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고양이 Jan 11. 2022

돌봄일기#13 – 바닥치고 올라오기 /탱탱

11월 하반기 : 괜찮아지는 듯한 착각.

12월 : 끔찍한 기분에 휩싸였고 결국 자해를 했으며 막대한 금전적 손실. 아끼며 살아야함. 이런저런 손해에도 불구하고 충동은 가라앉지 않아 병원을 찾았으나 초진은 주말예약이 안된다고 하여 포기함. 놀랍게도 코로나 백신을 맞고 생존욕구가 높아짐.










탱탱볼


인생은 탱탱볼과 같다. 초등학교 때 문방구 앞에서 파는, 혹은 ‘과학대잔치’ 같은 이름을 가진 과학의 날에 조잡하게 만들어보던 탱탱볼. 탱탱볼을 바닥에 떨어뜨리면(혹은 던지면) 위로 튀어 오른다. 탱탱. 조금 힘주어 바닥으로 던지면 전보다 더 높이 올라온다. 위로 올라온 공을 잡아 바닥에 내리꽂으면 내 키보다 더 높이 튀어 오른다. 탱탱. 탱탱볼은 떨어진 만큼 올라간다.


내 탱탱볼은 바닥으로 한없이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바닥을 찍었나 싶었는데 잠시 걸린 것 뿐, 다시 또 떨어졌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 위로 튀어 오른다. 극점은 떨어진 만큼 올라간다. 나는 탱탱볼을 잡기 위해 같이 날아오르며 무서워한다. 이번엔 또 얼마나 떨어지려고.


인생이 탱탱볼과 다른 한 가지는 인생이 떨어질 때 땅바닥의 한계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분명 상담선생님은 지금 느끼는 ‘바닥’보다 더 낮은 ‘바닥’을 느낄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단단해지고, 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그래서 다음에 위기가 찾아와도 그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전과 같은 슬픔을 느끼지 않았고 슬픔을 예전과 똑같은 ‘바닥’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뭔가를 제대로 삼키지 못할 만큼 불편할 뿐이었다.




플랜B,C,D....


나는 다음 바닥 찍을 날을 상상한다. 얼마나 끔찍한 기분일까. 어떤 행동을 할까. 어떤 상황일까. 그리고 나름대로 방법을 만들어놓는다. 돈이 얼마가 되던 맛있는 것을 먹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뜨거운 물에 샤워하기,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있기, 가만히 있으면 우울해질 테니 움직이기. 무한대로 세워놓은 계획들은 정작 바닥을 찍는 순간 휴지조각처럼 날라 간다. 아무런 소용도 없는 몸부림. 절박할수록 절망스럽다.


머리로는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고,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하는 상황과 행위들은 나에게 하등 도움 되지 않는 것을 잘 알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내 머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저 어디 숨어버린다. 심해 깊은 곳 해치를 열고 그 안에 들어가 숨어버린다. 머리 쓰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게으름이지. 그럼 날뛰는 감정만 남는다. 매번 하지 말아야지 다짐해놓고 후회할 짓을 하고, 그리고 그제야 편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또 울고. 욕하고.


나를 분리해보자. 그럼 적어도 원래의 나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나는? 걔는 언제나 내 자존감을 깎아먹고, 근데 그것도 나고, 이 무슨 중2병같은 상상인가. 중2병이 중2에만 오는 것도 축복이랬는데. 뭘 어떻게 하면 이런 자기보호의 망상에서 벗어나려나.










이쯤 되면 내 탱탱볼 속의 무언가가 잘못된 거라고 믿고 싶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 감정하나 조절 못하고 징징대고 남도 못 믿고 나도 못 믿고 다 믿지 않고 나을 것 없는 날을 사는 사람인가? 내 머릿속의 어딘가가 고장난거라면 참 좋을 텐데, 문제는 글을 쓰는 지금 매우 멀쩡하다는 거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지도 않고, 식욕이 폭주해서 8시 넘어 라면을 먹었을 뿐 멘탈이 쪼개지지도 않은 꽤 괜찮은 상태다. 



지금은 높은 상태,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나는 올해 새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나 인턴, 굴 먹고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