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후지몽의 꿈

전혀 힘들지 않아. 그동안 이순간을 얼마나 바랬는지 몰라

by Rana




한 사람의 꿈이 그 사람의 꿈으로만 그치지 않을 때가 있다. 꿈꾸는 꿈의 가치가 개인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한 집단의 꿈으로 확장되는 경우이다. 그렇게 한 번 생겨난 집단가치는 공동체 전체의 무의식 아래로 스며들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창조주의 우주가 서서히, 점차 거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창조의 바퀴는 더 이상 멈추는 법을 모른다.


2009년부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듯 실천해왔던 후지몽의 꿈은, 시간이 흐르며 이토시마의 변화를 꿈꾸는 일본의 청년들에게 닿았고, 2025년 4월 17일, 한국에서 날아간 이화서원 패밀리가 토토로가 나올 것만 같은 후지몽의 숲속 집에 도착하던 바로 그 순간, 후지몽의 오래된 꿈은 비로소 우리 모두의 꿈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어쩌면 거창하게 느껴지던 단어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숨, 그리고 웃음과 밥상 위의 나눔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마음공부에서 주역으로, 그리고 이토시마로

2024년, 나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조용히 앉아 스스로를 바라보고, 삶의 깊은 근원을 묻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내면을 향한 여정 끝에, 나는 주역을 만나게 되었다. 이화서원을 통해 상경과 하경을 공부했고, 2024년12월에는 해외 여행과 함께하는 심화과정이 개설되었다.


그 첫 걸음이 2024년 12월 대마도였고, 두 번째 걸음이 바로 2025년 4월, 일본 규슈 후쿠오카, 이토시마였다. 그곳에서 나는 후지몽과 그의 가족을 만났다.




2009년 워크나인과 후지몽 이야기 — 꿈의 뿌리

후지몽과 이화서원과의 인연은 단순히 2025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거슬러 2009년, 일본의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을 중심으로 일본의 생태운동가들이 한국을 찾았고 그들은 100일 동안 한국 전역을 걸으며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지키자"는 워크나인 순례를 시작했다. 그때 후지몽과 레이코는 아직 결혼 전이었지만, 바로 이 순례의 기획자였다.


평화를 위한 걸음,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위한 순례. 그 순수한 발걸음이 일본과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되었고, 그 다리 위에서 후지몽과 레이코, 그리고 이화서원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2011년 후쿠시마 이후 — 큐슈 문명전환 운동의 시작

후쿠시마 원전 재난은 일본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도쿄를 떠난 수많은 사람들이 남쪽 큐슈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후지몽도 그 흐름 속에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피난한 것이 아니라, 원전사건을 계기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송두리채 바뀌고 커다란 인식 전환이 생겼다.


그동안 안전하고 편리한 삶의 터전이라고 여겼던 도시가 더이상 생존의 보루가 아니라 자연에 의존해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나약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전기, 물, 식량등 모든 것들이 외부에서 끌어와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큐슈로 이주한 사람들은 자급자족, 자립적 에너지 순환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불어 재난이 닫쳤을때 국가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이어지면서 그 결과 이토시마, 구마모토, 미나미오소마 등지에 자치적 공동체, 대안학교, 지역화폐 등의 문명 전환의 실험이 태동하게 되었다.


도시를 떠나 농촌과 자연속으로 들어간 이들은 내가 사는 삶이 곧 정치이고 철학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곳, 먹는 것, 아이를 키우는 방식 등 모두를 새로운 문명으로 만들어 "밖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에서, 안에서부터 중심을 세우는 삶으로"의 인식전환을 통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2025년 봄, 이토시마를 찾다

우리 일행의 대부분은 이토시마를 처음 왔다. 하지만 이화서원의 김재형 선생님은 9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우리가 이토시마 거주민들과 같이 공부하게 될 주역심화 교재의 커버사진이 2016년 그가 처음 이곳을 방문해서 후지몽을 만났을때 찍었던 사진이라고 한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내려 자동차로 40-50분을 달리니 이토시마가 나타났다. 도시는 입구부터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바다와 산, 강, 들판이 잘어우어진 곳이었다. 초록이 가득한 산과 들을 거쳐 후지몽의 집으로 들어가는 마을 어귀에는 자운영이 흐드러진 들판, 부드럽게 흘러가는 시냇물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좁은 골목을 돌아 들어가는 순간 우리 일행은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에 와~하고 소리를 내었다. 우리들 눈앞에 마치 토토로 영화 속 오래된 집 같은 후지몽의 집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숲은 사랑하는 후지몽, 조금의 꾸밈도 없지만 아름다운 레이코 그리고 에너지폭탄인 자녀 유타미소라가 자연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토시마에 정착해 각자의 자리에서 문명전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일본의 임업 생태계를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후지몽을 비롯하여

수렵에 대한 책 발간과 함께 수렵문화를 알리고 공동체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며 이주 청년의 정착을 지원하는 코이치와 치하루

7개의 대안학교 모델인 즐거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유야마

디자이너라는 본업외에 공유오피스를 만들어 30여 명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사도치

이제 이토시마는 하나의 문명전환 실험의 현장이자 생태계가 확장되고 있었다.




4월 17일 – 이토시마에 도착하다

2025년 4월 17일, 우리는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살짝 흐린 하늘 아래, 부드러운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후지몽은 웃으며 우리를 마중 나왔고, 그의 차를 타고 이토시마로 향했다.


도착한 후지몽의 집은 마치 영화 속 장면 같았다. 마을 입구에는 자운영이 무리를 이루어 흔들리고 있었고, 작은 연못가에는 일본창포가 맑은 빛을 머금고 피어 있었다. 토토로의 집같은 후지몽의 오래된 집안에서는 유타와 미소라의 웃음소리가 퍼져나왔고, 레이코는 정성스럽게 차와 음식을 준비해 주었다. 도시의 빠른 호흡과는 다른, 느리고 깊은 시간이 우리를 감쌌고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꼈다.



4월 18일 – 숲, 쉐어하우스, 그리고 백제의 흔적

아침 6시에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가 초등학교를 발견하고 운동장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유산소를 했다. 바디프로필 촬영이후 거의 일주일동안 운동을 못하면서 여행을 온 상태라 일반식을 섭취했을 경우 급격히 체중이 늘까봐 걱정되었던 차에 운동장을 발견해서 기뻣다. 심장박동 110~130을 유지하면서 50분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니 나와 같은 아침형 인간 김재형 선생님이 후지몽 집 뒤에 신사로 나를 데려간다. 같이간 감동과 함께 신사에서 고요한 시간을 가져본다.


후지몽과 레이코가 자신들이 키운 식재료로 맛있고 건강하게 차려준 아침을 먹고 하늘에게 질문을 던지고 주역쾌를 뽑으니 12.천지비가 나온다. 네번째 쾌에 점이 있어 20. 풍지관으로 변형을 한다. '나의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균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얻어 나의 결대로 살고 싶다'라는 질문에 하늘이 "주리지 - 하늘 선물속에서 산다"라는 답을 주신 것이다. 여기서 선물은 내가 노력해서 받는 선물이 아니라 하늘과 연결되면서 그냥 내려주는 것이라고 하니 참으로 기분좋지 않을수 없다. 행복한 마음을 가슴에 가득 담고 점심후 우리는 숲가꾸기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나섰다.


숲 입구에 후지몽이 직접 조각한 뱀 신이 세월에 닳아져 있었는데 후지몽 설명에 따르면 나무 뱀신이 닳아 형체가 없어지면서 숲의 정기와 하나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뱀신은 영원히 숲에 머물면서 숲을 지켜준다고 한다. 우리는 후지몽이 정성껏 가꾸고 있는 숲에 누웠다. 등은 시원했고 눈을 들면 길게 뻗은 나무가지와 잎파리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정겨웠다. 우리는 손에 흙을 묻히고, 바람결 속에 귀를 기울이며 나무들과 대화했다. 숲은 살아 있었다. 숲은 자연과 함께 누워 공부하고 웃는 우리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우리의 손길을 고요히 받아주었다.



이어 코이치의 <이토시마 셰어하우스>에 방문했다. 재택근무자 또는 벤처 창업가, 친환경 삶에 관심있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와서 머물다 간다고 한다. 현경교수님 덕에 직접 양조하는 위스키도 먹고 살짝 취기가 올라오니 기분도 더 좋다.


이어서 유야마가 운영하는 대안학교에 갔는데 바다를 마주하는 언덕위에 학교가 위치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마치 아이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아이들이 언덕에서 우르르 내려오듯이 우리를 보러 내려온다. 하나같이 꺼리낌이 없다. 일행중 한명이 아이에게 묻는다. "학교에 대해서 뭐가 좋은지 말해줄래요?" 그러자 망설임없이 첫번째 아이가 "재밌고", 두번째 아이가 "자유롭고", 그리고 세번째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할수 있다"라고 말한다.


학교라는 곳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수 있는 공간이였던가. 내가 기억하는 학교는 교육이라는 명분아래 엄격한 시스템속에 우리를 가두고 가르키는 대로 시키는 대로 수동적인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였는데 이곳에서 공부하는 아이의 말은 너무도 인상이 깊다.




한때 나는 대안학교에서 공부하면 일반학교에서 처럼 세상의 룰을 배우지 못하게 되어 사회 적응은 어떻게 하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자유로운 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시도해보는 연습이 나에 대한 이해와 확신으로 이어질 것이고 사회에서 나가서도 나를 잃어버린채 외부환경에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대안학교와 이어서 방문한 세도치의 <민나노> 코워킹 스페이스. 이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삶, 함께 일하는 삶의 실험장이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지붕 아래 각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공간이었다.



오후에는 바닷가로 향했다. 이토시마의 해변에 있는 <바다신사>, 바로 이곳은 나당연합군에 패한 백제의 후손들이 도망나와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처음 도착한 곳이고 한다. 부드러운 모래 위를 맨발로 걸으면 그 먼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제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지만 이화서원 야안은 먼 선조들을 위한 살풀이를 바다신사 앞에서 하였다. 낯선 이국땅에 도착한 백제인들이 느꼈을 허망함, 나라잃은 슬픔, 이국땅에서의 불확실한 새출발을 하면서 경험해야했던 고통과 두려움을 씻겨주고자 하는 같이간 일행들을 대신한 그녀의 의식이다. 먼 옛날 고통속의 영혼들이 오늘 밤 그녀의 치유의식을 통해 평안을 느꼈을꺼라 믿는다.




4월 19일 – 비 오는 날의 주역 공부와 네잎 클로바

이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9시가 되자 주역공부를 하러 이토시마 거주인들이 방 안에 모여 들었고 주역 상경을 공부하고 각자의 인생에 있는 질문과 함께 쾌를 던졌다. 그동안 한국인들은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나와 현경교수님, 피노는 근처 산으로 올라갔고 녹음이 울창한 그곳에서 이름모를 꽃과 풀들을 보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갖다가 내려오는 길에 발밑에 있는 네잎 클로바를 발견하고는 꺄~ 하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돌아간 후지몽의 집 거실에서는 일본의 형제자매들이 머리를 맡대고 업드려 주역풀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을 펼쳤다. 언어는 달랐지만, 마음은 통했다. 한 괘 한 괘를 풀어가며, 서로의 삶을 나누고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마트에서 도시락을 사서 일본 1대 샤먼인 히미코의 무덤이 있다는 공원으로 향했다. 넓게 펼쳐진 들판에 자리를 깔고 둥그렇게 앉아 히미코 무덤에서 발견된 청동 거울과 뒷면의 달력, 그리고 농사짓는 백성들이 쉽게 게절 변화를 알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두 개의 솟은 봉우리에서 쏟아 오르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계절을 알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다시 주역쾌를 보기 시작했다.


주역은 약 5000년전, 복희씨가 하늘과 우주와 자연을 관찰하면서 주역의 원형인 팔괘를 창시한것이 지금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오랜 지혜가 수천 년을 이어온 주역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자연, 인간의 변화가 하나로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4월 20일 – 히미코의 무덤, 부부바위, 마지막 저녁

아침은 레이코가 정성껏 준비한 김밥과 유부초밥으로 시작했다.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식사였다. 이렇게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이제 못먹는다고 하니 아쉽다. 주변 눈치를 보면서 두 그릇을 했다.


오후에 현경 교수님이 주문한 100% 오가닉 딸기 케익이 배달되었다. 유코와 현경 교슈님의 생일이 4월 24, 25일로 나란히 있다면서 같이 생일을 축하하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케이크를 자르고, 축하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서로의 삶에 축복을 보냈다. 그 순간, 이토시마의 봄 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별빛으로 가득 찼다.



저녁으로는 일본인 여성포수가 직접 잡은 사슴으로 만든 스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귀한 음식이었다. 한숟갈 떠서 목구멍으로 넘기니 깊고 따듯한 맛이 느껴졌다. 친환경운동가가 사냥을 직접하는 이유는 필요한 만큼만 잡아서 부산물까지 다 먹는 것이 자원낭비도 없고 환경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과잉생산이 당연한 현 경제시스템에서 가축들도 과잉생산되어 생명의 귀함도 없이 도살되는 현재 생산 유통방식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밤을 보내던 그 날, 우리는 거실에 둘러앉아 소회를 나누었다. 참여했던 사람들의 말을 감동깊게 듣다보니 내 차례가 되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공부를 한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평생을 한국과 일본으로 떨어져 살던 우리가 지금 여기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4박5일간의 후쿠오카 여행을 마치며

라나






#행복이란 #변화와성장 #후지몽의꿈 #후쿠오카여행 #이토시마여행 #이화서원 #주역여행 #동아시아평화 #한국와일본 #토토로의집 #함께더불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