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와파!
어릴 적, 나는 책을 좋아했다.
특히 세계 여러 나라를 소개하는 책들은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곤 했다.
중학교 3학년 역사 시간, 우리는 이집트에 대해 공부했다.
책 속에는 거대한 피라미드의 사진이 실려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삶에도 이 피라미드를 보러 갈 기회가 있을까?"
그 질문은 마치 하늘로 던진 소원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에는 여행이란 그저 책 속 이야기나 TV 속에서만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머니가 사주신 세계여행 전집을 펼쳐 볼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사진 속 낯선 도시들과 신비로운 문화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막연한 동경과 가난했던 현실은 너무나 멀어 보였다.
나는 한때 생각했다.
내 인생은 어쩌면 한 나라에서만 평범하게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라고.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고, 나는 결국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많은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집트에 도착한 후 며칠 동안 머물 집을 찾아다녔다.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집을 알아보던 중, 나는 흥미로운 광경을 발견했다.
거리에 있는 건물들이 하나같이 미완성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마치 공사가 끝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곳곳에 벽이 뚫려 있었고, 몇몇 건물들은 뻥 뚫려 천장조차 제대로 덮여 있지 않았다.
“저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 건가?”
멀리서 바라보면 단순히 버려진 건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둠이 깔리자 몇몇 층에서 불이 켜졌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완공된 집보다 미완성 상태의 집에서 살 때 세금이 훨씬 적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건물의 일부를 완성하지 않은 채 거주하는 방식을 선택한다고 한다.
3층 이상의 건물 중 상당수가 한쪽 벽이 뚫려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집을 보러 다니며 그런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허공을 가르는 거센 바람을 맞닥뜨려야 했다.
비어 있는 공간 사이로 바람이 쌩쌩 몰아쳤고, 때로는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나는 그 바람을 하나의 환영 인사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느 날, 빈집을 소개받아 새로운 아파트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마을 초입에서 한 할머니를 마주쳤다.
히잡을 쓴 그녀는 틀니를 빼서인지 입 주변이 움푹 들어가 보였지만, 그 미소만큼은 따뜻하고 반가움이 가득했다.
"어서 오세요. 여기 집을 찾고 계신가 봐요?"
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를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네, 이렇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파트에 집을 보러 왔어요."
그녀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 아파트의 여성 리더 중 한 사람이에요. 좋은 집을 찾기를 바래요. 이사 오면 다시 만날 수 있겠네요. 우리는 코리안을 좋아합니다."
그녀의 말에 우리는 놀랐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했고, 심지어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말 한마디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마담 와파'라고 소개하며,
우리가 보러 갈 집에 대해 아는 만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긴장했던 마음이 그녀 덕분에 한결 편안해졌다. 그녀가 마치 천사처럼 우리를 이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9층으로 올라갔다.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였다.
다행히 저렴한 가격에 얻을 수 있었고, 내부도 예상보다 깔끔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놀랐던 것은 그 집 부엌 창문에서 피라미드가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나일강 건너 피라미드가 보이는 아파트.
오래전 교과서 속에서 바라보던 삼각형 피라미드.
언젠가 직접 볼 수 있을까 꿈꾸던 그것이 이제는 내 부엌 창을 통해 매일 바라볼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순간,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네 꿈은 이루어졌어. 네가 바라던 그곳에서, 지금 네가 살고 있어."
누군가 우리를 따라다니며 우리가 가야 할 길, 머물러야 할 곳을 하나하나 인도하는 것만 같았다.
우연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내 삶에 이미 예정된 필연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자리 잡은 이 마을에서 이집트를 떠나는 날까지 머물게 되었다.
피라미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묵묵히 시간을 지키고 있었고, 우리는 그 거대한 유산 아래에서 우리의 삶을 꾸려 나갔다.
매일 창밖에 서서 우리를 보고 있는 피라미드를 마주 바라보며,
내 삶에 처음 피라미드를 보는 것을 꿈꾸던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나의 삶을 이끌고 계셨다는 것을 매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신 이집트에서의 첫 장은 그렇게 아름답게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