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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여자

나르시시스트가 구축한 환상의 감옥에 갇히다

by Rana



(이상화와 평가절하) 처음에는 ‘당신 정말 똑똑한 사람이야’, '당신은 정말 완벽한 여자야', '내 여자가 이 정도는 돼야지' 라며 이상화하지만, 관계가 안정되고 통제가 어려워지면 ‘생각보다 별로네’, ‘바보 아니야?’와 같은 말로 자존감을 공격하고 혼란을 유도한다.




그는 나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아 말했다.

“너는 내가 그토록 기다려온 여자야.”


그 말은 마치 로맨틱 영화의 대사처럼 날아왔고,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이 사람, 우리는 운명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오십이 넘도록 가슴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모르는 나에게 '드디어 진짜 사랑을 하게 되는 건가?' 하는 기대와 설렘이 일렁거렸다. 나를 완벽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나를 완성된 조각으로 가두려는 말이었다. 수정도, 실수도, 흔들림도 허용하지 않는 단단한 기대. 나는 그 완벽이라는 감옥에서, 조용히 금이 가고 있었다.


그의 준비된 듯한 말투와 행동, 그리고 준비된 듯한 사랑이라는 감정 표현. 황홀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준비된 ‘포획’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초기 강렬한 애정 표현을 **‘러브 밤(love bombing)’**이라고 부른다. 나르시시스트가 상대를 신속히 자신의 영향력 안에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 지나치게 빠르고 강한 감정의 몰입, ‘내가 평생 기다린 사람’, ‘이전에 만났던 사람은 기억도 안 나’ 같은 말들 하며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감정의 안전장치를 무력화시키고, 그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감정적 미끼였다.






그는 매주 서울에서 내가 사는 곳으로 내려왔다. 주말마다. 내가 다니는 경영철학 수업이 끝날 때까지 카페에서 기다렸고, 내가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나를 보겠다고 4시간 이상을 이동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을 놔두고 우리끼리만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직 본격적으로 그를 알기도 전에 동행하게 되었고 그는 스스로 자신을 나의 남자친구라고 소개를 했다. 처음엔 그것을 사랑이라 믿었다.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감정적으로 그에게 종속되었다. 그가 함께하지 않은 시간이 미안해졌고, 다른 사람을 만나려면 그를 낙담시키지 않기 위해서 설명이 필요해졌다. 지금 돌아보면, 이건 ‘고립(isolation)’의 시작이었다. 나르시시스트는 종종 타인과의 관계를 차단해 상대를 자기 통제 하에 두려 한다. 그는 “너의 진짜 친구는 나야”, “네 주변 사람들은 널 몰라”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내 시간을 살아가는 나를 마치 허락받지 않은 자유를 쓰는 사람처럼 미안하게 만들었다.


나를 완벽하다고 말하는 그 사람. 외모도, 커리어도, 사고방식도, 심지어 대화를 나누다가 잠시 멈추며 나를 지긋이 응시하면서 "당신은 참 스마트해." 그리고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남녀를 통틀어서 당신처럼 대화나 토론이 잘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어. 이쁘지 날씬하지 똑똑하지, 정말 당신은 완벽한 여자야."

그 말은 내 자존감을 우쭐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독립적으로 살아온 나에게 왠지 모를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달콤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 말하며 나에게 자신을 위해 일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오랫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직원들을 만났지만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직원은 없어. 가끔 그런 직원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몇 달 안 하고 나가더라고. 지금 사업으로 스마트한 직원을 확보하기도 힘들고 회사 장래를 기대하기도 힘들어. 빨리 IT업종으로 전환해서 똑똑한 직원들로 회사를 채울 거야. 당신이 나를 좀 도와주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나는 점점, 그의 부족한 세계를 채워주는 퍼즐 조각이 되어갔다. 이건 나르시시스트가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특징 중의 하나인 **‘이상화(idealization)’**였다. 나르시시스트는 관계 초기에 상대를 자신의 이상에 맞춰 극단적으로 칭송하고 숭배한다. 그러나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외부 대상에 투사해 메우는 방식이다. 그는 나를 통해 스스로가 위대하다고 느꼈다. 내가 예뻐서, 똑똑해서, 자랑할 수 있어서. 나는 그에게 거울이었다. 그가 되고 싶은 사람, 갖고 싶었던 삶.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운전 중에 이상 증상을 보였다. 신호 대기 중에 좌회선 신호를 보고 차를 운전하다가 운전각도를 크게 벗어나면서 우측에 주차해 둔 대형트럭을 백미러로 치며 급정지하였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눈에도 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눈은 초점을 잃고 손을 떨면서 쥐락펴락을 하고 있었고 갑자기 언어가 어눌해져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안 나는 바로 그를 세브란스로 데려갔다. 그리고 받은 진단은 뇌졸중.


그때 그가 말했다. “너 아니면 안 돼. 너 하나만 믿고 다시 살아볼게.” 그 말은 부탁이 아니었다. 선언이었다. 전문가들은 **‘의존 유도(dependent entrapment)’**라는 용어를 쓴다. 상대가 ‘나 없이는 안 된다’고 느끼게 만드는 동시에, 반대로 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식의 책임감을 주입한다. 나는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그는 나를 ‘구속’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그리고 그의 주변에 그를 돌봐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리고 새로 시작한 앱개발 기획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나는 휴직계를 냈고, 그의 재활과 사업을 도우면서 그의 세계로 완전히 들어가 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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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롭게 시작한 첫날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나에 대한 찬양은 더 이상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내 거라며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겠다는 사람이 수입원이 없는 나에게 일은 시키면서도 임금을 주지 않았고, 먹고사는데 필요한 생활비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마트에 가면 따라가고, 무엇을 먹고 싶을 때 같이 먹어주고, 어디 놀러 가고 싶을 때 같이 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번씩 내 돈으로 옷을 사거나, 물건을 사면 나는 그가 미안해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수입이 있던 없든 간에 내가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말한다. “왜 그런 걸 샀어? 그거 비싸.” “옷은 그냥 입던 거 입어. 은근히 낭비력이 있네.”.


그건 사랑이라기보단 제한이었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의 자립성을 차단하고 심리적·경제적으로 종속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네가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은 겉으론 배려지만, 실제론 ‘너는 내 울타리를 벗어나지 마’라는 말이었다. 그는 내가 나를 지탱하는 모든 끈을 자르기를 원했다. 직장, 돈, 사람, 자존감. 그 모두가 그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내가 그의 컨트롤 안에 있다고 판단한 순간 변했다. 말투가 차가워졌고, 목소리는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생각보다 별로네.” “너, 바보야?” “그런 것도 모르면서 뭘 한다고.” 그가 나를 무너뜨리던 말들은 날카로웠다. 그리고 꼭 자신이 옳다는 소리를 나로부터 듣고 싶어 했다. 내가 뭔가 말하면 중간에 끊고, 설명하면 ‘헛소리 말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더 나아가서는 고함을 질렀다. 나는 어리둥절 해졌다. 언성을 높이고 고함과 삿대질을 할 만큼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가? 그의 사고방식과 흥분하는 패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전환’, 나르시시스트 관계에서 가장 전형적인 패턴이다. 처음에 신격화했던 상대를,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철저히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으려 했고, 내가 잘못되었으니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했고 만약 하지 않는다면 그를 무시한 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그의 화가 충분히 풀릴 때까지, 내가 그에게 사과할 때까지 대화를 단절했고, 밥도 혼자 해서 먹고 나가고,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는대도 장을 보지 않았다. 침묵은 나를 그에게 굴종시키기 위한 폭력이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한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나는 그의 노예가 되어 정신과 영혼이 파괴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나를 다시 예전처럼 봐주길 바라는 마음, 그건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을 사랑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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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툼이 있었고 그는 침묵했고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냉장고가 텅 비어 먹을 것이 없었다. 그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나가서 밥을 먹고 저녁에 돌아와서 방문을 잠그고 잤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절대 누군가에게 구속되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그는 종종 이렇게 했다. 기분이 상하면 말하지 않았고, 그저 뭔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나에게 감정을 전했다. 장을 보러 가지 않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조금씩 꺼내 쓰던 계좌에 잔고가 바닥나고 있었고, 이곳은 그의 집이고 그의 세상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작은 일상 하나로,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내가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불만을 표현하지도 못하게, 그저 무기력하게 그의 처분에 따르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를 **‘수동적 처벌(passive punishment)’**이라고 부른다. 나르시시스트는 직접적으로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아주 사소한 일상의 ‘차단’이나 ‘유보’를 통해 상대를 통제하고, 잘못을 깨닫게 하거나 굴복하게 만든다.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충분한 벌을 주었다고 생각이 들면 조금씩 화해를 위한 제스처를 보냈다. 갑자기 밥을 하고 같이 먹자고 한다던지, 내 식사를 남겨놓고 출근을 한다던지, 갑자기 와서 나에게 포옹을 한다던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내가 발버둥을 치면 그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완력으로 나를 꼼짝 못 하게 하고는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는 갑자기 웃으며 “우리 오늘은 장 보러 갈까? 맛있는 거 해 먹자”라고 말한다.


그의 벌을 내리고 다시 보상을 주는 주기적인 패턴, 그것은 명백한 **‘보상-처벌 순환(cycle of reward and punishment)’**이었다. 그는 나에게 화를 냈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스스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지금과 같이 마트에 가서 냉장고를 채우거나 외식하면서 나를 달래려 했다. 화도 그가 내고, 화해도 그가 하고, 문제도 그가 만들고, 해결도 그가 했다. 이해 못 할 상황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건 **감정적 조종(emotional manipulation)**이었다.


나의 감정은 점점 혼란스러워졌고, 나는 이게 사랑인지, 동정인지, 아니면 단지 익숙함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웠고,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 그가 나를 다시 밀쳐낼지 몰라 긴장해야 했다. 말 한마디로 시작된 기분 변화, 눈빛 하나로 나를 가두는 그 사람의 감정의 구조물 안에서, 나는 감정적으로 마비되어 갔다. 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떠나야겠다고. 그런데, 어떻게 떠날 것인가. 말하고 떠날 수 없었다. 말하면 그는 날 가로막을 것이고, 나를 비난하고, 아니면 울며 매달릴 것이며, 아니면 폭발할 것이다. 육체적 폭력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자주 화를 참지 못했고, 목소리를 높였고, 손끝을 부르르 떨며 입술을 깨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떠나기로 했다. NLP 수업을 마친 날, 그가 내가 공부 중이라고 안심하고 있던 때에 아무 말도 없이 대구로 내려왔다.




그가 내게 ‘완벽하다’고 말하던 순간부터,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없었고, 그의 말 없는 침묵속에, 그가 휘두르던 말 한마디마다 내 자존감은 금이 가고 있었다. 사랑은 나를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는 일이라는 걸, 통제와 보상의 반복은 관계가 아니라 감옥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 감옥에서 걸어 나온 지금, 나는 누군가의 결핍을 채우는 퍼즐 조각이 아니라 온전한 나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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