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의 부아c 작가님 북콘서트를 다녀왔다.
작가님은 외로움이 있어야 나를 더 잘 알고,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생각이 멈췄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참 오래 외면하며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스스로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늘 사람들 속에 있었고,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
“나는 혼자보다 여럿이 더 편한 사람이야”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혼자는 심심하니까 늘 누군가와 함께하려 했고,
자연스럽게 “나는 혼자보다 여럿이 더 편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말해오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외로움은 나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북콘서트를 다녀온 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나는 정말 외로움을 몰랐던 걸까?
아니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해서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어 있으려 했던 걸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던 건
어쩌면 혼자 남는 시간이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공허함만 가득했던 적도 있었고,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도 정작 내 마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때의 그 공함은 피로가 아니라,
내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는 외로움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어딘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바쁘게 움직였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우스꽝스러울 만큼 많은 일정으로 내 마음의 빈틈을 채웠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외로움은 부족한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 아니라,
나에게서 멀어졌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난 뒤 혼자서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사람을 좋아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혼자 있는 나’를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외로움이 싫어서 계속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외로움이 찾아오는 순간,
그 감정은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너는 지금 너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있니?”
이제 나는 외로움을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감정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인들 속의 나를 불러 내면의 나에게 데려다주는 안내자 같은 존재였다.
외로움을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되고,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외로움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결핍의 감정이 아니라,
나를 깊게 만드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이전보다 조금씩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