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투쟁
사소함을 알아가는 일, 그 어찌.
오늘은 사소해 보이는 내 일상을 하나 공유해 본다. 나는 주말마다 독서 모임엘 나간다. 늦잠을 반납하고 출근할 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분주히. 출근길과 비슷한 길을 향해. 책이 좋아지기 시작하니, 이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같이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냥 만난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하지 않던 표면적인 대화가 아닌, 그 사람이 이면에 담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갈 때 단계를 거친다. 이름, 나이, 사는 곳, 직업, 가족관계, 이제는 빠질 수 없는 MBTI까지. 그 시시콜콜한 탐색전이 끝나고 나면 데면데면, 주제를 찾아 서성거리다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둥, 날씨가 어떠하고 시간이 참 빠르다는 둥 하며 누가 누가 상투적인 말을 끝내지 않고 잘 이어가냐의 게임이 된다.
그 사이에서 운 좋게 취미가 같다거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거나 해서 말고리가 이어진 경우라면 럭키이지만 역시나 대화는 반가움과 호들갑 사이 어디쯤을 떠다닌다. 독서모임은 그런 사태에서 조금 더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문이 되어준다. 책을 고르게 된 계기, 책의 내용, 그 책을 읽는 동안 그 사람이 소화한 것들을 들으며 책과 사람을 모두 알아간다. 그러다 보면 가치관이라던가, 평소 혼자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역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독서모임의 묘미이겠다. 이것이 즐거워, 벌써 햇수로는 5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중간에 쉰 기간도 있었고 거쳐왔던 모임의 형태도 다양했으나 책으로 발화하는 대화는 언제나 풍성하다. 공백을 가진 후 다시 독서모임엘 나가기 시작했을 때, 다시금 느낀 것은 독서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수다쟁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읽고 느낀 바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평소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지금 읽은 책뿐 아니라 이전에 읽었던 책과 본인의 생각이 함께 상호작용해서 새로운 시각이나 견해를 토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독서 모임의 가장 큰 메리트는 경청할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한다는 것이다. 신이 나서 끼어드는 것이 아니고서야 듣는 이들은 화자의 말을 끝까지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독서 모임에 온다는 것은 그 책의 내용보다는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말하고 있는 이가 인상 깊게 느낀 지점, 의견, 생각을 통해 가공되거나 재생산한 정보를 나누는 일. 사람은 결국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책과 영화, 드라마, 신화, 역사에 매료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느껴보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삶을 그려보고 알 수 있게 하는 일. 독서모임은 여러 개의 다른 삶을 살아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는 것은 얼마나 값진 시간인가. 단군이래 안 바쁜 적이 없던 사회는 시간 낭비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냉혹하다. 이 사람의 말이 들을만한지, 그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고 해도 그 정보를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까지 선별해 취득하는 시대이니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많은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면 믿겠는가. 상담의 기초는 잘 듣는 일이다. 설사 그것이 책 이야기일지라도 느낌, 생각, 관점, 태도 등은 나의 것이다. 책으로 나를 이야기할 수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책에서 찾을 수도, 찾지 못해 끙끙대다가 이야기하며 태어날 수도 있다.
이렇듯 쓰다보니 독서모임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꾸준히 더 쓸 수 있지 않을까하여 제목에 숫자를 붙여 보았다. 꾸준함이 주는 것들은 언제나 힘이 세다. 일상적이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도 건져 올리는 것도 글쓰기의 양분이며 자기돌봄의 발판임을 배운 날이다.
사소한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