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나를 위한 선언이자 기록이야
“그 나이에 왜?” “그 나이이기 때문에.”
내가 바디프로필을 하는 이유는 ‘기록’이지, ‘과시’가 아니다.
몸을 조각한다는 건 단지 근육의 형태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결심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매 순간 나에게, 내 몸에게 알려주는 행위다.
2025년 봄, 지난 몇 해를 유지어터로 현상유지만을 위해서 운동하다 보니 재미가 없어졌다. 매일 거울 앞에 비추어진 내 모습은 어제나 오늘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변함없는 내 모습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던 차에 운동하고 있는 헬스장 지점장을 통해서 바디 프로필을 무료로 찍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내게 묻기 시작했다. 너,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거 지겹지? 또, 뭔가 해보고 싶지?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다시 바디프로필을 준비하기로 했다.
쉰여섯의 나이에, 누군가는 미쳤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선택이 내 삶에 대한 헌신이라고 느껴졌고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하루 두 번의 유산소와 웨이트, 철저한 식단, 수분 조절과 칼로리 계산까지—내 삶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나는 대답했다.
"지금이 가장 무언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니까."
운동과 식단에 집중하려면 모임도 자제해야 한다. 그래서 두 달간 일체의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술 한 잔 기울이던 저녁 자리에도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할 때도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대신 삶은 당근과 닭가슴살, 고구마가 든 도시락을 먹었다. 맛없는 식사라고,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웃으며 “4월 13일, 바디프로필을 찍어서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늘 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바디프로필이 뭐야?” “그걸 왜 해?” 이런 반응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이 길을 홀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나의 결정을 존중하지도 응원하지도 않는 그들에게 더 깊은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 길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더 심한 반응들도 많다. 사람들은 그냥 쉽게 농담을 던진다. “그 나이에 비키니 입는다고? 대단한데?” “몸 좋아지면 어디 쓸 데가 있어서?”
비록 웃으면서 넘기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내가 바디프로필을 찍는 이유는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얼마나 주체적이며 나의 의지를 가지고 사는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하나의 도구였다. 사진 한 장, 포즈 하나에 담긴 건 단순한 몸의 외형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과 통증, 회복, 끈기, 그 모든 것들이었다.
B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와는 공연을 보다가 안면을 틔운 사이였고, 가끔 연락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평소 점잖은 사람인지라 바디프로필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말하는데 별로 거리낌은 없었다. 대화를 하다가 편하게 말했는데 그가 관심을 보인다.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더니,
“프로필 사진 나오면 꼭 보여줘요”라고 말했다.
나는 정중하게 웃으며
“개인적인 사진이에요. 공유하진 않을 거예요. 인스타그램으로 보세요”라고 답하며 거절했다.
인천에서 공공기관에 다니는 피터도 있었다. 오래된 인스타그램 벗인데 내가 무엇을 도전할 때마다 응원의 메시지도 보내주고 스타벅스 쿠폰도 보내주며 나를 응원해 주던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었다. 문자도 나누고 차 한잔 하면서 인생 이야기도 나누었었다. 그리고 그 역시 삼 년 만에 다시 바디프로필에 도전하는 나를 흥미롭게 보았다. '라나는 할 수 있어요'라고 하지만 그 역시 마지막에는 같은 말을 꺼냈다.
“사진 나오면 꼭 한 장 보내줘요.”
갑자기 화가 올라왔다. 그래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했다. 아마도 동생이라 쉽게 감정을 드러냈던 것 같다. "피터, 피터도 내가 우스워요? 내가 왜 피터한테 개인적으로 바디프로필 사진을 보내야 하는데?" 그 말에 피터도 놀란 눈치다. 멍하니 쳐다보더니 "아니에요. 안 주셔도 돼요.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했나 봐요. 마음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려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오해 풀어주세요"
사람들은 나를 궁금해했고, 나의 도전이 그들에게는 놀라웠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이 온전히 응원만은 아님을 안다. 그들은 내가 내 삶의 일부로 선택한 이 도전을, 또다시 타인의 시선으로 포장하고 그들의 기준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그들이 바라는 건, 내 몸을 구경거리 삼을 수 있는 한 장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참을만한 것이었다.
“공개구혼용이에요?”
양구에서 경찰서장으로 퇴임해서 대구에 정착해서 산지 5년된 70대 C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내가 견뎌온 훈련과 식단, 나를 위한 집중과 고통의 시간을 오로지 남자에게 섹스어필하기 위한 사진을 갖기 위한, 원초적 본능에 기반한 행위일 거라는 단 한 문장으로 폄하한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화도 나지 않았다. 이건 내가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강원도 양구에 사시는 지인의 부탁으로 아내를 잃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외로운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자는 생각에 몇 번 만나주었던 건데 그는 내 노력을 욕망과 연결 짓고, 내 몸을 과시하려는 무언가로 전락시켰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그동안 내가 그를 만나주었던 것을 이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었을까? 혹시 내가 자기에게 관심이라도 있었서 만났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제 싹을 잘라야겠다. 아까운 내 시간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아니 어느 정신없는 여자가 반누드의 사진을 공개구혼용으로 사용하나요? 그동안 저를 그렇게 보고 계셨던 거예요? 제가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네요”
그날 이후 나는 더 단단해졌다. 그들의 말은 내 중심을 흐트러뜨릴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더 묵묵하게, 더 확실하게 내가 하는 것에 집중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짐에 가서 웨이트를 하였고, 단백질과 탄수화물과 수분의 균형을 맞추었고, 거울 앞에 서서 매일매일 운동하며 만들고 있는 내 근육의 결이 얼마나 또렷해지는지를 확인했다.
자기애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자기애가 아니라 자기 존중이었다. 내가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내가 나에게 어떤 삶을 선물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자신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그리고 마침내 4월 13일, 나는 스튜디오의 조명을 마주했다. 콘셉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카우걸. 거칠고 강인한 나의 모습을 렌즈 안에 담았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은 내가 버텨낸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붉은 체크 비키니를 입고 여성스러운 포즈로 촬영한 모습이었다. 그 속엔 나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인 여자의 미소가 담겨 있었다. 여자 포토그래퍼는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고 나와 호흡을 잘 맞춰 주었다. 그녀는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았고, 그래서 제시하는 그녀의 말을 믿었다. 그날 나는 단 한 번도 '노출'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나를 드러내고 있다는 확신만이 또렷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 나이에 뭐 하러?"
그럼 나는 대답한다. “이 나이이기 때문에.”
나는 그 어떤 나이보다 지금의 내가 가장 멋지다고 믿는다. 나는 매일 아침 내 삶에 책임을 지며 살고 있고, 매 순간을 나로 채우고 있다. 나를 조롱했던 사람들, 나를 소비하려 했던 사람들, 나를 수치심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모든 시선들을 모두 거부한다. 이제 더 이상 내게 닿게 하지 않는다.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고, 나는 그 어떤 때보다 명확하고 생생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몸의 변화를 넘어, 관계의 진실이 무엇인지, 타인의 시선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중년 여성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의 당신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나이와 관계없이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하며 변할 수 있고, 더 좋은 나를 만들 수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더 빛날 수 있다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의 삶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바디프로필은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내 삶의 방식을, 내 선택을, 내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나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나를 조율했으며, 그렇게 변화하는 나를 기록했다. 그것은 사진 한 장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것은 나와의 약속이었고, 나를 위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아침에 눈을 뜬다. 카메라 렌즈는 닫혔지만, 나의 여정은 계속된다. 이제 나는 다시 삶의 무대 위로 올라선다. 내 근육과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 그리고 내가 견딘 모든 시간을 껴안은 채로.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한 시선으로 나의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누구인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나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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