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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pr 01. 2024

운동과 맥주와 행복

오늘도 오운완, 오늘도 치어스, 오늘도 행

아이가 돌아오기 1시간 전,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커튼을 치고는 TV를 틀었다. 유튜브를 열어 'ㅎㅌ'를 검색했다. 초급자 코스를 찾아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분명 초급자 코스였는데 전혀 초급자 코스 같지 않은 난이도가 이어진다. 숨이 차오른다. 하나, 둘 쌓여갈수록 땀이 나기 시작한다. 40분 코스를 마치고 나니 옷이 젖기 시작한다. 미흡하지만 오늘의 운동 완료. 나도 '오운완'을 해본다.



운동과 이렇게 안 친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운동을 그렇게 싫어하는 건 아니다. 제대로 표현하자면 잘 못한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 테다. 어릴 때도 잘 못했는데 스스로 운동을 못한다고 단정 지으면서 점차 더 못하게 되었고 그러니 안 하게 되었고 아이 낳고 시간이 없어 안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결국은 몸을 잘 쓸 수도 없고 살은 찌고 근육은 점차 소실되어 가는 중에 있다. 



어릴 적에는 피부가 까맣고 마른 편이라 또 운동 이외의 다른 활동에 적극적인 편이라 아이들은 내가 운동도 잘할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 학기마다 릴레이 주자를 뽑을 때면 나보고 뛰어보라는 권유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새 학기가 조금 지나고 익숙한 시간들이 흐르면 릴레이 주자는커녕, 체육시간에 팀원을 뽑아야 하는 일이 생길 때, 나를 절대 팀원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나도 뭐 그런 친구들이 조금은 섭섭했지만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나 같아도 절대 뽑지 않을 엉터리 오브 엉터리 실력이었으니까.



그렇게 멀어져 멀어져 간 운동은 성인이 되어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스무 살 때 처음 맛본 맥주는 신세계였다. 이렇게 맛있고 기부니가 좋아지는 음료가 있다니! 새로운 맛의 향연에 빠진 나는 운동은커녕 틈만 나면 맥주와 함께했고 덕분에 옆구리에 튜브를 장착하게 되었다. 뭐 그래도 젊었을 때는 한 끼만 굶어도 옆구리 라인이 살짝 드러나면서 2KG는 즉각 즉각 빠져주니까, 따로 운동할 필요를 더더욱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점점 굳은 몸으로 살아왔다.



아이를 낳고 나니 허리도 아프고 팔목도 아프고 체력은 체력대로 바닥나고, 살은 살대로 빠지지 않아서 운동을 해볼까 했는데, 운동은 정말이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어서 좋아하는 걷기를 하기로 마먹었다. 1년 전 즈음 열심히 걸으며 뜀박질까지 계획했는데 몸이 조금 무르익어 갈 때 즘, 우리 동네에 묻지마 사건이 일어나면서 바깥으로 운동하러 가는 게 겁이 났다. 그렇게 조금씩 미루다가 어느새 겨울이 왔고 어느새 봄이 왔고 지금 이렇게 건강하지도 않은 돼지가 되어 있다.



그래서 지난달, 시청에서 진행하는 핏밸런스라는 운동에 등록했다. 유산소 운동도 하고 근력운동도 하는 프로그램이라 나에게 딱 맞다고 생각했다. 구기종목은 정말이지 심각한 젬병이라 근력부터 키우자는 생각으로 맨손운동을 시작했다. 역시나 운동은 나에게 너무 힘들지만 처음으로 운동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 비록 일주일에 두 번밖에 하지 않아 살은 빠지지 않지만 운동을 하고 맥주를 먹으니 그래도 양심의 가책은 조금 덜 느껴서 정신건강에 유익하다고나 할까? 어쨌든 조금씩 몸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



이번 달은 강의 일정 때문에 운동을 등록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유튜브 홈트를 검색해 열심히 따라 하며 땀을 냈다. 물론 강좌에서 선생님께 지도를 받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오늘도 땀을 흘리고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니 홀가분하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알코올 중독자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 또 중독된 게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일과를 끝내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의 행복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아주아주 미약한 주량의 사람일 뿐이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가늘고 길게 맥주를 먹으며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운동을 하려는 마음이 일어난다.



올해 봄이 끝날 무렵 나는 꾸준히 운동을 하여 더 건강한 비어러버가 돼야지.

여름은 비어의 계절이니까.

내게 곧 '운동은 맥주요, 그러므로 운동은 행복이다'라는 주문을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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