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되는 저주를 내려주세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고 거절당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님프의 저주로 인해,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 그는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으로 인해 수많은 님프들의 구애를 거부하며 절망을 주었던 나르키소스는 스스로 호수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지독한 자기애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자신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에서 소통과 연결이 어렵다고 한다. 외로움과 고립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심리적인 문제와 정서적 불안을 느끼게 되고 심해지면 자기 파괴로 이어지게 된다. 지나친 자기애가 결국은 자신을 망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가 나에게 하는 협박과 욕설에 대한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렇게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절절한 눈빛을 보내던 사람이었는데, 내 옆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면서 말하기도 전에 내가 필요한 것을 챙겨주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처럼 나를 대하고 있다. 지금 나는 꿈속인 것인가, 아님 이것이 현실인 것일까.
도망치듯이 그의 곁을 떠나서 집으로 왔다. 나와 그의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헤어졌다고 말하니 이유를 묻는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참 설득력이 없다. 그가 나를 지극정성으로 대했던 것을 알던 사람들이기에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그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말하는 나도 뭔가 맥락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어지는 행동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곁에서 벗어난 직후부터 그는 화를 내기 시작한다. 아침 저녁으로 수십통씩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낸다. 걸려오는 전화를 계속 받지 않고 두려워서 당신과 통화 못하겠다고 하니 이제는 문자 폭탄을 보낸다. 죽을죄를 지었냐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과 관련해서 마무리하지 않고 나오지 않았다고 책임감을 묻는다. 이어서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개망신을 당하게 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사랑해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씨*년이라는 문자를 보낸다.
며칠이 지나자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온다.
"누님 무슨 일이에요? 형님이 전화가 왔는데 누나가 일하다 말고 사라져서 지금 하던 일이 올스톱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빌려준 돈도 있는데 전화통화가 안된다고 하고요."
"라나야, 에이블이 전화 와서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둘이 무슨 일 있나?"
"지금 에이블이 단톡방에 이상한 글을 올렸어요. 그래서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이 운영자인 저한테 전화해서 묻는데 내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야 대응을 할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단톡방에 내 실명을 들어서 명예훼손하는 글을 올린 후에 그를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개인적인 일을 단톡방에 올리는 것은 맞지도 않거니와 확인도 안 된 이야기를 실명을 들어서 비방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나의 일방적인 헤어짐 이후 한 달이 넘었지만 그의 협박과 욕설은 멈출 줄 모른다. 그리다 어느 날 다정하게 "당신아"하고 문자를 보낸다. 소름이 돋는다. 정상인이라면 불가능한 극과 극의 감정 기복을 보여준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내가 사람을 잘 볼 줄 몰라서 벌어진 일이다. 젊었을 때 여러 사람을 만나 사람공부가 되었었더라면, 일을 하더라도 공직이 아닌 민간 부분에서 일하며 산전수전을 겪었더라면 뒤늦게 중년의 나이가 되어 사람을 몰라 이렇게 낭패를 겪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다. 쏟은 우유를 보고 울어봐야 소용이 없다. 문제를 문제로만 본다면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아닌 그 안에 숨어있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어떤 기회가 있어서 배우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최근 이별을 거치면서 나르시시스트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다.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그를 피할 수 있었던 계기가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청난 러브밤잉으로 시작해서 만난 지 한 달도 전에 결혼하고 싶다고 하고 두 번째 달에는 생활비를 주겠다고 하였다. 주말이면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거의 나의 모든 모임에 참석해서 굳이 낼 필요도 없는 밥을 사서 남자친구 멋지다는 소리를 들으려 했다. 사람들이 우리 둘을 보면서 비주얼 커플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깨를 우쭐거렸다. 그러다 내가 하는 어떤 말, 어떤 행동이나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의 잘못으로 몰아갔었다. 보통 사람들하고 주고받는 대화가 그에게는 안 통해 그냥 알았다 하고 넘어가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것이 다 징조였는데 그의 러브밤잉에 취해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그가 나한테 주었던 사랑을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으로 가장한 소유욕이고 집착이다. 힘들지만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헤어짐 이후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공부를 통해 그가 취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사망 또는 살인미수 사건들이 심심잖게 나오고 있다. 2021년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의 가해자 김태현(28세), 최근 서울 강남역 인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25살의 명문대 의대생에서 부터, 지난 11일 평택에서 50대 남성 A씨가 헤어지려고 하는 5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얼굴을 찌르는 등 데이트 범죄가 연령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 3939명으로 2020년 대비 55.7%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올 1~4월 기간동안 경찰에 신고된 교제 폭력 건수는 2만 5900여건이고, 이 중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는 4400여명이며 구속은 겨우 1.87%(82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데이트 범죄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교제폭력'은 폭력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서 연인간 행해지는 언어 및 신체적 폭력을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법 제도가 미비한 상황이다. 국회에서 발의한 '데이트폭력 등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륭안'도 임기 만료와 함께 결국 폐기되었다. 피해를 예방할려면 결국 나 스스로 나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나의 경험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주부터 소시오패스보다 더 위험하다는 나르시시스트 연인과의 위험한 로맨스에 대한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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