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결혼의 영역이야?
난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반가움의 포옹을 나누고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하다 꼭 맞닿아 감싸 안은 채로 들어가 더 이상 손 닿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나오는 것. 여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안다. '미래'라는 영역에서 서로 좀 더 나은, 좀 더 덜 슬픈, 좀 더 덜 어렵기 위해 현재를 잘라버리는 선택을 한 것을. 이것이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옳은 것만 같다는 믿음에 기대어 가지치기한 것임을. 그 가지가 나였다는 것이 따끔으로 시작해 깊게, 믿기지 않은 잘려나감으로 철철 슬픔의 진액을 흘리고.
우리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얘기했다. 마치 미래에는 앉아보지 못할 집안의 소파에 앉아 얘기하듯이 그런 것 따윈 깨야할 꿈이라고 비웃듯이 이별을. 함께 막힌 벽을 바라보며. 아무래도 거짓을 말할 수는 없어 얘기한다고. 아무래도 거짓을 얘기할 수는 없어 답한다고. 서로에게 솔직하는 일이 헤어짐에 가까워지는 일이라니, 신이시여 부디 노하소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관계를 겪게 된다는 것은 꽤나, 서글픈 일이구나. 서글프다는 말로는 담지 못해 자꾸만 떠올려보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이었는가. 그의 욕심이었는가. 서로의 어긋남이었는가. 아직 알지 못하는 삶에 대한 착각이었는가. 시간 앞의 인간의 나약함이었는가. 미래가 보낸 경고장이었는가. 현실의 폭력이었는가. 고장 난 꿈이었는가. 달콤한 오해였는가.
마지막까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노력하겠다 말하고 추궁하지 않아도 될 일을 늘어놓았다. 마음의 피부를 벗겨 바다에 뛰어든 듯했다. "너라면 괜찮아."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나를 하늘로 붕 띄웠다가 격추시켜도, 마음껏 상처 주고 할퀴어도, 당신이라면 괜찮다고. 그것까지 사랑이니 받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당신이 주는 이별까지 사양을 못해 덩그러니 손에 남아버렸다. 그 공간을, 우리의 시간을, 당신이란 사람을 어딘가에 베인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주말에 다시 혼자 그곳을 찾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아무 일 없던 듯 이야기 나누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같은 공간에 앉아 그날의 나를 쳐다보고 두고 왔다. 앉은 자리에서 소설책을 한 권을 다 읽어대며 그 시간을 과거로, 과거로 묻고 또 묻었다. 아주 오래전 일처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묻어 잘 거름이 되길 바라면서. 이 가지치기가 죽음을 몰고 오지 않도록, 더 무성한 나와 당신이 되길 기도하면서.
그대는 나에게 사랑이었네.
당신과 비슷한 부위에 점이 생겼다. 중지 손가락 옆, 검지를 살짝 빗겨야 보이는 곳에 점이 있었는데, 나는 검지에 생겨서 너무 잘 보인다. 이 점을 볼 때면 당신 생각이 날 것을 단번에 느껴 내 몸이지만 얄궂다. 이별은 마음이 앓는 줄 알았는데 몸 너마저.
그림자 테두리를 손으로 따라 그렸다. 마치 보호막을 치듯. 누군가와 닿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로운 건가? 그리운 건가? 슬픈 건가? 어둠 쪽의 나라도 포근하라고 너는 거기서 빛 쪽의 나에게라도 위로받으라고 그림자를 쓸어 넘겼다. 그렇게 마음 서늘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날이 따듯해졌다. 거리를 걷는데 키 작은 나뭇가지에 머리가 스쳐 닿았다.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듯한 감각이 들어 멈추어 여러 번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휴대폰 추천 사진에 불쑥 당신이 나타났다. 쳐다볼 수 없어 바로 지우지 못했던 사진들이 남아 대뜸 찾아와 “어? 안녕.” 하고 인사했다. 시간이 약인지, 기억이 약인지, 노화가 약인지. 손가락의 점이 이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을 보니 이 또한 제법 내 일부가 되었다.
다시 시간이 걸음을 옮기고 꽤 잊고 지냈는지, 그 점이 오른손이었는지 왼손이었는지 찾기에 이르렀다. 천천히 시간이 퇴적물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밀려오더라도 잔잔하게 스쳐간다. 당신이 후회하길 바랐다. 지금도 나라는 사람이 퇴적되도록 둔 시간을 팔 벌려 안을 만큼 넓은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다. 다만, 후회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서로 합리화하기에 적정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까. 굽이굽이 곡선을 그렸던 감정의 결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어떤 사람과 어떤 시간을 보내면, 어떤 사이가 얼마나 지속되면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걸까. 더 이상 부모님의 지인이나 가족이 아닌 나의 지인들의 결혼 소식 앞에 이 궁금증은 가시지 못했다. 그리하여 정리한 보기는 두 가지였다. 앞으로도 이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서, 이 사람이 아니라면 안될 것만 같아서 결혼을 택하는 것일까. 아니면, 결혼이란 걸 고려할 시기가 돼서 그 시기에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일까. 정리한 생각들을 질문하니 그에 대한 답변은 반반이었다. 결국 타협이나 이해로 결론짓지 못하고 잠시 접어둔 채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지만 좀 더 입체적인 관점과 이유들이 있다는 것을 감각하고 있다.
결혼이라, 결국은 더 나은 미래로의 걸음이건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나무가 자라고 숲이 울창해지듯 같은 모습을 그리고자 해야 하는 것이구나. 미래라, 나는 이렇게나 커다랗고 깊은 마음이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또한 썼으니 되었다. 분명 사랑이었노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으니 되었다.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럼에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대는 나에게 사랑이었으니 부디, 굳건히 다리에 힘주고 하루를 버티고, 넘치게 웃고, 기억은 지우고 사랑의 감각을 쥐고 나누며 살라. 그것으로 되었다.
나 또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