야 합니다.”라는 유머 있는 답이 돌아왔다. 남편의 신문 읽는 모습에 반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결혼 후 그 신문이 스포츠 신문이었다것과 ‘결혼은 눈에 콩깍지가 끼어야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터득했다는 브런치 글(제목:신문 읽는 남자)에 대한 배 작가의 위트 있는 리뷰였다.

원고도 안 보던 남편이 책이 나오자 바빠졌다. 책 홍보에 적극 나섰다. 책은 ‘내돈 내산’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경험했던 나는 몇 분의 지인들 외에는 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다. 부족한 책에 대한 부끄러움이 책 선물을 주저한 더 큰 이유이기도 했다. 남편은 퇴직한 지 3년이 넘었음에도 직장 동료, 후배들에게 아내의 책 출간을 알렸다. 그러자 릴레이라도 하듯 책을 구매했다는 소식과 독후감상문이 연달아 들려왔다. 넉넉히 사서 주변에 나누어 줬다는 고마운 지인들도 있었다.


군산 대우자동차 초창기 멤버로 남편과 오랜 시간을 근무했던 직원들은 책의 내용에 대해 공감의 폭이 컸다. 꼭지 제목을 언급하며 에피소드의 인물이 본인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책 속의 주인공과 아는 사이라는 게 신기하다.

마치 전원일기 드라마 재방을 보듯 읽는 내내 드라마 다시 보기를 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책 주인공에게 문자 보내는 것이 연예인에게 팬레터 보내는 느낌이다.

술 관련 글을 읽으면 직장 생활했던 시절이 생생히 기억난다.

당시 차장님이 그런 재미와 추억으로 보냈구나 싶었다.”

여러 편의 문자 팬레터를 남편은 속속들이 내게 보여 주었다.


남편의 인품 포장(?)은 내가 했는데 남편은 위상이 높아진 자신의 품격을 내게 맘껏 자랑했다.

그중에서 책 쓰기가 오랜 로망이었다는 남편 후배의 고백은 신선했다. 일 년이면 몇 차례 남편에게 책을 선물하던 후배에게 ‘책 출간의 로망이 담겨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의 리뷰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난초 같은 형에게’라는 제목으로 섬세한 리뷰를 보내준 후배는 인상 깊은 문장을 꼽아주기도 했다.

“과거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현재 시간으로 소환되어 나란히 줄을 선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이 현재의 시선으로 재해석되고 미래를 희망이라는 시간으로 재구성해준다.”(글쓰기가 준 교훈 ‘인생은 아름다워’ 중에서)


책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 독후감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의 책 출간이 누군가에게 출간의 마중물이 된 것 같은 순한 느낌이었다.

출간으로 부끄러웠던 마음을 다독여본다.


책을 사 준 이들은 대부분 지인들이다. 우리 부부를 잘 알기에 부부의 에피소드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이야기에 공감과 감동과 재미라는 단어로 감상을 전해주었다. 요즘같이 종이책을 보지 않는 시대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남편을 먼발치에서만 봐왔던 한 지인은 책을 읽고 남편의 팬이 되었다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하늘 같은 남편의 온갖 비밀을 다 누설해주어 즐겁다.”는 무장해제용 멘트도 보내 주었다.


인터뷰 기사를 쓰는 가톨릭 잡지 ‘쌍백합’의 편집장은 책을 단숨에 읽었다며 독립출판의 고충과 “글이 좋으면 됐지. 표지만 미끈한 책과 비교하면 되겠냐.”며 표지 고충에도 공감해 주었다.

책을 내고 얻은 가장 큰 선물이 독자들의 리뷰라는 것을 체험했다.


사실 책을 내고 받은 첫 격려는 친정아버지의 한마디였다.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아버지의 짧은 메시지는 지금껏 받은 아버지의 칭찬을 모두 합한 것 이상이었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아버지에게도 책 출간의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책을 내고서야 작은 아버지 두 분이 책을 내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음 세대인 내가 책 쓰기의 바통을 이어받은 셈이다.


이즈음에서 책 출간의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칭찬을 던진다. 노란색 표지의 책을 만지작거리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각거리는 종이의 질감도 느껴본다. 책을 내고 과분한 격려를 많아 받았다. 책의 주인공인 남편의 인기도 상향됐다. 남편의 환갑 선물이라는 책쓰기의 목적이 부끄럽지 않게 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