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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Mar 15. 2021

[미스트] 명리학


: 목숨 명(命), 다스릴 리(理), 배울 학(學), 생년월일에 근거에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아보는 학문

사람은 언제 흥미를 느낄까. 그중 하나는 내가 불확실하게 알던 것이 선명해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그게 나에 관한 것이라면 돈을 주고라도 더 말해보라고 부추기지 않을까.


나도 대략 30년 정도 나로 살았지만, 가끔 나에 관한 질문조차 어떻게 답해야 할지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내가 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내가 기뻐하는 순간들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작게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부터 원하는 인간상, 하고 싶은 일까지. 그렇다 보니 내 앞날은 더 모르겠고 정답 없는 질문들을 하다 보면 불안해지게 된다. 그때그때 숙고하며 선택해서 살아왔다지만 그렇다고 내 미래에 보장되는 것은 없다. 막말로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고 다음 달 월급을 받을 가능성도 유력하지만, 확정은 아니다.


나같이 불안한 사람들이 있는 한 미신과 역술인들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사주풀이라고도 말하는 명리학은 사람은 태어난 때의 기운이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하에 4개의 기둥인 사주(四柱) — 년주, 월주, 일주, 시주와 각 주(柱)를 이루는 천간(天干), 지지(地支) 총 8개의 글자를 가지고 인생을 풀이한다. 고작 8글자로 일생을 풀어낸다 생각하면 좀 허무하기도 하다. 하긴 10글자, 설령 100글자였어도 니가 뭘 알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가 점사를 보는 과정을 옆에서 본 적도 있다. 그때 점사 비용이 5–10만원이라던가 반바지를 입고 방문하는 것은 실례라던가 나름의 룰들을 알게 되었다. 살다 보니 이래저래 여러 사람의 사주를 듣게 된다. 몇몇 사주풀이를 들으면서 느낀 공통점이 있다. 일단 남자, 여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복의 기준이 다르다.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관운이다.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명예와 재력은 그 남자의 삶이 얼마나 성공적인가를 판단하는 잣대다. 사내로 태어나면 대장부가 되어 자리 하나쯤은 차지해야 그 인생이 지지받는다. 남자구실하며 살기 쉽지 않다.


여자의 최고의 운은 좋은 남편과 자식이다. 요즘같이 일자리 구하기 힘든 시기에도 여자가 계속 일할 팔자라면 그건 능력 좋은 남편, 나이 들어선 그런 자식을 가지지 못해 부족함을 스스로 채워야 하는 애처로운 삶으로 인식된다. 누가 채워주지 않으면 부족한 인생이라니 피곤하다.


집에서 오밀조밀 살림을 꾸며나가는 재미를 느끼는 남자와 바깥일을 해나가는 성취감에서 재미를 느끼는 여자는 누군가 보시기에 바람직한 상은 아닌가 보다. 아마 거상 김만덕도 용한 역술인을 찾았다면 ‘큰 부를 이뤄 나라에 도움이 되겠지만 지아비 없는 홀몸으로 살다 가니 아주 외로운 삶인 게야’라는 소릴 들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젠더 이슈가 민감한 사안인 시기에도 이런 풀이를 얘기할 땐 조심스러움도 거북함도 덜 한 것 같다. 운명은 논의의 대상 자체가 아닌 건가.


개인적으로 또 의아했던 풀이는 자수성가하는 게 좋은 팔자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주위에서 도와줄 수 있는 여력이 없어 스스로가 개척하며 살아야 하니 그 과정이 너무 고되단다. 밑천 없이 성공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길이랄 것은 동의하나 고되고 힘든 길이라서 나쁜 삶이라 한다면 모든 사람이 편하게 살기만을 추구한다면 발전이 있는 수 있나. 일생에 순탄한 일만 있었다는 건 잘 짜인 계획대로는 살았으나 도전적인 순간들이 없었다는 거 아닌가. 자수성가라는 말이 주는 강인함과 단단함은 그 단어가 함축하는 시련과 버텨냄에서 오는 것이다. 애초가 성(成)했다는 데 좋은 팔자가 아니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모든 틀과 균형이 어그러졌다 생겼다 하는 요지경임에도 참 변하지 않는 세계다. 사실 명리학, 아니면 명리학을 풀이하는 방식이랄지에 고리타분한면이 있다는 건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말 한마디 들어보려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앞날이 궁금해 찾아간다지만 마음 한켠엔 ‘자네가 잘못해서 안 풀리는 게 아냐. 지금 이 고비만 버티면 되겠네!’라는 말을 듣고 한숨 한 번 돌리려고 가는 것 같다. 다행히 사람마다 자기 운이 풀리는 시기라는 게 있는 듯해서 일생이 나쁜 일밖에 없다는 사주는 못 들어본 것 같다.


글을 다듬는 오늘은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다. 고작 해가 나냐 나지 않느냐 만으로 기분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나의 미래를 내 생시로 예측하긴 힘들것 같다. 물론 내 사주풀이가 궁금하기도 하고 기회가 될 때 한 번 들어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나쁜 말을 들어도 까짓거 보란듯이 잘살아버리자고 생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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