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누가 잘라야 하나.
관찰은 나의 업이다. 나는 현재 찌개 브랜드의 가맹본부에서 일하는 슈파바이저이다. 각 매장 매출을 점검해야 하고 점주의 운영 능력과 마인드를 살펴보아야 한다. 아울러 배달 플랫폼에 입점 된 매장별 리뷰와 SNS를 수시로 모니터링을 한다. 혹시나 모를 낮은 매장 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관찰한다.
관찰하는 게 지겨워 퇴근 후에는 복잡한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그런 연유에서 좋아하던 <보이스>나 <손 the guest>와 같은 범죄/스릴러물 대신에 요즘은 회차당 30분 내외인 <심야식당>이라는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이다. 정말 가볍게 보기 좋다. 하지만 난 여기에서도 관찰을 놓지 못했다.
그 식당의 주인장인 마스터는 늘 무심하게 있지만 누구도 그가 불친절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평소에는 노렌이 쳐진 주방 뒤편에 앉아 있다. 그러다가도 손님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어느샌가 그들의 추억과 연관된 음식을 만들어 내오곤 한다. 그러면서도 절대 과한 개입은 하지 않는 게 이 식당 주인의 철칙이다. 나는 종종 이 이야기를 점주 면담에 인용한다. 내가 나의 고객인 점주들을 관찰하듯이 점주들도 손님을 꾸준하게 관찰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밥집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식이다. 음식의 퀄리티는 결단코 맛에서만 판가름 나지 않는다. 가게에 들어서기 전의 아주 사소한 요소가 이미 음식의 퀄리티를 확정 짓는다. 이 요소는 분위기가 될 수도, 고객을 맞이하는 직원의 태도가 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밥집 사장이었기에 장사에 지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음을 잘 안다. 하여 적당히 지친 점주들의 기색을 캐치하여 유하게 설득한다. 때로는 잔소리로써 그들은 채찍질하기도 한다. 음식점 사장의 위치에서만 최선을 다하지 말고 고객 관점에서 매장을 관찰하도록 말이다.
내가 관리하는 가맹점 중 꼭 집어 금호동 소재의 지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연 지 몇 년이 지나 세월이 엿보이는 곳이지만 6평의 작은 매장에서 기적의 매출을 일으킨 곳이다. 조금이라도 어두워진 조명의 전구는 수시로 교체를 한다. 직접 적은 응원의 캘리그라피를 고객의 눈높이에 부착해 두어 음식을 기다리는 재미를 준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정돈의 손길과 기물들이 주는 균형감이 아늑한 식사를 완성시킨다.
이 매장의 특화된 서비스라면 적은 테이블 수를 강점으로 삼은 일대일 응대이다. 점주가 찌개 속 고깃덩어리를 잘라주는 것이다. 해당 매장에서는 적절한 크기로 고기를 잘라 적시에 먹어야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고객에게 강조한다. 재미있게도 이 매장은 테이블마다 3분으로 맞춘 초시계가 붙어 있고, 서빙되어 나간 찌개 양푼은 뚜껑이 닫혀 있다. 원래대로라면 뚜껑 없이 제공된 양푼 속 고기를 고객이 직접 자르도록 해야 한다.
굳이 바쁜 시간임에도 회전율을 높이는 것에 반하는 정책을 펼친 이유 역시 관찰의 결과였다. 유독 이 매장에서만 <고기 자르고 3~4분 후에 드세요>라는 안내가 고객마다 분분하게 해석되었다. 이에 따라 균일한 맛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은 당연했다. 어떤 고객은 고작 1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5분이라고 체감을 하기도 했으며 어떤 테이블은 10분을 끓여도 아직 4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본사의 매뉴얼과는 분명 다르지만 어기지는 않았다. 게다가 의도한 맛을 오롯이 느끼도록 한참 식사 중인 고객에게 고기를 잘라라, 마라 하는 훈수를 두지 않아도 된다. 본인만의 방법을 이 점주는 찾아 내었던 것이다. 지독한 관찰의 결과였다. 조심스레 나는 생각했다. 한국판 <심야식당>은 금호동에 있다고.
“초시계 울릴 때까지는 뚜껑 열면 안 됩니다. 시계 울리면 드시지 말고 손을 들어 꼬옥 저를 불러주세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 드릴게요!”
고객을 응대하는 멘트 또한 기가 막힌 맛을 지닌 곳이다. 우락부락한 얼굴과는 다른 사장님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꼭 다시 그 매장을 찾게 만든다. 당연하게도 이 매장은 올 상반기 최우수 매장으로 선정되었다.
아주 기본적인 것 같으나 현장에 가보면 서비스, 청결 그리고 고객 관찰을 실행하지 못하는 곳들이 의외로 많다. 우수사례를 아무리 공유해주어도 낯 간지러워서 따라 하지 못하겠다고들 한다. 혹자는 인건비를 줄였기에 하는 일이 늘어나 관찰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특히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핑계를 가장 많이 듣는다. 원래 그런 성격이면 왜 장사 시작했냐는 이야기가 목구멍을 뚫고 올라오고야 만다. 그러나 나는 프랜차이즈의 홍수에서 이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목회자이다. 길 잃은 양이라고 포기할 수 없다.
“사모님 면 좀 더 드릴까요? 조금 더 잡숴도 돼요. (더 드릴 수 있어요)”
<길 위의 쉐프들, 대한민국 서울>에 나오는 조윤선 사장은 현재 두터운 단골층을 지닌 칼국숫집을 운영하고 있다. 10년의 시각으로 다듬어 낸 장사 기술로 매서운 텃세에 매일 맞설 수 있다고 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과 쉴 새 없이 고객을 쫒는 그녀의 시선은 한 몸이되 한 몸이 아닌 듯하다. 고객들이 요청하지 않아도 칼국수 면발을 추가로 더 얹어 준다거나 뜨거운 음식에 입이 데지 않도록 앞접시를 권한다. 그 와중에 시끌벅적한 통로를 향한 호객행위도 멈추지 않는다.
내가 몸담은 브랜드의 매장 대부분은 15평 남짓이다. 직원 수도 적다. 직원이 없고 아르바이트생만 쓰는 곳도 허다하다. 그야말로 생계형 브랜드인 셈이다. 가게가 작다고 보는 시야까지 작아서는 안 된다. 고객을 보는 시야도, 내어오는 음식의 퀄리티는 절대 작지 않아야 이 어려운 시기에 생존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한다. 마스터와 조윤선 사장님은 결코 우리에게 생소한 이야기를 비법삼아 작은 가게를 운용하지 않았다. 그처럼 오늘도 나는 점주들에게 관찰의 중요성을 다시 이야기한다. 유독 차디찬 올겨울에 생계 걱정하는 이가 한 명이라도 줄길 바라면서 수 십 번 반복한다.